[단독] 시진핑, ‘연리지 정원’서 트럼프 맞았다… 중난하이 산책의 숨은 상징

“여기에 보이는 두 나무는 하나로 연결됐습니다. 100년이 넘었습니다.”
15일 중국 최고지도부의 집무·거주 공간인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원중지원(園中之園·정원 속의 정원)’으로 불리는 정곡(靜谷)으로 안내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이 가리킨 입구 근처의 측백나무는 뿌리는 서로 다르지만 몸통과 줄기가 맞붙어 자란 ‘연리백(連理栢)’이다. 본지가 확인한 중공중앙당사문헌연구원의 기록은 이 나무를 ‘정곡의 초목 절경’이라고 부르며 “뿌리는 나뉘었으나 부드러운 몸통이 서로 합쳐졌다”고 적었다.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다른 외빈들도 이곳으로 데려와 접대하느냐”고 묻자, 시진핑은 “매우 드물다. 우리는 원래 이곳에서 외사(外事) 활동을 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극히 드물게 이용했다”며 ‘극히 예외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본지에 “중국 최고지도자의 가장 내밀한 공간에서 트럼프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수백 년을 버틴 중국의 저력’과 ‘연리백처럼 서로 얽힐 수밖에 없는 미중 관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치에 밝은 또 다른 베이징 소식통은 이백의 시구를 인용해 미국을 대하는 중국 최고지도자의 심중을 설명했다. 그는 “저 산만은 나를 싫어하지 않고, 나도 저 산을 싫어하지 않는다(相看兩不厭,只有敬亭山)”는 구절을 들어 “미중 관계를 적대와 단절이 아니라, 오래 마주 보며 견뎌야 하는 관계로 설정하겠다는 시진핑의 인식이 트럼프 의전에서 강하게 묻어나왔다”고 했다.

두 정상이 들어선 정곡 입구 양옆에는 청나라 건륭제가 쓴 의미심장한 시구도 새겨져 있다. “달빛 머문 땅과 구름 같은 계단은 숲속에 고요한 경지를 열고, 병풍처럼 둘러선 산과 거울 같은 물은 꽃향기 나는 길 따라 그윽한 자취를 찾게 한다(月地雲階,別向華林開靜境, 屏山鏡水,時從芳徑探幽踪).” 중국 권력의 심장부인 중난하이 안에 자리한 정곡의 운치를 형상적으로 묘사한 구절이다. 복잡한 세계 질서 속에서도 미중 양국이 냉정하게 서로를 인정하고 마주 봐야 한다는 중국의 메시지로 읽힌다.
적갈색 담장으로 둘러싸인 중난하이에서 시진핑과 트럼프가 함께 산책하던 중 예기치 못한 장면도 연출됐다. 트럼프는 길가의 꽃을 가리키며 “이 장미들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가 가리킨 것은 중국이 원산지인 겹꽃 장미 ‘월계화’ 품종으로, 베이징을 상징하는 시화(市花)다. 시진핑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월계화 씨앗을 선물하겠다고 밝혔다. 시진핑은 전날에는 명·청 시대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천명(天命)과 통치의 정당성을 확인하던 톈탄으로 트럼프를 초대하고, “톈탄에 반영된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의 원리는 중국인의 우주관과 처세 철학을 보여준다”고 했다. 미국과 분리된 중국만의 세계를 강조한 것이다.

시진핑의 중난하이 특별 의전이 과거 남해의 섬 잉타이(瀛臺)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잉타이 북쪽의 내밀한 역사적 원림 공간에서 진행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두 정상은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순수하고 한결같다’는 뜻의 순일재(純一齋·춘이자이)에서 차담을 하고, 춘우재(春藕齋·춘어우자이)에서 업무 오찬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일재는 중난하이 핵심 업무 공간과 붙어 있고, 춘우재는 문화대혁명 이전 주말 무도회와 영화 상영 등에 쓰였던 내부 오락 공간이다.
티타임 장소에는 황금색 찻잔과 다과 등이 놓여 있었다. 트럼프는 “이번 방문은 놀라운 방문이었다”며 “우리는 환상적인 무역 합의를 이뤄냈고, 그것은 두 나라 모두에 훌륭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이란 문제에 대해 매우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 상황이 끝나기를 원하고, 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미국의 외교·안보·통상·금융 핵심 라인이 총출동했다. 미국 측에서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데이비드 퍼듀 주중 미국 대사 등이 배석했다. 중국 측에선 시진핑의 핵심 측근인 차이치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를 전면에 세우고, 왕이 외교부장과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 마자오쉬 외교부 상무 부부장, 셰펑 주미중국대사 등 외교·경제 라인이 자리했다.

자금성 서쪽에 붙어 있는 중난하이는 중국 권력의 심장부다. 명·청 시대에는 황실 정원이자 연회 장소였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는 최고지도부의 집무·거주 공간이 됐다. 중난하이가 현대 중국 외교의 상징적 무대로 등장한 대표적 장면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때였다. 당시 마오쩌둥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한 닉슨을 중난하이 수영장 건물 안 자신의 서재로 초대해 만났다. 미중 데탕트의 출발점이 된 이 회동 이후 중난하이는 중국 최고지도자가 각별한 외국 정상에게만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상징적 공간이 됐다.
2002년에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중난하이로 초청했다. 시진핑도 이런 전통을 활용해 왔다. 2014년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중난하이에서 만났고, 2024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이곳에서 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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