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조의 파업과 ‘코즈 정리’[전성인의 난세직필](50)

2026. 5. 15. 14:1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대표교섭위원인 김형로 부사장이 5월 13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026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2차 사후조정이 결렬된 후 협상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의 연간 예상 영업이익이 수백조원을 넘나들면서 성과 배분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첨예하다. 노조 측은 SK하이닉스 사례를 제시하면서 영업이익의 배분과 상한 철폐를 요구했다. 반면 사용자 측은 성과급의 제도화에는 소극적이었다.

교섭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파업의 가능성이 조금씩 다가올수록 노사 간 타협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목소리 중에는 경제학 논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비표준적인 주장’이 많이 섞여 있다. 이하에서는 삼성전자 노사 교섭의 본질에 대해 경제학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으며, 세간의 일부 주장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필자가 강의했던 과목 중에 법경제학 입문이라는 강좌가 있다. 이 강좌 초반에 늘 필자가 학생들에게 던졌던 질문이 있다. 흡연이 불법이 아닌 유럽에서 밀폐된 식당에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섞여 있다고 하자. 흡연자는 식사를 대충 끝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독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비흡연자는 그 연기에 머리가 아찔할 지경이었다. 비흡연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학생들의 첫 반응은 대체로 ‘흡연자가 잘못했네’라는 것이다. ‘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이므로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도덕론부터, ‘흡연은 당사자에게도 해로우니 강제로라도 자제시켜야 한다’는 행태교정론에, ‘흡연은 비흡연자가 건강하게 살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는 인권침해론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아무도 흡연자의 입장에서 논리를 전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흡연은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의 힘이자 사회화의 위력이다(참고로 이 글에서 흡연은 사례일 뿐이며, 필자는 어떤 이유로도 흡연을 지지하지 않는다).

‘교섭 거래 비용’ 낮아지게 멍석 깔아줘야

필자의 첫 번째 역할은 이런 선입견을 깨는 것이다. 학생들은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는 잘 보지만 흡연자가 흡연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는 간과한다. 그런데 사실 이 상황에는 잠재적으로 이 두 권리가 모두 존재한다. 그 점을 인식하는 순간 이 상황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예의범절과 천부인권을 억압하는 패륜아의 모습만 보이던 상황이 서로 다른 두 권리(또는 욕구)가 적나라하게 충돌하는 갈등 상황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럼 이런 상황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내놓은 사람이 1991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널드 코즈다. 코즈 정리라고 알려진 명제에 따르면 당사자들 간의 교섭에 거래 비용이 없다면 어떤 권리를 보호해주더라도 자원 배분에는 영향이 없다(다만 부의 배분은 달라진다). 그러나 교섭에 거래 비용이 뒤따르는 현실에서는 제도가 어떤 권리를 보호해주는가에 따라 자원 배분과 교섭의 결과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흡연이 용인되는 유럽에서는 흡연자가 마음만 먹으면 담배를 즐길 수 있다. 그럼 비흡연자는 어찌해야 하는가? 일종의 ‘뇌물’을 바치는 수밖에 없다. 내가 돈을 줄 테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밖에 나가서 흡연하라고.

반대로 실내 흡연을 금지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흡연권이 보호되지 않음으로 비흡연자는 마음만 먹으면 흡연을 금지할 수 있다. 그럼 흡연자는 어찌해야 할까? 정 담배를 못 참겠다면 비흡연자에게 일종의 ‘뇌물’을 바쳐야 한다. 내가 돈 줄 테니까 담배 냄새 좀 참거나 잠깐 밖에 나가서 경치 구경하고 들어오라고.

이제 삼성전자 노조 파업으로 돌아와 보자. 침착한 눈으로 살펴보면 여기에도 역시 서로 다른 두 욕구가 충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업이익을 서로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충돌. 그다음으로 확인해봐야 할 점은 ‘사회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권리’가 존재하는가 여부다. 존재한다. 노조의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다.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노조는 얼마든지 (적법 절차를 밟아) 파업할 수 있다.

그럼 주주는 어찌해야 하는가? 일종의 ‘뇌물’을 바치는 수밖에 없다. 내가 돈 줄 테니 파업하지 말라고. 그 뇌물의 현실적 모습이 ‘성과급’인 것이다. 따라서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는 원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성과급의 수준은 교섭하면 된다.

그럼 우리 사회가 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한쪽을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교섭의 거래 비용’이 낮아지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법경제학이 알려주는 원칙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원칙에 어긋나는 주장들이 원색적으로 난무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진정한 주인’인 주주가 양보해야

첫째, 왜 하필이면 반도체 호황이 한창인 지금 노조가 찬물을 뿌리느냐는 볼멘소리가 있다. 잘못된 지적이다. 지금이 최적기다. 왜냐하면 노조가 받을 수 있는 ‘뇌물’은 ‘주주의 슬픔’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호황기에 조업을 중단하는 것이 그 아픔을 더 크게 하기 때문이다. 기업 간 담합이 성과 독식의 유혹이 더 큰 호황기에 잘 깨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둘째, 노동자가 기업의 이익에 손을 뻗치는 것은 자본주의 근본을 망각한 빨갱이짓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것 역시 선입견에 물든 견해일 뿐이다. 기업의 성과를 자본과 노동이 어떻게 나눠가질 것인가는 각 생산요소의 기여도를 얼마나 쉽고 투명하게 측정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노동의 투입량이나 질을 쉽고 투명하게 측정할 수 있을 때는 그 투입지표에 근거해 보수를 주면 된다. 주주는 나머지 몫을 가지고. 그러나 반대로 노동 투입의 양이나 질을 쉽게 측정할 수 없을 때는 별도의 유인 장치가 필요하다. 그 유인 장치가 성과급이다. 임원에게 스톡옵션을 주거나 노동자들을 우리사주로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노사 갈등에서 문제가 된 영업이익의 배분은 이런 성과급의 변형일 뿐이다.

셋째, 정부나 지역사회도 기여를 많이 했는데 기업 성과를 노동자가 독식하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문제 제기도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정부나 지역사회도 성과의 한 부분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그 재원을 더 많이 부담해야 하나? 이익의 10~15%를 요구하는 노동자인가? 아니면 이익 전부를 받아 가겠다는 주주인가?

넷째, 노동자에게 성과급을 약속하면 국제적 신인도가 떨어진다거나, 경영진의 배임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틀린 주장이다. 하이닉스를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말라는 조언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럼 최후의 순간에 궁극적으로 누가 양보해야 하는가? 구약성서 열왕기 상을 보면 된다. 솔로몬의 재판을 상기하면 거위의 배를 가를 때 더 많이 아파하는 쪽이 양보할 수밖에 없다. 그게 주주다. 파업에 임박해서 주주가 양보해야 하는 이유는 주주가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다.

전성인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