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시진핑 회담장, 진짜 VVVVIP는 머스크

미중 정상회담장의 시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만 쏠리지 않았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모습을 드러낸 미국 재계 인사들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였다.
이번 방중에는 애플, 엔비디아, 보잉, 골드만삭스 등 미국 주요 기업 수장들이 대거 동행했다. 미중 무역 갈등, 첨단기술 통제, 희토류, 항공기 구매, 농산물·에너지 거래 등 굵직한 의제가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른 가운데 기업인들의 행보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됐다.
그중에서도 머스크의 존재감은 유독 컸다. 테슬라의 중국 사업, 자율주행 기술 승인, 상하이 공장, 태양광 장비 조달 등 그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 상당수가 중국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장 안팎에서 머스크는 단순한 동행 기업인이 아니라 미중 경제가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상징적 인물로 부각됐다.
정상 뒤에 선 CEO들…회담장은 ‘기업 외교’ 무대가 됐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정치·외교 이벤트이면서 동시에 기업 외교의 장면이기도 했다. 미국 측 방중단에는 전기차, 반도체, 항공, 금융, 소비재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대거 포함됐다. 정상 간 회담 의제는 안보와 통상에 집중됐지만, 현장에서는 기업들의 이해관계도 함께 움직였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시장 개방과 무역 확대를 요구했고, 중국은 미국 기업인들을 향해 투자와 협력의 문을 계속 열어두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시 주석이 미국 기업 대표단을 별도로 만난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기업들은 더 조심스럽게 움직이지만, 동시에 양국 시장을 모두 포기하기 어렵다.

머스크는 이 구도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가까웠다가 공개적으로 충돌한 적도 있지만, 이번 방중에서는 다시 정상외교 무대에 등장했다. 정치적 거리와 별개로 미국 정부도, 중국 정부도 머스크가 가진 산업적 상징성을 무시하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그가 이끄는 테슬라는 전기차 기업을 넘어 자율주행, 인공지능, 배터리, 에너지, 우주산업까지 연결된 기업으로 평가된다. 미중 기술 경쟁의 거의 모든 키워드가 머스크의 사업 안에 들어 있는 셈이다.
테슬라의 숙제는 중국에 있다…FSD·상하이 공장·태양광 장비

머스크가 이번 회담에서 ‘VVVVIP’처럼 보인 가장 큰 이유는 테슬라의 핵심 숙제가 중국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중국에서 완전자율주행 보조시스템, 이른바 FSD 확대 승인을 추진해왔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FSD가 본격적으로 허용될 경우 테슬라에는 판매 회복과 수익성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규제 승인 없이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 테슬라는 현재 중국 내 데이터 규정과 안전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당국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주행 기술은 단순한 차량 기능이 아니라 데이터, 지도, 보안, 인공지능이 결합된 영역이다. 미중 기술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는 승인 자체가 산업적·외교적 의미를 갖는다.

상하이 공장도 테슬라 전략의 핵심이다. 중국은 테슬라의 주요 생산 거점이자 판매 시장이다. 테슬라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중국 생산 체계가 있다. 반대로 중국 업체들이 저가 전기차와 고급 전기차를 동시에 밀어붙이면서 테슬라의 중국 내 입지는 예전만큼 안정적이지 않다.
에너지 사업도 중국과 무관하지 않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테슬라는 미국 내 태양광 제조 확대를 위해 중국 업체들로부터 대규모 태양광 패널·셀 제조 장비 구매를 추진해왔다. 일부 장비는 중국 당국의 수출 승인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외치면서도, 실제 생산 설비 구축에는 중국 장비가 필요한 역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결국 머스크에게 중국은 경쟁자이면서 시장이고, 규제 당국이면서 공급망 파트너다. 미국 입장에서도 머스크는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단절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 기업인이다.
중국도 머스크가 필요하다…갈등 속에서도 버릴 수 없는 상징

중국 역시 머스크를 필요로 한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기술 견제에 맞서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조하면서도, 글로벌 혁신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남아 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싶어 한다. 머스크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인물 중 하나다.
중국 내에서 머스크의 이미지는 복합적이다. 그는 혁신가이자 개척자로 소비되지만, 동시에 테슬라 차량의 보안 문제나 소비자 불만 대응 논란으로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중국 시장에서 머스크의 상징성은 여전히 크다. 테슬라는 중국 전기차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기준점 역할을 해왔다.
이번 회담에는 반도체 업계 수장도 합류하면서 인공지능과 첨단칩을 둘러싼 미중 갈등도 부각됐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최첨단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면서도 일부 제품의 판매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중국은 자체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기술과 장비, 글로벌 기업과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끊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머스크는 반도체 CEO들과는 또 다른 무게를 가진다. 반도체가 미중 기술 패권의 핵심이라면, 머스크는 그 기술이 전기차·자율주행·에너지·우주산업으로 확장되는 장면을 대표한다. 미중 경쟁이 단순히 칩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인물인 셈이다.
정상회담장의 주인공은 당연히 양국 정상이다. 그러나 회담장 주변에서 가장 많은 해석을 낳은 인물은 머스크였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지만 테슬라는 중국을 필요로 하고, 중국은 미국 기술을 경계하지만 머스크라는 상징을 활용하려 한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장에서 머스크가 ‘VVVVIP’처럼 보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서 양국이 아직 서로를 완전히 끊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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