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 시대 대만에서 펼쳐지는 '재벌집 막내아들', 신간 <꽃피는 시절>

설지연 2026. 5. 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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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솽쯔 지음, <꽃 피는 시절>

미국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수상작 <1938 타이완 여행기>로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대만 작가 양솽쯔의 첫 장편소설 <꽃 피는 시절>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오는 19일(현지시간) 발표되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1938 타이완 여행기>의 세계관적 출발점이기도 한 이 소설은, 작가가 쌍둥이 언니를 잃은 지 1년 만에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필명 '양솽쯔'는 일본 한자로 '쌍둥이'를 뜻하며, 작가는 2015년 세상을 떠난 언니의 이름을 지금도 함께 쓰고 있다. 창작을 맡은 동생과 역사 자료 조사를 전담한 언니가 함께 빚어낸 필명은, 그 자체로 이 소설을 받치는 애도의 토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호수에 빠진 현대 여성 양신이는 1926년 타이중 유력 지주 가문의 여섯 살 막내딸 쉐쯔로 눈을 뜬다.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식민지·계급·젠더를 향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도구로 작동한다.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서 역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낯선 시공간에 내던져져도 사람은 결국 관계 속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진실이 소설의 핵심이다. 역사소설과 여성 서사의 '백합 소설'을 결합한 '역사 백합 소설'이라는 독자적 장르는 출간 당시 대만 문학계에 적지 않은 논쟁을 촉발했다.

작가는 대만의 정체성을 추상적 민족주의가 아닌 밥상과 언어에서 찾는다. 철마다 차려지는 보양식과 제사 음식, 그리고 대만어 단어들. 그 작은 디테일들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물음 '대만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답변이다.

양솽쯔는 미국도서상 수상 소감에서 "100년 전 대만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대만은 대만인의 것'이라고 말했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같은 말을 한다"고 했다. 소설은 그 백 년의 시간을 소녀들의 우정이라는 언어로 가로지른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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