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환자 맞춤형 정밀 의학으로 전환될 것" [치매를 말하다 ⑧]

뇌세포는 한 번 손상되면 본래 기능을 회복하기 어렵다. 치매가 오랜 기간 원인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으로 여겨져 온 이유다. 이에 따라 임상 현장에서도 치료의 무게를 '완치'가 아닌 '증상 완화'에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원인 단백질을 직접 제거하는 항아밀로이드 표적치료제가 등장하며 새로운 국면이 열리고 있다. 병리적 원인에 개입해 질환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치료 전략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혈액 바이오마커와 인공지능(AI) 진단 기술 등이 정교해지며 치료의 접근 방식도 다각화되는 추세다.
신경과 강성훈 교수(고려대 구로병원)는 "향후 치매 치료는 과거의 획일적 처방을 넘어, 환자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과 병의 진행 단계에 맞춰 전략을 세우는 '정밀 의학'으로 빠르게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 교수로부터 치매 치료의 실질적인 변화와 향후 전망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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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증요법 한계 넘어선 신약 '레카네맙'의 등장
알츠하이머병 약물치료는 오랫동안 도네페질, 메만틴 등 인지기능 개선제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도네페질은 1990년대 후반, 메만틴은 2000년대 초반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이후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주요 약제로 사용돼 왔으며, 기억력이나 집중력 저하를 완화하고 환자의 일상 유지를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단, 질병의 병리적 진행 자체를 차단하지 못한다는 점은 근본적인 한계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신약이 '레카네맙(Lecanemab)'이다. 2023년 7월 미국 FDA의 정식 승인을 받은 이 약물은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병리로 꼽히는 '아밀로이드 베타(Amyloid-beta)'를 표적으로 하는 항아밀로이드 치료제다. 이는 단순한 증상 조절을 넘어 질병의 원인 단백질을 직접 제거해 병의 진행 과정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기존 약제와 확연히 차별화된다.
강성훈 교수는 "레카네맙이 병을 완전히 멈추거나 발병 이전으로 되돌리지는 못하지만, 원인 물질을 제거해 뇌 손상의 진행 속도 자체를 늦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임상 연구에서도 뇌의 기능적 저하를 지연시켜 환자가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기간을 실질적으로 연장하는 효과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고가의 비용·부작용 우려도…치료 대상 '정밀 선별' 필수
항아밀로이드 표적치료제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받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고가의 치료 비용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약물 투여 과정에서 뇌부종이나 미세출혈을 동반하는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RIA)' 발생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치료 대상 선별과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특히 임상 현장에서는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뇌 자기공명영상(MRI), 신경심리검사 등 정밀 평가를 통해 치료 대상을 매우 신중하게 선별한다. 항아밀로이드 치료제는 모든 치매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밀로이드 병리가 확인된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중에서도 MRI 소견, 아포리포단백(APOE) 유전형, 항응고제 복용 여부, 전신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여를 결정한다.
강성훈 교수는 "실제 진료 데이터 170건을 분석한 결과, 항아밀로이드제 주입 관련 이상 반응은 약 20%에서 나타났으나 대부분 발열·두통 등 경미하고 일시적인 증상이었다"며 "ARIA 역시 정기적인 MRI 모니터링을 통해 조기에 발견해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작용을 과도하게 두려워하기보다는 치료 전 위험 요인을 충분히 평가하고, 치료 중 정기적인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라며, "치료의 효과와 한계, 부작용 및 비용 문제까지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함께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 역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 치료' 향한 연구 활발 …타우 표적부터 유전자 치료까지
표적치료제의 한계를 넘어 치매의 근본적 제어를 향한 학계의 연구도 진행 중이다. 단일 약제만으로는 타우 단백질 축적이나 신경 염증 등 알츠하이머병의 복합적인 병리 요인을 모두 차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성훈 교수에 따르면 현재 학계가 주목하는 근본 치료 전략은 크게 세 갈래다.
첫째는 기존 항아밀로이드 치료제의 고도화다. 혈뇌장벽(BBB) 투과를 돕는 '뇌셔틀(Brain Shuttle)' 기술을 접목해, 적은 용량으로도 약물 전달 효율을 높이고 부작용을 줄인 차세대 항체치료제가 현재 임상 3상 중이다.
둘째는 아밀로이드 축적 이후의 병리적 요인인 '타우(Tau)' 단백질 표적 치료다.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 축적에 이어 타우 단백질이 쌓이면서 증상이 급격히 악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아밀로이드 병리를 선제적으로 낮추고, 타우 병리까지 동시 또는 순차적으로 조절하여 증상 악화를 지연시키는 병합 치료 전략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일부 약제는 2상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 다음 단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는 여러 병리 기전을 동시에 조절하는 '다중 표적 치료'다. 신경 염증 억제, 뇌 신경세포 보호, 뇌혈관 기능 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도모하는 경구용 약제들이 속속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하며 새로운 대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표적치료제의 한계를 보완하거나 극복하려는 시도도 있다. 줄기세포 치료는 뇌 내 미세환경을 개선해 신경세포의 자체 회복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유전자 치료는 아밀로이드·타우 관련 유전자와 APOE 등 위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연구 중이다. 바이러스 전달체 없이 특정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티드(ASO) 방식도 개발 선상에 올랐다.
다만 이들은 아직 임상 초기 단계다. 강 교수는 "잠재력은 크지만 지금은 임상시험 결과를 보수적으로 지켜봐야 할 단계"라며 "실제 현장 도입을 위해선 장기적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혈액 바이오마커'와 'AI 기술'로 알츠하이머병 진단 효율 높인다
치료뿐 아니라 진단 분야에서도 정밀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알츠하이머병 병리 확인을 위해 고가의 아밀로이드 PET 검사나 뇌척수액 검사가 주로 활용됐으나, 최근에는 p-tau217 등 혈액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보다 간편하게 알츠하이머병 가능성을 선별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강성훈 교수는 "2025년 미국 FDA가 p-tau217과 β-아밀로이드 1-42 비율을 활용한 혈액 검사를 알츠하이머병 진단 보조 검사로 허가하면서, 혈액 바이오마커의 임상 활용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p-tau217은 매우 유망한 지표이지만 동반 질환 유무 등에 따라 수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며 "단독 확진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지만 스크리닝 용도로는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다각도 분석 기법도 주목받고 있다. AI가 혈액검사 수치와 MRI상 뇌 위축 정도, 신경심리검사 결과 등을 함께 분석하면 추가 정밀검사나 표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보다 효율적으로 가려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강 교수는 "AI와 빅데이터 기술은 혈액 바이오마커와 영상검사, 인지검사 정보를 통합해 알츠하이머병을 더 이른 시점에,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진단하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혈액검사로 먼저 선별하고, 필요한 환자에게 정밀검사를 연계하는 방식이 치매 진단의 중요한 흐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치매 치료도 '정밀 의학' 시대로… "현시점의 최우선은 '조기 진단'"
표적치료제의 등장과 진단 기술의 고도화로 치매 치료는 환자 개인의 특성을 반영하는 '정밀 의학'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획일적인 처방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환자의 병기와 병리 특성, 유전적 위험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치료 전략을 세우는 방향으로 임상 현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강성훈 교수는 "향후 5~10년 내 이러한 맞춤형 진료가 보편화되면서, 치매 역시 암처럼 개인별 정밀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러한 정밀 진단·치료 체계가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인지 저하를 조기에 평가하고, 치료 가능성을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뇌 손상이 광범위해진 이후에는 신약도 유의미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치매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병이 아니라,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히 관리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질환으로 바뀌고 있다"며 "기억력 감퇴 등 인지기능 저하 증상을 단순한 노화 과정으로 치부하지 말고, 증상이 경미한 초기 단계부터 전문적인 의학적 평가를 받고 대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진경 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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