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칸] 여성이 평범하게 존재할 권리에 시선을 두다
여성 서사의 다양성을 말하다
후카다 고지 감독의 <나기 노트>와
샤를린 부르주아-타케 감독의 <여인의 삶 (La vie d’une femme)>
“영화 표현이 가진 힘은, 투명화되어버린 사람들을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자극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중 하나로 그리는 것이 나의 목표입니다.”
-후카다 고지 감독, <나기 노트> 상영 후 기자회견
후카다 고지 감독은 모든 발언에 유난히 신중했다. 일본의 성소수자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면서도 혹여나 그것이 한낱 신기한 이야깃거리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때문에 <나기 노트>의 카메라는 시종일관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어떤 드라마틱한 앵글이나 전환도 없이 평범한 시골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유리와 요리코의 관계를 묵묵히 관찰할 뿐이다. 농사짓는 일,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밥 한 끼처럼 시골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들 가운데 두 여성이 서로를 바라보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그리고 여성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또 하나의 영화, 55세 외과 의사인 프랑스 여성 가브리엘의 일과 사랑을 기록한 <여인의 삶>이 칸의 경쟁 무대에 나란히 올라와 있다. 이 두 영화는 모두 여성의 삶을 관찰하고 있지만 인물을 기록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후카다 고지가 여성의 사랑을 자연의 일부인 양 그대로 두고 바라본다면, 샤를린 부르주아-타케는 한 평범한 여성의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감각적으로 묘사하며 각 여성의 삶이 가진 개별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여인의 삶>은 거대한 선언이라기보다, 단순히 한 여성의 삶의 다양한 영역을 1년 동안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50대 중년 여성의 삶과 연애는 영화에서 너무 드물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샤를린 부르주아-타케 감독, <여인의 삶> 상영 후 기자회견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 첫날, 연달아 상영된 두 영화, <나기 노트>와 <여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올해 칸의 공식 포스터로 선정된 1991년 작 <델마와 루이스> 가 여성 해방의 선언이었다면, 오늘날 칸의 질문은 “그리고 3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디까지 왔는가”이다. 이에 대해 오늘 두 편의 영화는 입체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연애와 일, 섹슈얼리티와 감각, 나이 든 몸과 욕망… 더 이상 투쟁과 해방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여성 서사를 통해서 말이다.
<나기 노트>와 <여인의 삶>은 서로 다른 온도의 영화이지만 여성의 삶을 ‘해방을 위한 몸부림’이 아닌 보편의 삶 또는 그 자체로 복잡한 개인의 영역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포스트-해방의 성격을 갖는다.

<나기 노트>의 주인공 요리코(마츠 다카코)는 오카야마현 시골 마을 나기에 홀로 사는 조각가이다. 그녀는 또한 마을 소년들의 다정한 친구이기도 하다. 어느 봄날, 이혼한 남동생의 아내였던 유리(이시바시 시즈카)가 찾아오면서 두 여성은 서로에 대한 오래된 감정을 천천히 되짚어 나간다.
후카다 고지 감독이 10개월간 나기에 머물며 주민들을 인터뷰했다는 이 영화의 제작 배경은, 그 자체로 이 영화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말해준다. 바로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취재 속에서 많은 훌륭한 만남과 다양한 발견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취재를 거듭해도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성소수자분들입니다. 그들은 통계적으로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쉽게 만날 수 없고, 화제에 오르지도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특히 지방에서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커밍아웃하기 더욱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 베를린 영화제에서 영화와 정치의 분리를 이야기했던 빔 벤더스 감독의 발언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왔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영화의 정치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벤더스는 1980년대에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인 것은 정치적이지 않은 척하는 영화들이다.”라고 말하며(『이미지의 논리』(The Logic of Images), 1988) 이미지 자체가 지닌 정치적 성격을 강조한 바 있다. 어떤 삶의 양식이 스크린 위에 가시화되는 순간, 그 이미지는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이 개막 전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와 예술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기인한다. 창작자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의 현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순수한 미학의 공간으로만 존재하는 영화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은 그가 속한 현실 중에서 어떤 요소를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무엇을 중심에 둘 것인가, 무엇을 주변으로 밀어낼 것인가, 어떤 얼굴과 몸을 묘사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삶을 ‘보편적’인 것으로 승인할 것인가,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나기 노트>와 <여인의 삶>은 바로 이런 정치성을 매우 비선언적인 방식으로 수행한다. 스스로를 사회 비판 영화나 페미니즘 선언으로 내세우거나 기존 권력과의 대립과 갈등을 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이들이 택한 방식은 인물을 평범한 존재로 화면 안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이 태도는 동시대 영화의 새로운 정치성을 보여준다.
후카다 고지가 기자회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낸 조심스러운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성소수자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특별한 소재나 자극적인 사회 문제처럼 소비하는 방식을 경계한다. 다시 말해, 그는 영화 창작자로서 자신이 잠재적으로 가진 ‘가시화의 권력’ 자체를 매우 의식하고 있는 감독처럼 보인다. 때문에 그는 왜 성소수자의 문제를 영화에 담았느냐는 세간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어떤 영화에서 이성 간의 갈등이 다뤄질 때 ‘왜 헤테로섹슈얼의 갈등인가’라는 질문은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불평등과 비대칭성이 있습니다...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에는 성적 소수자들이 당연하게 드라마에 등장하고, 그런 질문 자체가 무효화되는 시대가 오면 좋겠습니다.”

이 대답은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올해 칸영화제를 준비하며 남긴 말과 완전히 공명한다. 그 역시 지난 10년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여성 감독의 존재가 꾸준히 증가해 온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이 과정은 여러분이 더 이상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때 완전히 마무리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한편, 샤를린 부르주아-타케가 여성의 삶을 가시화하는 방식은 후카다 고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나기 노트>가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인물의 일상을 정적으로 관찰한다면, <여인의 삶>의 카메라는 훨씬 더 인물 가까이 밀착해 들어간다. 후카다 고지가 풍경과 거리 속에서 관계의 미묘한 흐름을 포착한다면, 샤를린 부르주아-타케는 배우의 얼굴과 몸, 숨결과 피부의 떨림까지 집요하게 따라간다.
특히 중년 여성의 사랑과 성애를 묘사하는 장면들에서 이러한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영화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긴 호흡의 시퀀스를 통해 주인공 가브리엘(레아 드루커)의 욕망과 감각을 매우 육체적인 차원에서 응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감각적인 연출이 단순히 관능을 위한 장치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샤를린 부르주아-타케는 중년 여성의 몸을 더 이상 사회적 역할이나 상징으로 환원하지 않고, 여전히 욕망하고 흔들리는 살아 있는 감각의 주체로 묘사한다.
<나기 노트>의 카메라가 존재를 조심스럽게 화면 안에 머물게 하여 그 보편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정치성을 드러낸다면, <여인의 삶>은 여성의 몸과 감정을 과감히 클로즈업함으로써 중년 여성의 감각과 욕망을 눈앞에 존재하는 것으로 끌어온다. 두 영화 모두 여성의 삶을 다루되 하나는 적당한 거리와 침묵 속에서, 다른 하나는 밀착된 감각 속에서 가시화를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샤를린 부르주아-타케는 제작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사랑이나 모성만으로 완성되는 여성이 아니라, 일을 삶의 중심에 둔 여성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자녀가 없는 50~70대 여성이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는 행복한 비출산 여성 캐릭터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후카다 고지 감독이 말한 대로 일본 사회에서는 동성 커플의 존재가 제도적·문화적 억압 때문에 가시화될 수 없는 것이라면, 프랑스 사회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비가시성이 존재한다. 프랑스는 법적·사회적 자유가 비교적 보장된 환경이지만 중년 여성의 욕망과 감각성, 혹은 비출산 여성의 충만한 삶은 여전히 영화 속에서 충분히 재현되지 못하고 있다. 즉 전자가 사회적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존재 자체에 관한 이야기라면, 다른 하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음에도 사회 문화적 재현의 중심에서 배제되는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기 노트>와 <여인의 삶>의 주제 의식은 상통한다. 두 영화는 모두 특정한 여성의 삶을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사례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일하고, 사랑하고, 늙어가며,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평범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어쩌면 오늘날 여성 서사의 변화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여성 캐릭터가 반드시 억압의 상징이거나 해방의 영웅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제 영화는 여성들을 하나의 주장이나 해방을 기다리는 집단적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몸과 감정, 욕망과 모순을 가진 복잡한 개인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올해 칸영화제가 보여준 가장 흥미로운 변화 중 하나는 바로 그 ‘평범하게 존재할 권리’를 위한 영화들이 경쟁 부문의 중심에 놓였다는 것이다. 요리코는 커밍아웃하지 않아도 되고, 가브리엘은 자신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을,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두 영화는 말하고 있다.
칸=김은진 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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