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잇는 '모자무싸', 조용히 강한 이야기의 힘
박혜영 작가 특유의 인간미 가득한 글이 비결
주연 구교환 분한 황동만 중심의 서사에 시청자들 호평

'모자무싸'에는 불륜이나 치정 등 자극적인 전개가 없다. 그리고 쉽게 이입하기 편한 캐릭터도 없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깊이 있는 서사로 충성 시청층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분위기다.
최근 방송 중인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는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뜻대로 풀리지 않아 시기와 질투에 괴로워하는 인간 황동만(구교환)의 평화 찾기를 그린 작품이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집필한 박해영 작가와 '동백꽃 필 무렵' '웰컴투 삼달리'로 따뜻한 휴머니즘을 선보인 차영훈 감독이 의기투합했다는 점에서 일찍이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또한 구교환 오정세 강말금 박해준 등 연기적인 부분에서 호평을 받았던 명배우들이 모였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 1회 2.2%로 출발한 '모자무싸'는 좀처럼 2%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8회에서 3.9%로 껑충 올랐다.
최근 콘텐츠 시장에서는 짧고 강렬한 자극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숏츠, 숏폼 등이 주류로 올라서면서 빠른 전개와 명확한 선악 구조, 밈으로 소비될 수 있는 장면들이 시청자들의 눈을 확실하게 끌었다. 그러나 '모자무싸'는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극의 전반부를 인물의 감정을 천천히 쌓아가면서 시청자 스스로 해석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당장 눈에 띄는 화제성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지만, 작품을 본 이들이 더 깊게 빠져드는 까닭이다.
'모자무싸' 속 등장인물 대부분은 선과 악의 경계 사이에 놓여 있다. 누군가는 악인처럼 보이지만 이해 가능한 사연을 지녔고, 또 다른 인물은 정의로운 행동 속에서도 이기심을 드러낸다. 이러한 대목은 오히려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사실 우리들의 일상에서는 선인과 악인보다는 오히려 각자의 이유를 가진 양면적인 사람들이 더 흔하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단순히 드라마를 즐기는 반응보다 인물의 심리와 상황에 이입하고 분석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정 장면의 표정 변화나 대사 한 줄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오가는 식이다. 누군가는 황동만의 행동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주인공인 황동만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선한 사람이라고 보기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그 역시 인간적인 결핍과 슬픔이 짙게 묻어난다. 구교환은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특유의 디테일한 연기로 표현해내고 있다.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 미세한 표정 변화와 호흡으로 인물의 균열을 드러내면서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황동만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태도다. 과거에는 드라마 캐릭터를 두고 호불호 정도가 갈리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각자의 해석을 기반으로 인물을 분석하고 토론한다. 상처받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여러 시각으로 논의가 펼쳐진다.
이는 박혜영 작가의 전작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던 터다. '나의 해방일지'는 매회 묵직한 울림을 남기면서 인간의 심연과 우울을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물음표를 던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의 해방일지' 시청률 또한 1회 2.9%로 시작했다가 7회에서 3.8%로 상승했다.
이처럼 '모자무싸'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시청층을 잡았다. 실제로 작품을 향한 반응은 긍정적이다. 물론 시청률에서는 압도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화제성은 뜨겁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 기준 방영 2회 만에 TV-OTT 드라마 화제성에서 2위에 올랐고 출연자 화제성 또한 구교환이 3위, 고윤정이 6위에 이름을 올렸다.
'모자무싸'의 강점은 이야기의 밀도다. 최근 드라마들이 속도전을 내세웠다면 '모자무싸'는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의 균열을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보는 이들이 몰입하게 만든다. 대중성으로 본다면 분명히 트렌디하지 않다. 그러나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모자무싸'의 무기는 분명해 보인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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