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 범죄 희생자 추모한 그리스도인들 "강남역 살인 사건, 끝나지 않았다"
"교회가 여성 혐오 앞장서는 현실이지만
외면당하는 이들 이웃으로 안겠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 공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됐다. 가해자는 살해 이유에 대해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3만 5000여 장이 붙었다. 수많은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당했다는 사실에,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마음에 간절히 애도하고 분노했다.

"하나님, 우리 삶이 불행과 고통뿐이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되며, 우리가 억울하게 무덤에 간들 하나님의 마음이 편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이대로 죽어 한 줌 티끌이 되면 어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한 줌의 흙이 하나님의 진리인들 전파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돕는 분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는 가정 안에서 반복되는 여러 폭력과 성폭력, 연인과 배우자처럼 가까운 관계에서도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당하는 폭력의 희생자이자 생존자입니다. 직장에서는 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불쾌감을 느껴도 상사와의 힘 차이 때문에 싫다고 말하기 어렵고, 언제 일을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부당함을 견디는 노동자입니다. 안전하고 안정된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거리에서 밤을 보내는 여성이고, 이사할 때마다 안전한 환경에 돈을 더 써야 하는 집이 없는 여성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목회자의 권위와 신앙, 공동체의 분위기를 이용해 교묘하게 성적 행위를 강요하는 폭력에 고통받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성 정체성이 무엇인지, 누구를 사랑하는지에 따라 교회에서조차 질리고 베이고 지워진 내쫓긴 이들입니다. 우리는 늙고 병들고 다친 여성이고,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고자 시끄럽게 싸우는 장애인이며, 가족의 양육 돌봄 노동을 떠안고 빚을 짊어진 가장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이 배우자에게 크게 좌우되는 외국인 여성이고, 이 나라에 머물러도 된다는 허가를 받지 못한 채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기와 인신매매에 얽힌 외국인 여성입니다. 임신과 출산을 스스로 결정하고 안전한 의료적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이를 위한 제도가 부족해 위험한 상황에 놓인 여성이며, 음란하다는 낙인과 차별에 밀려나고 가려진 여성입니다."

"강남역 살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보이는 방식으로, 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죽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여전히 경계 밖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는 것이 힘없는 것 같아 억울합니다. 이제 울지 않고 싸우고 싶다는 마음 저도 압니다. 하지만 기억하는 몸들은 지지 않습니다.
권력의 언어는 강하고 질서는 견고하지만, 그 질서에 금이 가는 곳은 거대한 반격이 아니라 서로의 생채기를 몸에 새기고 함께 아파하는 몸들의 흐느낌에서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보여 준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버려진 몸으로 버려진 자들 곁에 있는 것. 강한 자들의 질서가 그 몸을 죽였지만 그 연결은 결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완전히 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의 피부에 서로의 심장에 다정한 친구처럼 자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 살아남아 주십시오."


참가자들은 다이 인(Die in)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순서지에 적힌 '나는 OO으로 함께 애곡합니다'라는 빈칸에 각자 떠오르는 단어를 적은 뒤, 사이렌 소리에 맞춰 바닥에 몸을 눕혔다. 각자의 몸 위에 누인 순서지에는 '엄마로', '아빠로', '이유를 모르고 죽은 광주의 여고생으로', '내 주변의 성폭력 피해자들로', '신당역 여성으로', '인하대 여대생으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회자는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누군가는 죽임당했고,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했지만 끝내 살아남지 못했다"며 "죽은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살아남은 서로의 몸을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눕는다"고 말했다.

나수진 sjnah@newsnjoy.or.kr
Copyright © 뉴스앤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