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전문직이 무너진다…벼랑 끝 내몰리는 청년 변호사·회계사
회계사 자격증 따고도 실무수습 못 해…편의점 알바로 생계 유지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서울 시내 한 공유 오피스. 입주자 명단에는 이름이 올라있지만, 정작 그 자리에 가보면 사무실은 없다. 문서 송달용 주소만 빌려둔 채 간판을 내걸지 못한 변호사들이다. 의뢰인 상담은 인근 카페에서, 서면 작성은 집에서 처리한다. 변호사라는 직함은 있되, 변호사 사무실이라 부를 만한 공간이 없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들을 '사물함 변호사' '사서함 변호사'라고 부른다. 4년제 대학과 3년의 로스쿨, 최소 7년 이상을 투자해 어렵다는 자격증을 손에 쥐고도 월 200만~300만원의 사무실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어 생긴 신조어다. 로스쿨 학자금 대출 상환까지 겹치면 임차료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고정비용이 된다.
문과(文科) 직역의 양대 축으로 꼽혀온 변호사와 회계사가 동시에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한쪽은 시험 합격자 규모가 시장 수용 한계를 넘어선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이미 누적된 과잉 인력이 임금·노동 조건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확산과 정부 정책 변화라는 구조적 변수까지 겹치면서, '전문직 중 전문직'으로 분류되던 두 직역의 위기 신호가 한꺼번에 표면화하는 양상이다.

'월평균 1건' 수임 못 하는 변호사도 수두룩
법조 쪽에서는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감축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변협은 4월24일 논평을 내고 제15회 변호사시험 합격자에 대한 환영의 뜻을 전하면서도 "법조시장의 구조적 포화 상태를 고려하면 이번 감축 폭은 현실적 제안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4월23일 발표한 올해 합격자는 1714명. 응시자는 3364명으로 역대 최다였지만, 합격자는 작년(1744명)보다 30명 줄었다. 하지만 변협이 바라보는 적정 규모는 1500명 이하다. 변호사 중위 소득이 연 3000만원 수준에 머물러 일반 임금근로자 평균 소득(4500만원)을 밑돌고 있고, 월평균 수임 건수가 1건도 되지 않는 변호사도 적지 않다는 점이 근거다. 변협은 국내 변호사 수가 적정 규모보다 5000명 이상 과잉 공급된 상태라고 본다. AI 확산도 인력 감축 논거로 거론된다.
합격자 수가 결정되는 방식에 대한 지적에는 법조계 내부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합격자 수가 시험 시행 전이 아니라 발표 당일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에서 약 2시간30분 만에 결정되는 현행 구조를 '밀실 결정'이라고 변협은 규정한다. 위원회 구성 자체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원 15명 가운데 변호사는 단 3명. 나머지 자리의 상당 부분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이 차지한다. 정원 감축 논의가 있을 때마다 로스쿨 측은 공익의 이름을 들어 합격자 확대를 주장해 왔다. 다만 학교 운영 수익과 직결되는 정원 문제를 공익 논리로 포장한다는 비판도 공존한다. 구조적 한계도 있다. 시험 당일 두 시간 남짓 만에 합격자 규모가 정해지는 구조에서는 중장기 수급 데이터나 시장 분석이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반영되기 어렵다. 변협이 시험 전 사전 공표와 중장기 수급 정책 마련을 함께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공급이 누적되는 동안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변협 홈페이지에 게시된 변호사 채용공고 건수는 2021년 3895건에서 2025년 3167건으로 18.7% 감소했다. 새 변호사가 매년 1700명 안팎 쏟아져 나오는 한쪽에서, 자리를 내주는 쪽은 드물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물함 변호사 현상은 그 어긋남의 말단에서 발생한다. 시장이 수용하지 못하는 규모의 신규 변호사가 매년 배출되면서, 청년 변호사들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강제 개업으로 내몰린다. 강제 개업의 한 형태가 사물함 변호사라면, 또 다른 형태는 사무장에게 이용당하는 경우다. 취업한 사무소에서 대표변호사와 사무장이 갈등을 빚다가, 사무장이 신규 변호사를 데리고 나가 개업을 강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경험도 자본도 없는 청년 변호사가 사무장의 사업 수단으로 동원되는 구조다. 변호사 자격증이 사무장의 영업 무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회계사 급여 테이블 '6년째' 사실상 동결
회계사 쪽 사정도 다르지 않다. 청년공인회계사회가 진단하는 회계사 업계의 적정 인원은 한 해 700~800명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 몇 해 동안 1200명대가 배출되면서 누적분이 한꺼번에 터졌다. 인구 대비 회계사 수가 적다는 통념도 업계는 일축한다. 회계사는 일반 소비자(B2C)를 상대로 하는 직역이 아니라 자본시장 규모에 종속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자본시장이 없으면 회계사 수요는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공인회계사(AICPA)는 한국·일본·중국 등 세계 각지의 응시자가 몰리는 자격증이라 단순 비교가 어렵고, AICPA 취득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반면 한국공인회계사(KICPA) 취득자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국내에서만 일한다. 상장사 규모 대비로 환산하면 한국이 이미 미국을 웃도는 비율로 회계사를 배출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문제는 이 과잉 공급이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1200명을 뽑은 작년, 850명이 미수습 상태로 남았다. 관련 문제가 불거진 뒤 금감원이 30여 명을 채용하고 은행과 일반 기업이 일부를 흡수해 현재 미수습 인원은 700~750명 안팎까지 줄었다. 그러나 올해 다시 1150명이 추가 배출될 예정이어서, 단순 합산만으로도 1850~1900여 명이 다시 갈 곳을 찾아야 하는 구조다.
수급 불균형은 임금과 노동 조건에 반영됐다. 회계사 급여 테이블은 6년째 사실상 동결 상태로, 같은 기간 누적된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면 실질 임금은 30%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급여가 낮아지는 것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 단계다. 인력 단가가 내려가자 회계법인들이 저가 수임 경쟁에 뛰어들었고, 적은 인원으로 무리하게 일을 돌리는 이른바 '덤핑' 관행이 굳어졌다. 그 끝에서 일어난 일이 사망 사고다. 언론에 보도된 사망 사례만 두 건이고, 뇌졸중과 암으로 쓰러진 사례도 적지 않다. 주 100시간에 가까운 노동을 시키면서 추가 수당조차 지급하지 않는 업종이 한국에 몇이나 되겠느냐는 자조 섞인 비판이 업계 안에서 흘러나오는 이유다.
미수습 회계사들의 처지는 더 단적이다. 1~3월 결산 시즌에 계약직으로 일했던 인원들도 시즌이 끝나면 다시 갈 곳을 찾아야 하고, 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다. 5년을 공부해 회계사 자격을 얻었는데, 본업을 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변호사 시장에 '사물함 변호사'와 '강제 개업'이 있다면, 회계사 시장에는 '미수습'과 '편의점 알바'가 동일한 구조의 다른 얼굴인 셈이다.
업황 자체의 침체도 악재로 더해진다. 서울의 한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A회계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회계사 업무는 크게 감사·세무·딜로 나뉘는데, 이 세 영역이 동시에 위축되고 있다"고 전했다. 외부감사는 법령상 의무라 일감 자체는 사라지지 않지만, 비용 절감 기조에 들어간 기업들이 가급적 단가가 낮은 곳을 찾는다. 세무 조정도 사정이 비슷하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영역은 딜 자문이다. 이어 그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서 딜 업무가 줄어들었고, 딜에 부수해 따라붙던 세무 자문 용역도 함께 감소했다"고 말했다. 보수 단가는 10년째 거의 그대로다. 외부 일감 감소와 내부 단가 정체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회계사들의 체감 경기는 통계 이상으로 차갑다는 것이 현장의 설명이다.
여기에 AI 확산이 또 다른 변수로 겹친다. 초급 회계사가 하던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5~10년 차 중급자들이 초급 업무까지 떠안는 형태로 부담이 쏠리고 있다. 그렇다고 일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기업들도 AI를 도입하면서 회계 자료 자체가 방대해졌고, 기초적인 처리는 기업이 자체 해결한 뒤 복잡한 사안만 회계법인에 맡기는 패턴이 굳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회계사에게 들어오는 일감은 난도만 더 높아진 셈이다. 이른바 4대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으로 일컫는 초대형 법인 중 한 곳에서 근무 중인 B회계사는 "지금 당장 AI가 회계사 업무 전반을 대체할 수준은 아니지만, 대체 가능한 영역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며 "4대 회계법인 임원들도 같은 진단을 내놓고 있고, 적지 않은 규모의 AI 투자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기업으로서의 4대 법인은 흔들리지 않겠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회계사 숫자는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업계가 더 큰 문제로 지목하는 것은 정부 정책이다. 전 정부 들어 회계 투명성을 낮추는 제도들이 잇따라 도입됐다는 비판이 회계사 업계에서 이어졌다. 지정감사제도 면제 조항이 새로 만들어졌고, 내부회계관리 제도 적용 대상은 유예되거나 기준이 상향됐다. 무엇보다 강행 규정이었던 표준감사시간 제도가 사실상 무력화됐다. 500시간이 투입돼야 할 회사를 400시간으로 수임한 뒤, 실제로는 회계사를 갈아넣어 500시간을 쓰면서도 그 시간을 기재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회계법인의 저가 수임 구조와 청년 회계사의 과로가 한 몸으로 묶이는 지점이다. 청년 회계사들의 연차 사용 실태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 일이 많아 연차를 못 쓰는 것이 아니라, 표준감사시간이 너무 적게 책정되다 보니 실제로 일한 시간을 입력할 곳이 없다는 게 본질이다. 회계법인이 직원에게 '근무 시간을 입력할 회사를 직접 구해 오라'고 요구하고, 구하지 못하면 그날은 연차로 처리하라고 지시한 뒤 결국 연차를 쓴 상태에서 일을 시키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적정 인원 배출해 달라" 한목소리
해법의 방향은 두 직역이 크게 다르지 않다. 변협은 △내년도 합격자 수 1500명 이하 감축 △시험 시행 전 합격자 수 사전 공표 △AI 확산·인구 감소를 반영한 중장기 수급 정책 마련 등을 법무부에 요구했다. 청년공인회계사회가 제시하는 해법도 세 갈래다. 첫째는 적정 인원 선발이다. 회계법인이 제대로 교육해 시장에 내보낼 수 있는 인원이 700~800명 수준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 규모에 맞춰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 차원의 회계 투명성 정책 복원이다. 그중에서도 표준감사시간 제도 정상화가 현실적인 카드로 꼽힌다. 다른 제도는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표준감사시간은 시행규칙 사안이어서 금융위원회의 결정만으로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회계법인의 저가 덤핑을 차단할 수 있는 근로시간 정확 입력 체계, 이른바 '타임 캐치' 시스템 도입이다.
다만 정부 반응을 보는 시선은 회의적이다. 회계사 업계는 정부가 회계 투명성보다 표 계산을 앞세운 채, 기업과 회계기본법과 무관한 다른 전문직 단체의 눈치까지 살핀다고 본다. 소유·경영이 분리된 외국과 달리, 한국은 재벌 구조 아래 둘이 맞물려 있어 감사 자체를 꺼리는 정서가 강하다. 감사는 준(準)공공재라 시장 자율에 맡길 수 없고 국가가 강행 규정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지적이 업계 안에서 반복해 나오는 이유다. 감사 보수만 봐도 국내 산업은행이나 삼성은 미국의 대형 은행이나 애플과 비교해 100배 이상 격차가 나고, 시가총액 비율로 환산해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정책과 시장의 어긋남이다. 정부가 코스피 8000 시대를 말하면서도 시장 신뢰를 떠받치는 회계 인프라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변협과 청년공인회계사회가 지적하는 '법률 서비스의 질 저하'와 '회계 투명성 후퇴'는 같은 곳을 가리킨다. 두 직역은 단순한 직업군이 아니라, 국가가 자격을 인증해 사회의 신뢰 기능을 위임한 사회 인프라의 한 축이다. 이 축이 흔들리면 비용은 시장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부실 자문을 받은 의뢰인, 부실 회계를 모른 채 투자한 주주, 과거 대우조선해양처럼 회수 불능 채권을 떠안는 국책 금융기관까지 사회가 나눠 떠안게 된다.
공유 오피스 사물함에 이름만 걸어둔 변호사와, 결산 시즌이 끝나면 편의점으로 향하는 회계사의 풍경은 단순한 일자리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길러낸 청년 전문직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지 못한 채 밀려나는 동안, 그 공백을 메우는 비용도 사회의 몫이다. 흔들리는 것은 시장이 아니다. 한 사회가 '자격'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믿어온 토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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