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적 질서와 나선형 절망…<가타카>가 공간으로 쓴 서사

아르떼 2026. 5. 15. 09:4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rte] 박정민-그 영화의 서브텍스트
영화 <가타카>
이야기 속 인물은 '표상'으로 존재해야 한다

어린 시절엔 분명 먼 곳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이 그렇게 좁은 곳이 아니라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간다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해줄 필요가 있다. 자신을 둘러싼 작은 세계 혹은 태생적 한계라는 알을 깨고 나아가도록 이끌어줄, 지향점이 되어줄 우상과 영웅이 필요하다.

<가타카>의 빈센트는 그 지향점에 다다르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 영화는 DNA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열등한 유전자를 안고 태어난 그가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빈센트를 동경의 대상,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가 그를 다루는 방식에는 우리가 스크린 속의 인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중요한 질문이 숨겨져 있다.

이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

영화 <가타카>의 빈센트(에단 호크)는 이상을 향해 날아가는 한 발의 화살 같은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영화 속 인물이 상승과 하강의 아크(Arc)를 그리며 입체적인 서사를 만드는 것과 달리, 그의 삶이 그리는 궤적은 지독히도 우상향이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동생 안톤과의 수영 시합에서 마침내 이기고 난 후 그가 던지는 말이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내가 너를 이길 수 있는 건,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야.”

반면 진짜 제롬(주드 로)은 완벽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끝없는 경쟁의 쳇바퀴 속에서 생의 의지를 상실한 인물이다. 그를 불구로 만든 사고가 불의의 사고가 아닌,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시도였음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그는 빈센트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 또한 빈센트가 아닌 제롬의 몫이다.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빈센트에게, 우리의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은 우주에서 온 것이니 멀리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일지 모른다고 말하며 그 또한 자신만의 세계의 끝으로 여행을 떠난다.

빈센트는 DNA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사회의 규칙을 거스르고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오르려는 범죄자다. 이야기 초반 관객의 이목을 끄는 살인 사건은 맥거핀에 가깝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빈센트 역시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위장된 신분이 탄로 날 것을 불안해하며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을 겪는 모습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를 SF 세계관에 이식해 놓은 것만 같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성급히 판단하지 않는다. 그를 악인으로도 또 영웅으로도 묘사하지 않는다. 최후에 너무도 급격하게 조력자로 변하는 아이린(우마 서먼)과 라마 박사(잰더 버클리)의 인물 변화가 빈센트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를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에 저항하는 강렬한 의지를 지닌 매력적인 투사로 포장하지는 않는다. 그 판단은 철저히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야기 속 인물은 관객에게 '표상(Representation)'으로 남아야 한다. 이야기 속 인물이 마치 광고 속 모델처럼 보는 이의 모방 욕구를 자극하는, 그저 매력적인 스타일을 지닌 인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두 시간짜리 광고나 다름없다. 반면 표상으로서의 인물은 우리가 스스로 들여다볼 수 없는 삶의 다양한 측면을 면밀히 살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내면의 심층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인물의 서브텍스트를 읽어냄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 이 영화 속 빈센트는 자신이 입은 옷이나 안경, 타는 차를 팔기 위한 얄팍한 ‘추구미’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그저 한 발의 화살이 되어 날아가는 이미지가 되어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질 뿐이다.

이 영화가 공간으로 말하는 것

이 영화는 인물에 관해서는 쉽게 결론 내리지 않지만, 공간으로는 많은 것을 말한다. 가타카의 사옥으로 등장하는 공간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마린 카운티 시빅 센터(Marin County Civic Center)다. 넓게 펼쳐진 수평적 구조임에도, 영화에서는 권위와 질서의 상징이 된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자세로 일하며, 끊임없이 DNA와 체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대칭적인 내부 구조는 평등이 아닌 숨 막히는 획일성의 상징이다. 실내에선 자연광이나 외부의 풍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천장의 작고 동그란 창을 통해 바깥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만 겨우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빈센트는 언제나 유리 천장을 통해 발사체를 올려다보고, 감시의 시선으로 대칭 구도의 아트리움 정중앙에서 관객을 내려다보는 듯한 장면이 반복된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빈센트와 아이린이 거대한 구조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익스트림 롱 숏으로 담아냄으로써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왜소해진 인간의 존재를 시각화한다.

반면 제롬의 집 외관으로 등장하는 캘리포니아 폴리텍 대학교(California State Polytechnic University)의 건물은 그 첫 등장에서부터 날카로운 사선으로 하늘을 찌른다. 또한 가타카 사옥과 대조적으로 외부의 푸르름을 내부 풍경으로 끌어들이는 가로로 긴 창, 그리고 통로 공간 등에 크게 열려 있는 거대한 개구부가 더 넓은 세계로의 연결과 그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의 핵심을 가장 궁극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은 제롬의 집 중앙에 있는 나선형 계단이다. 이 공간은 실재하는 곳이 아닌 영화의 서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곳이다. 영화가 DNA에 의해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는 사회의 사다리를 오르려는 빈센트의 이야기를 다루듯, 불구자가 된 진짜 제롬은 언제나 그 계단 아래에 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오직 빈센트다. 하지만 이야기의 절정에서 빈센트의 꿈에 감응한 제롬이 두 팔로만 그 나선형 계단을 기어오르는 장면이 긴 호흡으로 등장한다. 그가 오르는 계단의 형태는, 다름 아닌 영화의 포스터에 그려진 꼬여 있는 DNA의 입체 나선 구조 그 자체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말로 하면 완전하지 않다. 섣부르고 성급한 비유와 상징은 마치 사람들의 소비 욕구만을 자극하기 위해 설정한, 추구미의 대상이 되려는 인물과 같다.

가타카의 주인공 빈센트는 이상을 향해 날아가는 한 발의 화살과 같은 인물이지만,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활시위가 당겨지고 화살이 활을 떠나는 순간까지다. 빈센트가 발사체에 몸을 싣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화살이 어디에 꽂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는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등 예상치 못한 변화가 눈앞에 찾아올 수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활시위를 정확한 힘과 호흡으로 당기고 그것을 온전히 놓아주는 법을 훈련하는 것뿐이다. 무의미해 보이는 시도들의 무수한 반복 속에서 그것을 더 완숙하게 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어쩌면 이 삶에서 이룰 수 있는 진정한 성취다.

어린 시절엔 먼 곳을 동경할 필요가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맹목적인 동경만을 지속한다면 그건 더 이상 꿈이 아닌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잘못된 렌즈가 된다. 광고처럼 욕망하고 싶은 인물을 그려내는 영화는 그런 안 맞는 안경과 같다. 온 세상을 일그러뜨리고,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보게 만든다. 콧잔등에 힘을 주어 보지만 세상은 더 일그러질 뿐이다. 올바른 안경을 쓰기 전까지 그 세계는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영화 속의 인물들은 오히려 우리가 세상을 명료하게 볼 수 있도록, 지금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바깥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니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인식의 안경이 정말 올바른 것인지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정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