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장인이 3D프린터보다 낫네? V&A 캐스트 코트를 걸어보자
'가짜'가 지켜낸 '진짜'의 얼굴
석고 틀에 깃든 인류의 지독한 기록 본능
지난 글에서 박제 동물을 통해 생명의 찰나를 생생하게 기록하고자 했던 인류의 역사를 짚어보았다면, 이번 글에서는 그 시선을 조금 더 확장해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이하 V&A)의 아주 특별한 공간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난 칼럼] 박제된 동물의 눈빛으로 알 수 있는 유구한 생명의 역사
V&A의 한국 소장품들이 전시된 한국관을 지나면 큰 통로 양옆으로 거대한 조각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천장을 뚫고 올라갈 것 같은 거대한 기둥을 보며 시선을 옮기면, 자연광이 드리우는 천창의 빛이 조각과 만나 눈이 아릴 정도의 장관을 연출한다.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면 이 거대하고도 정교한 석상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마치 거인국에 갇힌 듯한 압도적인 느낌마저 든다. 이곳은 V&A의 영구 소장품 갤러리 중 하나인 ‘캐스트 코트(Cast Court, 석고 복제 전시장)’다. 웅장한 건축물처럼 보이는 이 소장품들은 놀랍게도 모두 석고로 본을 떠서 만든 복제품들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석고는 다방면에서 요긴하게 쓰였다. 이전에는 건축적 장식 요소나 개인 소장용으로 주로 소비되었다면, 이 시기에는 발굴 작업, 해부학, 가상 복원 등 여러 학문에서 기록과 연구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유물 표면에 얇은 막을 입힌 뒤 석고 조각들을 퍼즐처럼 붙여 틀을 만드는 ‘피스 몰딩(Piece Moulding)’ 방식을 주로 사용했는데, 비교적 복잡하지 않은 공정과 단시간에 굳는 석고의 특성 덕분에 정교한 복제본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이 방식은 박물관과 대학교 등에서 교육적 목적으로 널리 쓰이며 빠르게 확산되었다.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먼 나라의 유산을 원형 그대로 재현해 대중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인류의 열망은, 석고 틀이라는 기술을 통해 물리적인 실체로 구현될 수 있었다.
이 캐스트 코트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트라야누스 원주(Colonna Traiana)’다. 전시장 홀 중앙에 우뚝 솟은 두 기둥은 사실 하나의 거대한 기둥이다. 서기 113년, 로마 제국의 황제 트라야누스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원본은 높이가 30m에 달한다. 실내 박물관에 이를 그대로 재현하기에는 높이의 한계가 있었기에, 원주를 반으로 나누어 두 개의 기둥으로 나란히 전시하는 과감한 방식을 택했다. 하나의 기둥만으로도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데, 이 둘이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은 관람객에게 기묘하면서도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V&A는 초기에 먼저 본을 떠 간 프랑스로부터 석고 틀을 모두 사들여 제작에 착수했다. 각각의 석고 조각은 벽돌로 만든 기둥 위에 입체 퍼즐처럼 정교하게 조립되었다. 약 200m에 달하는 나선형 부조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재현해낸 이 대공사는 1860년대에 시작되어 약 10년이 지난 1874년에서야 완성되었다. 공개 직후 이 기둥은 학계와 대중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으며, 특히 기둥에 새겨진 서체는 현대의 문자 디자인에도 깊은 영감을 주어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Trajan’ 서체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트라야누스 기둥을 지나 홀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벽면에 한 건축물의 한 면처럼 보이는 거대한 파사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바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입구를 그대로 옮겨놓은 ‘영광의 문(Portico de la Gloria)’이다. 수백 명의 성인이 정교하게 조각된 이 문은 석고임에도 불구하고 원본의 차가운 돌 질감을 매우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원본이 있는 대성당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순례자들의 필수 코스로, 유럽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순례지 중 하나이다. 장인 마테오에 의해 1188년에 제작되었으며, 중세 시대 때에는 순례자들이 이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영광의 문의 중앙 기둥에 손을 짚고 산티아고 조형물에 이마를 맞대었다고 한다. 이처럼 영광의 문은 인류의 역사적, 종교적 유산을 대표하기도 한다. V&A는 당시 최고의 석고 복제 전문가였던 도메니코 브루치아니(Domenico Brucciani)에게 의뢰해 이 거대한 문을 제작했다. 당시 브루치아니의 팀은 스페인 현지에서 머물며 거대한 석고 틀을 제작했는데, 단 두 달 만에 석고 본을 모두 뜨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수많은 복제본 사이, 필자의 시선이 유독 오래 머무는 곳이 있다. 트라야누스 기둥 옆, 화려한 장식으로 덮인 높은 탑 모양의 ‘성막(Tabernacle) 제단 장식’이다. 조각가 코르넬리스 플로리스 2세(Cornelis Floris II)가 만든 이 작품의 원본은 벨기에 성 레온하르트 성당에 있다. V&A의 초대 관장 헨리 콜의 주도로 1876년 벨기에 정부와의 협력 끝에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육중한 제단 장식의 뒷면으로 돌아가면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조각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설치된 작은 아크릴창이다. 앞면의 우아함과는 대조적인 투박한 나무 지지대와 짚단, 그리고 거친 석고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거대한 외형을 지탱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하는 물리적 설계의 고단함을 증명하는 동시에, 이 소장품이 ‘진짜 돌’이 아닌 ‘정교하게 조립된 아카이브’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창이기도 하다. 이 제단 또한 18m 이상의 높이를 자랑하는데, 가장 아래 기초부터 천장에 닿는 끝부분까지 이러한 집요한 설계 덕분에 150년의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다.


V&A 캐스트 코트의 흥미로운 점은 꽤나 역설적이기도 하다. 원본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제본들이지만, 때로는 낡고 훼손된 원본보다 더 선명하고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트라야누스 원주가 야외에서 매연과 비에 뒤덮여가며 부식되어 갈 때, 런던의 복제본은 19세기의 공기 속에서 원본의 전성기를 박제하듯 지켜냈다. 이제는 거꾸로 학자들이 유물의 원형을 고증하기 위해 이 ‘가짜’들을 찾아와 참고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이 거대한 복제품들의 역사가 늘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1928년 V&A 자문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0세기 초에 들어서며 복제품이 독창성을 저해하고 교육적으로 해롭다는 회의론이 대두되면서 소장본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세계의 유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캐스트 코트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오랜만에 맑게 갠 런던의 하늘 아래서 전 세계의 역사를 여행하고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비록 석고의 몸을 빌린 가짜일지라도, 그 안에는 그 모습을 잊지 않고 담아내려 했던 인류의 지독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언젠가 실제 원본이 있는 로마의 광장과 스페인의 순례길에서 이 거대하고도 정교한 이음새들을 찾아 이들이 지켜낸 원래의 얼굴을 확인해보고 싶다.
런던=박소연 테이트 미술관 수장고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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