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재즈'를 아시나요…신민요와 세마치, 스윙의 접합
신민요와 재즈가 결합된
독특한 '조선 재즈' <신 노들강변>
이난영의 <봄버들>이 같은 곡임이 밝혀지며 다시 주목받다
지명도나 인기는 꽤 높았지만 자신의 오리지널 히트곡은 의외로 거의 없는 가수들이 있다. 그중 데뷔 시기가 가장 이른 인물로 꼽히는 이가 바로 가수이자 배우이기도 했던 신(申)카나리아다. 2006년 11월에 아흔네 살로 세상을 떠난 그의 노래 중 그나마 알려진 곡을 들자면 2005년 8월 개봉 영화인 <웰컴 투 동막골>에 삽입곡으로 사용된 <승리 부기>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 수가 800만 명이 넘었으므로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더러 있겠으나, 그 노래의 가수가 신카나리아라는 것까지 아는 경우는 아무래도 많지 않은 듯하다.

카나리아처럼 목소리가 곱다 해서 예명도 카나리아가 되었던 그는, 데뷔 50년 만인 1979년에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집 LP 음반을 한 장 발표했다. 음반에는 총 열네 곡이 수록되었는데, 한편으론 놀라우면서 또 한편으론 당연하게도 신카나리아의 오리지널로 분명히 확인되는 작품은 수록 곡 중 하나도 없다. 대부분 다른 가수가 불러 인기 있었던 노래를 다시 녹음한 것이라 별로 특기할 만한 점이 없지만, 흥미로운 예외가 한 곡 있다. 이번에 풀어 볼 곡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그 노래, <신 노들강변>이다.
음반 뒷면 첫 번째 곡으로 수록된 <신 노들강변>은 우선 작자 표기부터가 심상치 않다. 제목은 하나인데 작자는 ‘미상 작사/문호월(文湖月) 작곡’, ‘미상 작사/이봉룡(李鳳龍) 작곡’ 두 가지로 쓰여 있다. 노래를 들어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기는 하다. 전반부는 세마치장단에 실린 민요풍 가락이지만, 후반부는 같은 가사가 전혀 다른 경쾌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불린다. 1934년 2월에 발표된 신민요 <노들강변>에다 또 다른 곡조를 새로 만들어 붙인 것이기에 제목도 <신 노들강변>이 되었다.


그런데 <노들강변>의 작곡자가 문호월인 것은 맞지만, 작사자를 '미상'으로 은폐한 데에는 나름 역사적 배경이 있다. <노들강변> 가사를 쓴 이가 다름 아닌 유명 만담가 신불출(申不出)이고, 그가 1946년에 월북했기 때문에 이후로는 그 이름을 공식적으로 음반에 쓰기가 곤란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신불출을 '미상'으로 처리한 것과 비슷한 문제는 이봉룡 표기에도 있다. 사실 <신 노들강변> 후반부 멜로디는 이봉룡의 작품이 아니라 그 매부인 김해송(金海松)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직후 서울을 점령했다가 석 달 만에 퇴각한 북한군에게 김해송이 끌려가 사라진 뒤, 그 이름 역시 공식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기피될 수밖에 없었다. 김해송의 작품은 이후 거의 다 처남 이봉룡이 만든 것으로 둔갑했다.

납북되기 전까지 최고의 대중음악가로 활약했던 김해송의 <신 노들강변>은 신민요와 재즈, 세마치와 스윙이라는 이종(異種)의 접합으로 이루어진 주목할 만한 작품이지만, 언제 만들어지고 발표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 1940년 전후 조선악극단 무대에서 김해송이 멤버로 참여했던 아리랑보이즈의 연주로 첫선을 보였던 것 같은데,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역시 아리랑보이즈 멤버이자 배우 겸 인기 재즈 가수였던 이복본(李福本)의 1942년 8월 공연 기록에 등장하는 <노들강변>은 신민요가 아니라 <신 노들강변>이었음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해방 무렵까지 아리랑보이즈 또는 이복본의 노래였던 <신 노들강변>을 신카나리아도 부르게 된 계기는 그의 K.P.K 악단 가입이었을 것이다. 해방 직후 김해송이 조직한 K.P.K 악단에서 신카나리아는 이난영(李蘭影), 장세정(張世貞)과 함께 트리오로 무대에 자주 섰고, 조선악극단에서 아리랑보이즈가 했던 것처럼 <신 노들강변>을 같이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혼자 불러서 안 될 것은 아니지만, <신 노들강변>의 ‘에헤요 데헤요’ 후렴 대목은 여럿이 메기고 받으면서 불러야 입체적이고 흥겨운 맛이 제대로 살아난다.
김해송 특유의 ‘조선 재즈’ 풍미가 짙은 <신 노들강변>은 1940년대 공연에서 많은 관객을 열광케 했으나, 당대에 녹음이 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환갑을 훨씬 넘긴 뒤에 녹음한 신카나리아의 <신 노들강변>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도 남겼다. 가수의 목소리는 이미 노쇠했고, 편곡도 그 옛날 김해송의 감각을 충분히 구현하지는 못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전인 2016년 6월, <신 노들강변>이 1940년대 SP 음반으로도 존재했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김해송의 아내이기도 했던 가수 이난영의 탄생 100년을 맞아 제작된 <이난영 전집>에 수록된 <봄버들>이 바로 <신 노들강변>이었음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1946년 7월쯤 설립된 최초 국산 음반 회사인 고려레코드에서 1947년 가을 무렵 발매한 <봄버들>은 해방 이후 이난영의 첫 음반인 동시에 국내에서 제작된 첫 번째 대중가요 음반이기도 하다. 김해송의 편곡, K.P.K 합창단과 악단의 녹음 참여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난영의 <봄버들>에서 아쉬운 점을 굳이 하나 꼽자면, 신카나리아의 <신 노들강변>과 달리 전반부에 신민요 <노들강변> 대목이 없다는 것이다. 김해송 멜로디만으로도 연주 시간이 2분 50초 가까이 되므로, 그 앞에 <노들강변>을 붙여 SP 음반에 담기는 당시 열악한 기술 수준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래도 날렵한 피리 소리와 부기우기에 가까운 경쾌한 리듬의 조화는 거친 잡음 속에서도 이난영의 목소리와 함께 풍성하기만 하다.

살랑바람에 버들이 능청거리는 이 봄날, <신 노들강변>과 <봄버들>을 듣노라면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또 돋는다. 이런 작품을 이렇게만 들어야 하는 걸까. 그러면서 자연히 바람도 한 가지 생긴다. 조선 재즈와 한국 재즈의 단절 국면을 접합할 수 있는 젊은 음악가들의 새로운 작업이 김해송의 <신 노들강변>을 통해 피어나면 좋겠다고.
이준희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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