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스승과 위스키를 마신다면,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정인성의 예술 한잔]
일 년 열두 달 중 5월을 편애한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녹음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길에는 기분 좋은 선선함이 살결을 스친다.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처럼 공휴일이 넉넉해 회사원은 물론이고 자영업을 하는 입장에서도 좋다. 자영업자들은 사람들이 쉬는 날일수록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5월은 소중한 이들에게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날도 많다. 스승의 날을 떠올리며, 그 감사의 마음과 어울리는 영화와 위스키를 뽑아 봤다.
<굿 윌 헌팅(1997)>은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제목은 들어봤을 법한 명작이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거스 밴 샌트가 감독을 맡고,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 그리고 로빈 윌리엄스가 주조연으로 출연했다. 흥미로운 점은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연기를 넘어 각본까지 맡았다는 사실이다. 영화 제목인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주인공 ‘윌 헌팅(Will Hunting)’이라는 인물 자체를 뜻하기도 하고, 그가 삶 속에서 ‘선한 의지(Good will)’를 찾아 나가는 과정(Hunting)’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스턴 출신인 두 배우의 성장기가 녹아든 이 각본은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수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야기는 보스턴에 위치한 세계적인 대학 MIT에서 시작된다. 수학과 교수 제럴드 램보(스텔란 스카스가드)는 강의를 진행하며 복도 칠판에 적어둔 푸리에 해석(Fourier analysis)을 푼 학생을 수제자로 삼겠다고 공표한다. 그의 수제자가 된다는 것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쇼팽을 사사하는 것처럼 성공이 보장되는 길이었다. 참고로 램보 교수는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였다.
며칠 뒤, 학생들은 램보를 찾아가 칠판이 채워졌다고 이야기한다. 램보는 들뜬 표정으로 강의 시간에 자신의 수제자가 될 학생을 찾지만,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고 보니 증명을 해낸 사람은 수업을 듣는 학생도, 다른 과의 학생도 아닌 청소부 윌 헌팅(맷 데이먼)이었다.
윌은 램보가 증명하는 데 몇 년이나 걸린 문제도 금방 풀어낼 정도로 천재적인 두뇌를 지녔다. 동시에 어린 시절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학대받았던 기억으로 폭력적이면서 방어적인 성격으로 성장한 청년이기도 했다. 그가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이유도 보호 관찰을 받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램보는 윌에게 보호 관찰을 받는 대신, 자신의 제자가 되라고 제안한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윌은 받아들이긴 했으나 치료에 강한 반발심을 가지며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다. 여러 상담사의 포기에 지친 램보는 최후의 선생을 찾아간다. 벙커 힐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정신의학을 가르치며, 동시에 자신의 동창이기도 한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에게 윌을 데려간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 윌은 언제나 그렇듯 선을 넘어 숀을 도발한다. 숀은 윌의 멱살까지 잡지만 다른 선생처럼 포기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날 밤 고뇌 가득한 그의 손에는 위스키 한 잔이 들려 있었다. 곁에는 부쉬밀 오리지널이 한 병 놓여 있었다. 고민이 가득하던 밤, 그는 왜 하필 부쉬밀을 마시고 있었을까.

아일랜드 위스키를 상징하는 브랜드, 부쉬밀(Bushmills)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단연 ‘헤리티지’다. 이들의 역사가 어느 정도냐 하면, 무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위스키 제조 면허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증류소의 공식 설립은 1784년으로 여타 노포 증류소들과 궤를 같이하지만, 왕실로부터 공식 권한을 부여받은 시점은 그보다 훨씬 앞선 16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0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부쉬밀은 변함없이 인근 부쉬 강의 물을 길어 올리며 위스키를 빚어왔다. 부쉬밀 홈페이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문구들은 그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체감하게 한다.
(Bushmills is more than just a whiskey. It’s a village, where family, friends and neighbours work side by side at the distillery. As we often say, “without the village there would be no whiskey, and without the whiskey there would be no village.”)

부쉬밀은 그 유구한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폭넓은 제품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블렌디드와 싱글몰트 위스키를 모두 생산한다는 사실인데, 이는 두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 스코틀랜드 증류소들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오리지널’과 ‘블랙 부쉬’가 대중적인 블렌디드 라인업을 책임진다면, 10년부터 21년에 이르는 숙성 라인은 싱글몰트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가벼운 하이볼이나 입문용으로는 블렌디드를, 위스키 본연의 향을 만끽하려는 애호가들에게는 니트나 온더락으로 즐기는 싱글몰트를 권할 만하다. 아일랜드 위스키 특유의 3회 증류가 빚어낸 극강의 부드러움은 부쉬밀의 모든 라인업을 관통하는 가장 큰 매력이다.

숀의 잔을 채웠던 부쉬밀 오리지널(Bushmills Original)은 브랜드를 상징하는 얼굴과도 같다. 일명 ‘화이트 라벨’로도 불리는 이 제품은 합리적인 가격과 뛰어난 접근성 덕분에, 부쉬밀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대개 이 술로 첫발을 뗐을 것이다. 1888년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레시피를 고수하며, 버번과 셰리 캐스크에서 5년간 숙성한 몰트 원액에 그레인 위스키를 절묘하게 블렌딩해 완성한다. 봄꽃처럼 화사한 과일 향 뒤로 은은한 바닐라와 꿀의 풍미가 피어나며, 입안에 닿는 질감은 한없이 부드럽다. 깔끔한 피니시 덕분에 일상의 어느 순간에도 기분 좋게 곁들일 수 있는 데일리 위스키의 정석이다.
그렇다면 숀은 왜 하필 부쉬밀을 선택했을까? 그가 거주하는 보스턴 남부는 전통적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삶이 깃든 동네다. 윌과 친구들이 펍에서 기네스를 들이켜는 장면처럼, 아일랜드계인 숀에게 부쉬밀은 단순한 술을 넘어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소울 드링크’였을 것이다.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윌을 떠올리며 마음을 정리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술은 없다. 홀로 위스키 잔을 기울이며 윌의 내면을 반추했을 숀은 이후 호숫가에서 윌의 인생을 꿰뚫는 명대사를 건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윌의 굳게 닫힌 마음이 아주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즈음부터였을 것이다.

<굿 윌 헌팅>은 인생에서 참된 스승이 왜 중요한지를 집요하게 설파하는 작품이다. 천부적인 재능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누군가는 그 천재성으로 상대성 이론을 정립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세상을 파괴하는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스승이란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윌에게는 숀과 램보 뿐만 아니라, 진정한 우정을 보여준 처키(맷 데이먼)와 사랑을 일깨워준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가 있었다. 각 인물이 윌의 영혼에 어떤 방향성을 불어넣어 주었는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감상해 보길 권한다. 만약 당신의 삶에도 이런 귀한 인연이 있다면, 함께 기울일 잔으로는 부쉬밀이 더할 나위 없겠다. 책바 한편에도 당신을 위한 부쉬밀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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