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플은 왜 '로봇 개'에 일론 머스크와 워홀의 얼굴을 달았나
비플(Beeple)의 《Regular Animals》
오늘날 미술과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트포럼」 5월호에 실린 사이먼 데니(Simon Denny)의 글 ‘장엄한 분노: 방산 기술의 검은 미학(Epic Fury: The Dark Art of Defense Tech)’은 다음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나는 나 자신을 아티스트로 본다.” 바로 미국 방산 AI 기업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Alex Karp)가 올해 3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 테크 서밋에서 한 말이다.
데니는 이 발언을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방산 기술 기업들이 스스로를 세계를 조직하고 감각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미적·문화적 권력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징후로 읽는다. 그는 오늘날 기술 산업이 단지 미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보게 만드는’ 방식을 점유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이 글을 읽은 지 불과 며칠 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에서 열린 아티스트 토크에서도 거의 유사한 이야기가 등장하였다. 바로 2021년 NFT 작품을 약 6,900만 달러에 판매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비플(Beeple, 본명: 마이크 윈켈만(Mike Winkelman))의 토크에서였다.
그는 지난해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발표해 화제를 모았던 <Regular Animals>(2025)를 4월 29일부터 5월 10일까지 신국립미술관에서 선보였다. 전시와 함께 열린 토크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 속 로봇 개에 일론 머스크(Elon Musk)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그리고 피카소(Pablo Picasso), 앤디 워홀(Andy Warhol), 자기 자신의 얼굴을 왜 붙였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과거 피카소나 워홀 같은 예술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면, 오늘날에는 기술 기업 수장들이 알고리즘과 플랫폼을 통해 우리의 시각과 감각을 조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이먼 데니가 지적한 ‘기술 기업의 미학화된 권력’과 정확히 맞물린다.

<Regular Animals>는 언뜻 보면 우스꽝스럽다. 워홀, 저커버그, 머스크, 피카소, 비플 그리고 김정은 등의 얼굴을 한 로봇 개들이 전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로봇 내에 장착된 AI가 이미지를 그들의 스타일로 재가공한 뒤 배설하듯 프린트로 출력한다.
그러나 이 유머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비플은 오히려 미래의 일상성을 시뮬레이션한다. 지금은 기괴해 보이지만, 언젠가는 알고리즘과 로봇이 인간의 감각과 판단을 매개하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작품 제목에서의 ‘regular’ 역시 그러한 일이 평범해진 미래를 암시한다.

이제 권력은 더 이상 이념의 형태로 등장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선언한 알렉스 카프처럼, 오늘날의 대중은 예술가가 아니라 알고리즘 추천, 바이럴 이미지, 사용자 경험 등으로 포장된 ‘예술적’ 기술 산업이 제시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비플은 이러한 기술 기업과 플랫폼 문화의 시각 체계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동시에 비판한다.
비플의 전시 옆에는 백남준의 <앤디 워홀 로봇(Andy Warhol Robot)>(1994)이 함께 배치되어 눈길을 끌었다. 백남준이 텔레비전과 비디오 기술을 통해 매스미디어 시대의 이미지 생산 방식을 탐구했다면, 비플은 AI와 알고리즘, 플랫폼 경제 이후의 시각 체계를 다룬다. 두 작품 모두 워홀을 소환하지만 그 맥락은 다르다. 백남준은 당시 워홀을 이미지 복제 가능성의 상징으로 나타냈지만, 비플에게 워홀은 자본주의와 소비문화의 선구적 모델로 해석된다.

비플이 갤러리나 전통적 미술제도를 거치지 않고 이미지를 배포하는 방식 역시 동시대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 미술관과 제도 및 비평이 수행한 승인 기능을 이제는 플랫폼의 트래픽과 알고리즘이 대체하고 있음을, 즉 문화 권력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Regular Animals>는 단순히 AI에 대한 전시가 아니다. 누가 세계를 보게 만드는가를 일깨우는 전시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미술과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일까. 과연 여전히 세상을 새로이 바라보게 하는 시각과 질문을 제시하는 주체인가, 아니면 이미 플랫폼이 생산한 감각과 이미지를 뒤따르며 더 많은 관객을 유치하려는 흥행을 기획하는 이들일까.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사고를 조직하는 권력은 이미 플랫폼 기업과 알고리즘 설계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플은 그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기보다 이미 시작된 현재의 풍경처럼 보인다.

베를린=변현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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