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에서 곱창 칼 쓰다가 글 쓰다가 [.txt]
축산시장서 ‘내장 장사’ 15년 사장 전효원
일터에선 휴대폰으로 창작, 쉰 넘어 첫 장편
“시장이 영감…재미있는 사회파 장르 지향”

‘겸업 작가’의 노동을 문학 기자가 탐문합니다. 일과 글 사이 거리와 풍경을 부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이주 노동자에만 국한된 게 아니에요. 여기 마장동 시장 자체가 그런 곳이랄까요. 특히나 내장 쪽은 더 심해요.” “뽑은 직원이 하루도 못 채우고 도망가는 일이 허다해요. 마트 정육점처럼 깔끔한 일을 할 줄 알고 왔다가 내장 모양이나 냄새에 질려서 그만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화물 승강기 한번 타보고는 곧장 집으로 가버렸어요.”
최근 소설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의 한 대목이다. 서울 마장동 축산물시장이 배경 중 하나다. 고래로 편견이 넘쳐났던 곳 아닌가. 자본과 노동 사이는 물론 노동자 간, 하물며 지육과 내장 사이 ‘서열’과 ‘욕망’으로 들러붙는 시장의 내·외경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곧이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2월 초 이 장편을 출간한 전효원(51) 작가의 ‘본캐’가 마장축산물시장 내 “곱창 대창 우부산물 납품 전문” 업체의 대표다.
지난 11일 정오께, 시장 내 남문 쪽 5평 안팎의 매장에서 칼 한자루 들고 소 내장을 손질하는 전 작가, 아니 전 대표를 만났다. 오후 6시경까지 소 7두가 들어오기로 한 날이다. 거래처인 충북 음성 농가에서 잡는 대로 올려보낸다. 내장은 신선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한마리가 일착했고, 전 대표의 “야스리”(막대 모양의 줄)에 벼려가는 칼질도 막 시작됐다. 30~40분에 걸쳐 곱창, 대창을 떼어 씻고, 천엽을 씻어 썬다. 둘이서 하는 일이다. 두번째 소를 기다린다. 낮 3시가 되면 포장해 도처로, 멀리 수원 식당에까지 배송한다.
곱창이 9㎏, 대창이 4㎏ 남짓 똬리를 틀어갈 즈음, 앞 가게에선 중년 둘이 소주 2병을 비우고 있었다. 외국계 회사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뎠던 전 대표가 부모의 가게를 이어받은 2011년부터 되풀이되는 풍경이겠다. 칼을 쓰는 일과 칼을 쓰는 일 사이 휴대폰에 쓰는 글로 45살 되던 2020년 첫 단편을 완성하고, 이듬해부터 3차례 장르 공모전에 입상했고 6종의 앤솔러지를 냈으며, 첫 단독 단행본을 첫 장편으로 올해 출간했다. 2년 전에야 노트북을 마련해 퇴근 뒤나 주말 창작 작업 때 쓴다. 이 기간 이주 노동자는 동남아계 다수에서 중국, 몽골로 희석됐고, 우내장 취급 업체도 늘었다. 어지간히 불변하는 것이 있었으니, 전 대표가 ‘전 작가’처럼 말했다.
“마장동엔 정말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어요. 루틴대로 반복되는 것 같다가도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일을 벌일지 예상하기 힘들 때가 많죠. 여러 나라 이주 노동자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특히 그들을 향한 편견이나 무심한 혐오 같은 걸 직접 보고 들었어요. 이들은 약자라서 피해자가 되기 십상인데,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무작정 가해자로 지목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이번 작품에 녹아들었습니다.”


소설은 마장동 시장에서 일하다 “증발”된 엘리트 중국인 노동자 문소평으로부터 발단한다. 그의 연인이 소평이 일했던 부산물 취급 업체의 딸 김유정이고, 유정과 함께 소평을 찾아 나서는 이가 주체적 이주 여성 부응옥란(베트남)이다. ‘마장동’을 모르면 죄다 장르적 설정으로 치부되고 말 한국 사회 단면이 이처럼 압연되어,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노동자들을 호명한다. “중국어 ‘니자이나리’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란 말로, 사라진 그를 향한 질문이면서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작가는 덧붙인다.
전 작가는 1975년 전북 김제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로 대학 진학하자 농사짓던 부모도 상경하여 마장동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2011년 부모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대신 시장에 남은 이가 그다. “마땅히 이어받을 사람이 없고, 그간 닦아둔 기반이 증발하는 걸 볼 수만은 없었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그가 첫 직장을 그만둔 뒤 운영하던 바·카페를 마저 정리했다.
“소-돼지 곱창을 구별하기는커녕, 양곱창이 양의 내장인 줄 알았던 초짜”는 부모 밑에서 1년가량 일을 배웠다. “그리 안 들던 칼이 어머니 손에 들어가면 명검으로 변하는 걸” 놀랍게 보았다. 15년차가 되었으나, 최근엔 “한뼘도 안 되는 과도로 내장 손질을 마무리”한 달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칼은 정직하다. “칼을 쥔 손보다 반대편 손이 중요하여” 양손의 거리가 적정치 않으면 다친다.
그에겐 명함이 둘이다. 본명이 적힌 업체 대표 명함과 아내 이름을 필명 삼은 작가 명함이다. “농사든 내장 장사든 부모님 일을 부끄러워해 본 적 없다”는 작가는 “대신 저는 내장 장사하는 저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분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고 말했다. “역으로 소설을 쓴다는 걸 주변 상인들이 알게 되는 게 부끄러웠달까. 지난 5년여 동안 시장 사람들에겐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첫 장편이 두 정체의 거리를 재조정하고 있다. “소설 출간 사실이 알려져 많은 축하와 칭찬을 받았다. 알고 보니 주변에 서평단 활동까지 하는 분이 계셨다. 요즘 책은 어떻게 사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분들도 서로 물어가며 제 책을 사주셨다. 여전히 부끄럽긴 해도, 어느 정도 부끄러움을 참아낼 용기가 생긴 것 같다.” 그가 시장 내 사진 취재에 응하며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단 한번 창작을 배워본 적 없다. 학창 시절 글짓기상도 받고, 무협지·스릴러·판타지를 가리지 않고 읽던 소년의 ‘재미있는 소설가’라는 막연한 꿈만 있었을 뿐이다. 포부는 이제 더 길어지고, 명료해져 있다.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을 추구합니다. 독자일 때와 마찬가지로 작가로서도 판타지, 에스에프(SF), 미스터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고르고 섞어 씁니다. 위트와 유머가 중요한데, 자기들끼리만 낄낄대는 방식이 아니라, 다치는 사람 없이 모두 함께 ‘하하’ 웃을 수 있는 방식을 지향하고요. 그러다 뭔가 한두가지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사회적 약자나 소외 계층 이야기를 주로 다루니까요.”
늦깎이 작가는 하여 작가 명함에 이렇게 쓰고 있다. “글을 쓰거나 칼을 씁니다.” 글이 벼려지는 원리가 칼과 같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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