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없다” 한 교사의 외침…‘스승의 날’이 불편한 교실 [세상&플러스]

김용재 2026. 5. 15.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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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교사 “선생님들 스승의날도 부담스러워해”
과거 체벌 기억은 교권 회복 논의에 불신으로
현직교사 “상담 땐 녹음기”…방어적 교단 현실
전문가 “스승은 동기와 비전을 이끄는 존재”
현직 교사가 스승의날을 앞두고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갑옷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라고 표현한 모습을 AI로 제작한 그림. [제미나이로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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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스승은 없다.”

25년 가까이 교단에 섰던 윤수진 전 중등교사는 2026년 스승의날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스승의날은 여전히 교사에게 감사하는 날로 불린다. 그러나 교단 안팎의 온도는 다르다.

교사들은 스승의날을 기념일보다 민감한 날로 받아들이고, 일부 시민은 과거 교사에게 받은 상처를 떠올린다. ‘스승’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한 방향의 존경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감사의 이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의 이름이 됐다.

스승의 의미가 ‘존경받는 권위자’에서 ‘신뢰와 전문성을 다시 증명해야 하는 교육 전문직’으로 바뀐 2026년, 헤럴드경제는 퇴직교사·현직교사·교대생·교육학 교수에게 스승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퇴직 교사 “존경과 신뢰를 전제로 한 ‘스승’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윤 전 교사가 ‘스승이 없다’고 말을 꺼낸 이유는 최근 만난 현직 교사들의 ‘스승의날’에 대한 반응 때문이었다. 그는 “현직 교사들이 모였는데 스승의날을 다들 싫어하더라”며 “학교 재량휴업일이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한 목소리로 나왔다”고 전했다.

학생들이 건네는 과자나 음료와 같은 간식, 학부모가 들고 오는 꽃도 이제는 감사보다 부담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라 했다. 초등·중등을 가리지 않고 스승의날에 ‘쉬고 싶다’는 선생님들이 늘어난 가운데 실제로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스승의날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한 학교는 전국 초·중·고 약 1만2000개교 가운데 105개교(0.9%)에 달한다.

윤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여전히 학교에 있지만 예전처럼 존경과 신뢰를 전제로 학생의 삶을 이끄는 ‘스승’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워졌다고 언급했다. 그는 “학교 상황이 많이 힘들어졌다”며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컸다”고 말했다. 특히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학부모 대응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컸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교실의 변화는 단순한 세대 차이가 아니었다. 교사의 권위가 약해진 반면,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는 보다 직접적이고 강해졌다. 학생 지도 과정에서 교사의 말이나 감정 표현이 문제로 제기되고,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줬다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오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윤 전 교사는 이런 현실을 ‘폭탄 돌리기’라고 표현했다. 지도가 어려운 학생을 맡는 과정에서 교사들 사이의 갈등까지 커졌다는 의미다. 그는 “선생님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 피로도와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며 “사이가 좋아야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예민해져 있다”고 말했다. 또 “퇴직하고 나와서 그들을 거기다 두고 나온 게 미안할 때가 많다”고 했다. 윤 전 교사는 정년을 6년 남기고 교직을 떠났다.

2006년 개봉한 공포영화 ‘스승의 은혜’ 유튜브 리뷰 영상 댓글 창에 달린 문제적 경험담 요약. 김용재 기자
과거 권위의 학교에 대한 불만 표출…“그때 왜 그러셨느냐”

교사의 권위가 약해진 현실만으로는 2026년 스승의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 사회가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배경에는 과거 학교 권위의 상처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스승의날을 앞두고 온라인에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 대신 ‘그때 왜 그러셨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2006년 개봉한 공포영화 ‘스승의 은혜’ 유튜브 리뷰 영상 댓글 창에는 과거 교사에게 당했다는 문제적 경험담이 잇따라 올라왔다.

댓글 상당수는 영화 감상이 아니라 과거 학교생활에서 겪었다는 ▷체벌 ▷모욕 ▷차별 ▷촌지 관련 경험담이었다. 과거 학교와 교단에 대한 불신이 스승의날을 앞두고 집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해당 유튜브 영상은 스승의날을 앞두자 댓글이 100개 이상씩 쏟아졌다.

일부 댓글은 현재 교권 회복 논의에 대한 냉소로도 이어졌다. 교권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 ‘과거 교사들의 권위 남용 때문’이라는 취지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한 댓글 작성자는 “과거 부당한 일을 당한 세대가 지금 연차가 높은 교사나 관리자 세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과거 일부 교사의 권위 남용 경험을 현재 교사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돌리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의 교사들은 과거와 정반대의 문제를 호소한다. 권위가 너무 강해서가 아니라 정당한 교육활동을 할 권한과 보호장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갑옷을 입고 학교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교사의 모습. [챗GPT로 제작]
현직교사 “갑옷을 두르고 출근한다”·“우리는 그저 직장인”

현직 교사들의 체감은 더 직접적이다. 한 초등교사는 요즘 교사들은 스스로를 ‘갑옷 입은 사람’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여기서 갑옷은 물리적 보호장비가 아닌 법적·심리적 방어막이다.

초등교사 박모 씨는 “출근하는 게 전장에 나가는 기분”이라며 “아이가 울어도 달래주기보다 신체 접촉으로 오해받지 않을까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 상담 때도 “나중에 증거가 될까 봐 녹음기부터 챙긴다”고 했다. 박 교사는 “스승이라는 단어는 너무 거창하다”며 “우리는 그저 다치지 않고 퇴근하고 싶은 직장인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초등교사 김모 씨도 비슷하게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스승이 인생의 길잡이였다면 지금은 민원 처리반에 가깝다”며 “아이들이 잘못을 해도 훈육하기가 무섭다”고 했다. 이어 “언제 어디서 화살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점점 마음을 닫고, 정해진 업무 매뉴얼 안에서만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느끼는 자조는 공교육의 역할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박 교사는 “아이들과 학부모가 공교육에 기대하는 것은 성적과 안전한 보육에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예비 교사인 교대생 역시 ‘스승’이라는 말에 거리감을 느꼈다. 서울권 교대에 다니는 A씨는 “스승이라는 말에는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하지만 우리는 교사가 전문직으로 존중받기를 원하지, 무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크지만 현장 이야기를 들으면 수업보다 민원 등이 더 걱정인 것이 현실”이라며 “과거 권위주의적인 스승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단 앞에 카네이션과 함께 녹음기가 올라간 모습. [챗GPT로 제작]
교원단체 “직업적 자부심 낮아져”·“스승이라는 말 자체의 재정의”

실제로 교원의 직업적 자부심도 많이 낮아진 상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는 제45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5일까지 전국 유·초·중·고·대학 교원 8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 교원 2명 중 1명은 직업적 자부심이 낮아졌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강주호 교총 회장은 “형식적인 스승의 날 행사보다 교원이 폭행, 악성민원에 대한 두려움 없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실효적 교권보호 법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중대 교권침해 학생부 기재, 교육활동 관련 소송 국가책임제, 무고성 악성민원에 대한 교육감 맞고소제도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사노조는 지금을 ‘스승’이라는 말 자체가 재정의되는 과도기로 봤다. 김희정 교사노조 대변인은 “스승의 이미지가 지워지는 시기”라며 “사회는 여전히 교사에게 스승의 역할을 기대하지만 학부모와 학생이 교사를 바라보는 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과거의 스승상이 권위주의적 시대와 맞닿아 있었다고 봤다. 그는 “예전에는 스승이 희생하고 도덕적으로 완결된 존재, 아이의 모든 것을 가르치고 함께 가는 존재로 여겨졌다”며 “하지만 지금은 교사를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가르치는 교육 현장의 전문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권 회복이 과거 권위주의로 돌아가는 의미는 아니라고도 했다. 김 대변인은 “과거에는 교사의 권위가 너무 높았다면 지금은 교사의 권위가 너무 낮아져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이 침범되는 상황”이라며 “이제는 다시 가운데로 돌아와 적정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원 절반이 직업적 자부심이 낮아졌다는 설문조사 결과. [교총 제공]
전문가 “2026년의 스승,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역할”

2026년 스승의날이 던지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과거 권위주의 교실의 상처는 여전히 교사에 대한 불신으로 남아 있고 현재 교사들은 권한 없이 책임만 떠안는 현실을 호소한다. 그러나 AI가 지식을 대신 가르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아이가 자기 길을 찾고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서 이끄는 스승의 역할은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2026년의 스승을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이 자기 길을 찾도록 곁에서 이끄는 존재로 봤다. 박 교수는 “스승은 예전부터 단순한 지식 전수자가 아니었다”며 “의혹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 갈 길을 밝혀주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며,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 시대에는 배우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AI의 도움을 받아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며 “오히려 지금의 스승에게 중요한 것은 학생이 하기 싫은 일을 해내도록 돕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곁에서 이끌어주는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스승의날의 의미도 이 변화 속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 교사가 어떤 신뢰와 전문성 속에서 다시 ‘스승’으로 설 수 있는지를 묻는 날이 되는 셈이다. 스승에 대해 정의해놓은 가장 오래된 글 중 하나인 ‘한유의 사설’에 나온것처럼 스승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기능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와 능력을 길러주고 이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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