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생역전’ 이야기 품은 말… K경주마, 콘텐츠가 되다 [농어촌이 미래다-그린 라이프]
슬럼프 딛고 세계랭킹 1위 오른 닉스고
女 기수와 함께 성장한 글로벌히트 등
감동적 서사로 팬들에 깊은 인상 남겨
경주 중심의 산업 구조서 문화로 확장
대중과 접점 넓히려 인형·굿즈 등 선봬
“경주마 이야기, 문화 콘텐츠 연결 시도”
경주마의 존재감은 숫자로 정의된다. 경기장 위에서 흐트러지는 갈기와 기수의 움직임은 1위라는 숫자가 뒤따를 때 완성된다. 얼마나 유명한 대회를 제패했는지와 주파기록, 승수는 경주마를 직관적으로 설명해주는 단순하지만 확고한 언어다. 그러나 팬들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숫자만이 아니다. 데뷔전, 기수와의 호흡,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보여준 추입, 불리한 조건을 극복한 승부, 은퇴 이후 이어지는 삶이 더해질 때 경주마는 비로소 ‘이야기’로 남는다.
한국 경마에도 이러한 서사를 품은 말들이 적지 않다. ‘닉스고’, ‘글로벌히트’, ‘동반의강자’ 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야깃거리를 쌓으며 은퇴 이후까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에 한국마사회는 경주마를 단순한 기록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과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로 확장했다. 경주마를 기억하는 팬층을 넘어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명마당’ 브랜드와 캐릭터·굿즈 개발, 명예경주마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말산업의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마사회의 유전자 기반 선발 시스템인 케이닉스(K-Nicks)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된 ‘닉스고’는 2018년 2세에 출전할 수 있는 최고 등급(G1) 경기인 미국 ‘브리더스 퓨처리티’ 대회에 인기 최하위 경주마로 출발선에 섰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닉스고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1위에 오르며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듬해 경기 중 다른 경주마와 몸싸움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와 부상으로 8번의 대회에서 단 한 번의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다. 225일간의 재활과 휴식을 갖고 출전한 킨랜드 대회에서 닉스고는 트랙레코드를 경신하며 복귀를 신고했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주 중 하나인 브리더스컵 클래식과 휘트니 스테이크스 등에서 우승하며 세계 경주마 랭킹 1위에 올랐다.

‘글로벌히트’는 기수와 ‘관계의 서사’를 남겼다. 건조 경기에서 최하위권에 가까운 성적을 낸 글로벌히트가 ‘코리안더비’라는 큰 경기에 참가할 때 김혜선 기수는 “우승보다 말의 성장을 위해 출전한다”고 말했다. 김 기수는 인코스를 지키며 선두권을 따라가다 마지막 직선에서 선두를 추월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으로 김 기수는 한국 경마 최초의 여성 기수 더비 우승자가 됐다. 이후에도 102년 한국 경마 역사상 처음으로 국내 그랑프리를 우승한 여성 기수 타이틀을 손에 쥐었다. 세계 최고의 경마경주로 꼽히는 두바이의 ‘알 막툼 클래식’에 참가해 깜짝 3위를 차지할 때도 김 기수와 글로벌히트는 함께했다.

원래 동‘방’의 강자로 작명하려 했으나, 오타로 동‘반’의 강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건 유명한 일화다. 지금은 전북 장수군에 위치한 장수목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수백여명의 팬이 당근과 수박을 들고 동반의강자를 보기 위해 목장을 찾는다. 마사회 관계자는 “경주마의 가치를 단순히 현역 시절의 성적이나 흥행성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은퇴 이후의 삶까지 존중하는 방향으로 말복지 정책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마 서사를 콘텐츠로
마사회는 경주마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명마당’ 브랜드를 통해 닉스고와 글로벌히트, 동반의강자 등을 모티브로 한 인형과 굿즈를 선보인 게 대표적이다. 팬들이 은퇴한 명예경주마를 직접 만나 교감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과 목장 방문 콘텐츠도 운영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단순한 기념품 제작이 아니라 경주마의 생애와 이야기를 문화 콘텐츠로 연결하려는 시도”라며 “경마장을 단순히 승패를 겨루는 공간이 아니라, 말과 사람의 이야기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세종=현상철 기자 sch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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