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트럼프는 절제했고 시진핑은 경고했다…뒤바뀐 무게추 [미중 정상회담]
2026년 ‘5가지 금기 통보’…9년 새 역전돼
시진핑, ‘투키디데스 함정’ 꺼내며 대만 경고
트럼프는 비공개 회담서도 ‘무반응’으로 일관
중국의 ‘G2 대등 전략’ 본격화, 글로벌 질서 재편

14일(현지시간) 9년 만에 베이징을 다시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뭇 이전과 달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 ‘세기의 담판’이 되리라는 세간의 기대에 못 미쳤다. 한껏 들떴던 과거와는 달리 절제된 어조에 충실했고, 그의 연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즉흥적 발언이나 주제에서 벗어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역 협상, 이란 전쟁, 대만 문제 등 복잡한 국제 정세가 산적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9년 전과 달리 공동 기자회견도 열지 않은 채 각자 짤막한 보도자료를 내는 것으로 결과 발표를 대신했다. 중국은 공영방송을 통해 보도자료를 내보냈고,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남자들’인 장관들이 연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전 세계 이목이 쏠린 글로벌 최대 양자 외교 무대에 오른 두 정상은 “훌륭하다”,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표면상 우호적 기류를 연출했다. 그럼에도 회담 당일이 저물 때까지 별다른 합의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풀기 어려운 난제들이 산적한 탓이지만, 이는 ‘트럼프 1기’였던 2017년 11월 베이징 미중정상회담 때와는 달라진 두 리더의 위상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시 주석의 ‘선물 보따리’를 잔뜩 받아들었던 9년 전과 비교해 미국과 세계 패권을 양분하는 ‘빅2’로 올라서려는 중국의 달라진 태도 앞에서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 당황스러움을 겪었을 수 있다. 앞서 중국은 회담 전부터 미국에 5가지 가이드라인을 보내 언급해서는 안 될 주제들을 통보했다. 특히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외 입지가 좁아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에서 열쇠를 쥔 시 주석에게서 주도권을 찾아오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뒤바뀐 두 정상의 처지와 중국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회담장 안팎에서 여러 차례 속출했다. 악수할 때부터 시 주석은 위에서 누르듯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잡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잡아당기거나 탁탁 치기로 응수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회의장에 입장하려다 배지를 차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호팀에 저지당했고, 톈탄 공원에서는 백악관 공동 취재진과 경호팀이 충돌했다. 국빈방문 치고는 긴장감이 감도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시 주석이 회담에서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 구축을 중미 관계의 새로운 지위로 삼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날 시 주석이 처음 꺼내든 ‘중미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는 평화공존과 갈등 관리 등 중국의 기존 대미 외교 노선에 더해,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경쟁을 펼칠 것이라는 의지를 명확하게 투영한 개념으로 분석됐다. 회담 모두발언에서 시 주석이 패권 경쟁에 따른 무력 충돌을 의미하는 ‘투키디데스 함정’을 언급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특히 미중 회담의 최대 현안이자 갈등 지점인 대만 문제를 놓고 시 주석이 발언 수위를 이례적으로 끌어올린 것도 상징적인 대목이다. 그는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잘 처리하면 (미중) 양국 관계는 총체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부딪치거나 심지어 충돌할 것이고, 중미 관계 전체를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경고장’을 꺼낸 것이란 해석을 낳았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후 산책 도중 취재진으로부터 ‘대만 문제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평소와 달리 답변을 피한 것은 시 주석의 공세적 태도와 상반된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회담에서도 대만 안건에 ‘무반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익명을 요구한 한 백악관 당국자를 인용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과 관련한 시 주석의 언급에 반응하지 않았으며, 이를 인지하지 않은 상태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WP는 그러면서 “세상은 그사이에 멈춰 서 있지 않았다. 중국은 당시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며 “두 정상은 회담에 앞서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싶어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양측 발표문에서 무역 협상을 놓고서도 접점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줄 만한 구체적 진전은 담기지 않았다. ‘협력’ 또는 ‘지지’ 등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됐다. 이는 9년 전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 맞춰 2500억달러(당시 환율로 약 200조 원)의 ‘선물 보따리’를 풀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으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 오르기 전 트루스소셜을 통해 중국에 “개방을 요구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과도 사뭇 다른 상황이다.
관심이 집중됐던 중동 긴장, 우크라이나 전쟁, 북핵 등 글로벌 현안에 대해서도 별다른 논의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에너지 수입 등에 관해 중국의 원칙적 합의를 끌어낸 것이 방중 2일차의 거의 유일한 성과로 꼽힌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NSC) 당국자였던 줄리안 게워츠는 WP에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하는 ‘TV용 볼거리’를 제공했다”며 “이를 통해 경제 긴장 고조를 늦추고, 중국의 힘을 키우려는 시간을 벌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국빈만찬도 약 3시간 만에 끝났다. 만찬 메뉴 역시 이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했던 달고 자극적인 음식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중국식과 서양식을 곁들인 절제된 랍스터, 베이징 덕 등 ‘기본’에 충실한 음식들이 제공됐다. “식사는 협상의 연장”이라던 셰프의 말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평소 절대 마시지 않던 와인까지 음미하며 시 주석에 대한 존중을 나타냈다.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선 시 주석의 자신감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박시진 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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