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어버이날도 스승의날도 시들… 꽃시장서 사라진 ‘5월 대목’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때보다도 주문이 줄었습니다. 예전에는 큰 꽃바구니를 찾는 손님이 많았지만, 요즘은 몇 송이씩 소량으로 사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 꽃시장에서 만난 40대 상인 김모씨는 한숨부터 쉬었다. “5월이 화훼업계 대목이라는 말도 이제 옛말”이라고 했다. 스승의날을 앞두고 학교에서 꽃바구니 주문이 일부 들어오긴 했지만, 일반 손님에게 따로 팔린 것은 거의 없다고 했다.
화훼 업계 최대 성수기로 꼽히던 5월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 등 기념일 수요가 예전 같지 않은 데다, 생산비 상승으로 꽃값까지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고 있다. 상인들은 “싸게 많이 팔아 버티는 것도 어려워졌다”고 했다.

◇카네이션 거래량, 5년새 세 토막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양재 꽃시장은 한산했다. 손님 한두 명이 가게를 둘러보며 가격을 물었지만, 이내 “더 둘러보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꽃바구니 가격은 3만~5만원 수준이었다. 작약 등 다른 꽃이 포함된 상품은 이보다 1만~2만원가량 더 비쌌다.
상인들은 지난 8일 어버이날에도 카네이션 판매가 기대에 못 미쳤고, 스승의날 수요는 그보다 더 약하다고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화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1~13일 양재 경매장의 카네이션 거래량은 3만2832단으로, 전년 동기보다 18.7% 줄었다. 최근 5년 사이에는 거래량이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요가 줄어든 배경은 복합적이다. 모바일 상품권과 현금 등 꽃을 대체할 선물 수단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KB국민카드가 올해 어버이날 소비 계획을 조사한 결과, 카네이션을 준비하겠다는 응답자는 4명 중 1명에 그친 반면, 용돈을 드리겠다는 응답은 90%를 넘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학교에서 꽃 선물을 주고받기 어려워진 것도 스승의날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 학생 대표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선생님에게 꽃을 전달하는 경우는 허용되지만, 현장에서는 이마저도 괜한 논란을 우려해 피하는 분위기다.

◇안 팔리는데 가격은 올라… “국산 들여놓기 부담”
수요가 줄었지만 꽃값은 오히려 뛰었다. 이달 카네이션 1단 평균 가격은 9598원이다. 3년 전 같은 기간 평균 가격 5777원과 비교하면 66% 올랐다.
전기요금과 인건비, 운송비 등 생산비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다. 화훼 농가가 쓰는 농사용 전력요금은 올해 저압 기준 kWh당 65.9원으로, 4년 새 두 배가량 뛰었다. 양재 꽃시장 상인들은 방수 포장지, 쇼핑백 등 부자재 가격도 같은 기간 20~30% 올랐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이나 콜롬비아산 카네이션을 판매하는 상인도 늘고 있다. 양재 꽃시장 상인 노모씨는 “국내산 카네이션은 판매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싸고 안 팔리면 더 타격이 크다”며 “수입산 꽃을 들여와 파는 것이 그나마 수지가 맞는다”고 했다.

◇수입산 꽃에 밀린 화훼 농가… 매년 감소세
꽃 소비가 줄고 수입산 비중이 커지면서 국내 화훼 농가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전국 화훼 농가 수는 전업과 겸업을 합쳐 2022년 7134곳에서 2023년 7122곳, 2024년 7079곳으로 줄었다.
업계에서는 수입산 꽃의 공세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국회 비준을 앞둔 한·에콰도르 전략적 경제협력 협정(SECA) 때문이다. 에콰도르는 세계적인 화훼 수출국으로, 장미 수출 규모는 세계 3위 수준이다.
현재 에콰도르산 주요 절화류에는 25% 관세가 적용된다. 그러나 SECA가 발효되면 장미·국화·안개꽃 관세는 12년에 걸쳐, 카네이션·백합·튤립 관세는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와 한국화훼농협 등 14개 화훼 생산자 단체는 지난 1월 성명을 내고 “중국, 콜롬비아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카네이션 등 주요 품목의 국내 시장 주도권이 해외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실효성 있는 정부의 화훼 산업 중장기 발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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