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7주년 특집]쉬고 즐기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과 문화…청년이 살고 싶은 울산으로

이다예 기자 2026. 5. 15.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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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동 10평, 울산의 미래를 비추다
(상) 울산, ‘기숙사’ 아닌 ‘터전’ 되려면
돈 벌기위해 머무는 도시 이미지 강해
제조업중심 도시 성장 모델 한계 직면
주거·교통·문화 등 인프라 부족 지적
청년유출 10년째…정주여건 개선 시급
동구, 청년 공유주택 ‘전하만주’ 운영
청년·신혼부부 초기 정착 지원 호평
▲ 전하만주 전경.

누군가는 울산을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광역시 승격 30주년을 1년 앞둔 울산이 그 갈림길의 한복판에 서 있다. 산업화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울산은 제조업 경쟁력만으로는 도시의 미래를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청년 인구 유출은 울산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다. "왜 울산에 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본보는 타지에서 울산 동구 청년노동자 공유주택 '전하만주'에 정착한 청년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주거, 일자리, 문화, 교통, AI·창업 등 미래 도시의 조건과 해법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뉴스 속 공업도시 울산에 살다

오전 7시15분 전하만주 주차장에서 차원종(37)씨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HD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 노동자인 그는 매일 이 시간 집을 나선다. 전기공사 업체에서 자재 준비 등 현장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 '이런 직주근접이 없다'는 생각에 만족하며 헬멧을 눌러쓴다.

손상혁(39)씨는 같은 시각 전하만주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직장에서 야간근무를 마무리한다. 현대공업고등학교 기숙사 사감인 그는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학생 생활지도를 맡는다. 꼬박 12시간 근무로 쌓인 피곤함을 풀 수 있는 보금자리를 생각하며 짐가방을 챙긴다.

둘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타지에서 울산으로 온 청년 노동자이자 12평 전하만주 입주민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전하만주는 울산 동구가 청년과 신혼부부 등을 위해 운영 중인 청년노동자 공유주택으로, 둘 모두 2024년 11월 입주했다. 이들이 처음 떠올린 울산의 이미지는 뉴스에서만 보던 회색빛 산업도시였다.

대구 출신인 손씨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울산행을 결심했을 때를 회상하며 "석유공장과 중공업, 자동차 공장만 가득한 공업도시로 봤다"고 밝혔다. 차씨 역시 "처음에는 공업도시 이미지가 강해 조금 딱딱하고 재미없는 도시일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상당수 청년에게 울산은 살고 싶은 도시라기보다 돈을 벌기 위해 잠시 머물러야 하는 도시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직접 마주한 울산은 예상과 사뭇 달랐다. 울산 관문인 시외버스터미널 앞 대형 관람차는 신선한 인상을 남겼고, 태화강국가정원과 십리대숲, 바다와 가까운 자연환경은 친구나 가족을 초대하거나 캠핑 등 취미 생활을 즐기기에 괜찮은 도시라는 인상을 남겼다. 밤에 슬도에서 바라보는 석유화학단지 야경은 공업도시 울산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손씨의 주방에는 밥솥과 각종 조리 도구가, 차씨의 냉장고에는 직접 담근 열무김치가 자리해 있었다. 이들은 전하만주를 '내 집'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생활 기반을 만들어가며 '정착의 용기'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현실적인 고민까지 덜어주지는 못했다. 손씨가 울산 생활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교통이다. 구직과 출퇴근, 생활 반경 이동이 중요한 청년에게 교통 인프라는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그는 "지하철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정말 크다"며 "지리적 요건 등 여러 문제가 있어 어렵겠지만 동구에서 남구나 다른 지역으로 나가야 할 때 지하철 생각이 간절하게 난다"고 말했다.

차씨는 울산의 정주여건이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울산이 이른바 '노잼 도시'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머물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생활문화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 중심 도시다 보니 지역 분위기가 일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있다"며 "울산은 좋은 일자리는 많지만 청년들이 쉬고 즐기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과 문화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나마 전하만주 건물 1층에 위치한 공용 공간 '청뜨락'은 타지 청년들에게 작은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 입주민들은 이곳에서 함께 요리를 하거나 식물을 키우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손씨는 울산에 온 뒤 몇년 동안 친구 없이 지냈지만 커뮤니티 활동 참여 이후 자연스럽게 지역 인맥이 생겼다고 했다. 차씨도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늘었다.
▲ 손상혁(왼쪽)씨와 차원종씨.

◇좋은 주거·교육·행정 찾아 떠나는 울산 청년들

이 같은 청년들의 체감은 실제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울산의 19~34세 청년층 순이동은 2012~2014년까지만 해도 해마다 1000~2000명 이상의 순유입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5년 순유입 387명을 끝으로 유입 동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2016년부터는 순유출 3000명대로 접어들었고, 조선업 불황과 제조업 고용구조 변화가 맞물린 2018~2021년 사이에는 해마다 5000~6000명대 순유출이 이어졌다. 당시 사실상 서울의 1개동 규모의 청년층이 매년 울산을 빠져나간 셈이다. 2024년 들어 순유출 규모가 1000명대로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청년의 '탈울산' 행렬은 2016년부터 2025년까지 10년째 이어졌다.
▲ 지난해 12월에 열린 만주반상회.

더 큰 문제는 사회초년생만 울산을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에서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 등 삶의 기반을 다져야 할 '허리 세대'인 35~39세의 2025년 기준 전출지를 보면 203명 중 부산(76명)과 경기도(67명)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충남과 세종도 각각 18명, 8명을 차지했다.

이는 청년들이 취업 목적을 넘어 더 나은 주거 환경과 교육, 문화·교통 인프라, 삶의 질 등을 찾아 수도권과 인접 대도시로 생활 기반을 통째로 옮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인력이 새로운 행정·산업 거점 도시로 빠져나가는 흐름이기도 하다. 제조업 중심 도시 울산의 산업 구조에 대한 불안감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차씨는 "지금은 조선업 경기가 좋은 편이지만 협력사는 원청 정규직보다 경기 영향을 먼저 받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존재한다"며 "조선업 자체가 사이클 산업이다 보니 지금 호황기가 지나면 다시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고, AI와 자동화까지 더해지면 일부 작업은 점점 줄어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동구 청년 공유공간 '청뜨락'.

◇돈만 버는 도시로는 안 된다

결국 청년 이탈은 울산이 직면한 제조업 중심 도시 성장 모델의 한계를 보여준다. 일자리만으로 청년을 붙잡는 시대는 끝났고, 주거부터 미래 산업 전략까지 포함한 도시 체질 전환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들은 울산이 청년 한 명을 완전히 정착시키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 할 문제로 주거 안정을 꼽았다. 전하만주는 고향사랑기부금 등을 재원으로 12평 기준 월세 45만원 중 37만원을 지원하고 있어 당분간 부담을 덜고 있다.

손씨는 "울산에서 계속 일을 하게 되면서 집 문제가 제일 크게 다가온다"며 계약 기간이 끝난 뒤 다시 집을 구해야 하는 불안감을 토로했다. 차씨도 "돈만 벌다가 떠나는 도시가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가 되려면 제조업 경쟁력이라는 강점은 유지하면서 문화와 여가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시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이다예기자ties@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