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된 선생님의 믿음
수능을 갓 치른 고3 겨울,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대학 진학 대신 공장 취직을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께 몇 시간에 걸쳐 호된 꾸지람을 듣고서, 내가 바라던 다른 전공보다 빨리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권유로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스스로의 ‘강권’에 책임을 지시겠다며 선생님께서는 대학 4년 동안의 전공 책값을 당신께서 모두 대주시겠노라고 약속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해주셨다. 그 돈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던 미래를 누군가는 변치 않고 믿어주고 있다는 희망의 증거였다.
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한 뒤 가장 먼저 찾아간 곳도 선생님 댁이었다. 선생님을 뵙자 길에서 넙죽 큰절부터 올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곧장 근처 옷 가게로 날 데려가 셔츠 두 벌을 골라주시며 “인제 니도 선생님이니까 티 쪼가리 말고 품위 있게 셔츠 입고 학교 댕기거래이” 하고 말씀하셨다. 오래되어 깃이 다 해져버린 그 셔츠는 지금도 내 옷장 한쪽에 고이 걸려 있다.
대학 시절 한 노(老)교수님께선 ‘선생님은 강 건너로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뱃사공’이라고 하셨다. 학생들을 졸업시키고 나면 뒤도 돌아볼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졸업 이후에도 제자의 삶을 오래도록 붙들어 준 그분을 보며,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쉽게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 역시도 학생들에게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마음을 건네려 한다. 그리고 그들 또한, 상황에 관계없이 자신을 변함없이 믿고 응원해주는 어른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게 되길 바란다. 지금의 내가 누군가에게 다정한 어른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면, 분명 오래전 우리 선생님께 받은 마음이 아직 내 안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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