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권력 된 K-셀럽… 이젠 ‘뉴욕 패션 편집장’보다 ‘팬덤’의 힘이 세다

최보윤 기자 2026. 5. 1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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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기자가 본 영화 ‘악마는 프라다는 입는다 2’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에서 20년 만에 만난 미란다(가운데)와 앤디(맨 왼쪽)는 시대 변화를 함께 헤쳐가며 새로운 관계를 맞게 된다. 미란다의 곁을 지켜온 나이젤(스탠리 투치·오른쪽)은 2편에서 여러 명대사를 선보인다. /20세기 스튜디오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됐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흥행 측면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개봉 2주도 채 안 돼 4억달러를 돌파했고, 제작비 약 1억달러를 첫 주말에만 230% 이상 회수하며 2026년 최대 개봉작 중 하나에 올랐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웃을 수만은 없다. 1편이 패션과 노동, 욕망을 둘러싼 세련된 우화였다면, 2편은 종이 매체의 쇠락과 디지털 전환, 플랫폼 경제, 광고 의존, 해고의 일상화를 전면에 내세운다.

미국 미디어 산업, 특히 종이 잡지의 황혼을 정직하게 그려냈다는 호평이 이어진다. 외신들은 이 영화를 더 이상 ‘안나 윈투어 풍자극’ 정도로 읽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영화에서 미란다와 앤디의 오래된 긴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터넷이 초래한 세계적 전환”이라고 봤고, 할리우드 리포터는 “전통 미디어의 장례식 같은 영화”라고 썼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에서 패션 매거진 '런웨이(Runway)'의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와 런웨이로 복귀한 앤디(앤 해서웨이)가 카메라 세례를 받는 장면. /20세기 스튜디오

그 현실감은 허구만의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저널리즘 업계에서 해고는 거의 상수가 됐다. 니먼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해고된 저널리스트가 거의 1만명, 즉 업계 편집자·기자 10명 중 1명 이상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미국 전국 평균 지역 저널리스트 수가 2002년 대비 약 75% 줄었고,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 지역들조차 심각한 취재 공백 상태라고 분석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문자 한 통으로 해고 통보’ ‘예산 삭감’ ‘광고주 눈치 보기’ ‘콘텐츠 메트릭 중독’은 오늘의 미디어 현실을 요약한 풍경에 가깝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화려함 이면의 뼈아픈 현실을 짚어내는 건 1편보다 못하다. ‘뉴욕 보그’ 식 세계관에 머물러 21세기 패션 산업의 실제 지형 변화를 외면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영화가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쇠락한 잡지 산업은 잘 그리면서도 그 빈자리를 무엇이 채웠는지는 충분히 그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해외 매체 인디와이어는 이 영화가 오늘날 ‘런웨이’의 가장 큰 경쟁자일 법한 인플루언서를 사실상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이 지적은 결정적이다. 오늘의 패션 권력은 더 이상 잡지 편집장과 광고주만의 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을 찾은 배우 앤 해서웨이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열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꽃신을 선물 받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뉴스1

미디어 산업의 변화를 다루면서도, 오늘날 패션 산업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팬덤 기반의 소비 문화는 거의 외면한 셈이다. 미국 보그식 권위주의적 취향 독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서사는 설득력이 약하다. 패션 위크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더 이상 안나 윈투어의 자리 배치가 아니라 어떤 K팝 아이돌이 프런트 로(row)에 앉느냐인 세계를 영화는 포착하지 못했다. 셀린느 앰배서더로 활동하는 BTS 뷔가 파리 패션 위크에서 전체 스타 중 한 게시물당 가장 높은 미디어 마케팅 가치(EMV·earned media value)를 기록하고, 뉴욕 멧 갈라에 블랙핑크 멤버 전원이 초청받아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는 시대다. 팬덤이 패션을 이끌고, K팝 스타가 보그의 편집장보다 더 많은 트래픽을 만들어내는 게 현실이다.

실제 패션 산업은 이미 팬덤-플랫폼-앰배서더 중심으로 크게 재편됐다. 미국 보그는 최근 ‘슈퍼팬 경제’를 다루면서 “K팝 문화가 오늘의 초강력 팬덤 시대를 열었다”고 썼고, 이제 주요 패션쇼 바깥에는 브랜드 앰배서더인 아이돌을 보기 위해 팬들이 몰려든다고 설명한다. 예시로 프라다의 엔하이픈, 루이비통의 스트레이 키즈 필릭스, 디올의 블랙핑크 지수 등을 들었다. 할리우드 스타 중심 세계에서 K팝 아이돌이 브랜드의 새 얼굴로 등장했다는 이슈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패션의 영향력이 뉴욕의 편집국에서 전 세계 실시간 팬 커뮤니티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루이비통 하우스 앰배서더이자 유니세프 한국 친선대사 필릭스(스트레이 키즈)와 함께한 주얼리 캠페인. /루이비통

같은 맥락에서 보그는 최근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인플루언서-도달률’에서 ‘창작자-조언자’ 모델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브랜드는 이제 창작자를 단순 홍보 수단이 아니라 전략 파트너, 문화 통역자, 심지어 제품·캠페인 자문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세계는 여전히 잡지 지면, 대형 광고주, 오너 일가, 특종 인터뷰 중심이다. 그 틀 안에서는 오늘의 K팝 팬덤 경제나 크리에이터 중심 패션 생태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래서 이 영화는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의 절반만 보여주는’ 작품이 된다.

‘비현실적’인 것은 영화의 중심이면서 처음이자 끝인 미란다에서도 발견된다. 매체를 구원하는 ‘선한 억만장자’의 판타지 같은 건 영화적 ‘상상력’으로 두더라도 영화를 보는 내내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등을 보면 이 영화에 대해 “일을 사랑하는 여성들에 대한 우화”로 읽는다. 미란다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가족과 명성의 비용을 치렀지만 여전히 “나는 일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영화는 세대교체나 권력 이양보다 여성의 야망과 노동의 대가를 정당화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둔다. 그래서 미란다가 퇴장하는 대신, 여전히 중심을 차지하는 결말이 자연스러워진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이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다. 2026년의 미디어 위기는 단지 “노장 편집장이 끝까지 버틴다”는 영웅 서사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카리스마 있는 개인의 생존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나누고 어떤 구조를 다시 설계하느냐는 문제다. 슬레이트는 “미란다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이후의 생태계, 즉 젊은 편집자, 플랫폼 노동, 국제 팬덤, 창작자 경제 등을 어떻게 설계할지는 여전히 비어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 미란다의 모델이라 여겨지는 안나 윈투어는 지난 2025년 미국 보그 편집장에서 사임했다. 여전히 패션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란다의 ‘영웅 서사’에 대한 묘한 불편함이 나온다. 매체를 살려내는 쾌감을 주지만, 동시에 그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 촉망받는 젊은이들의 경력이 어떻게 짓밟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20년 만에 돌아온 미란다 프리슬리는 이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았다고 설득하는 데 119분을 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비판하는 구시대 미디어의 태도와 가장 닮아 있다는 아이러니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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