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자가 보유율 94% 루마니아, 왜 주거지옥일까
인력 이동 막히고 임대시장 마비
우리 정부의 ‘1주택 실거주’ 압박
‘루마니아의 덫’ 빠질 위험 키워

전국의 거의 모든 가구가 집을 한 채씩 보유한 나라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투기 안 하는 선한 국민’인 것처럼 말하는 ‘1주택 실거주자’로 가득 찬 나라가 실제로 있다는 얘기다. 바로 루마니아다. EU 통계를 보면 2024년 기준으로 루마니아의 자가 보유율은 94%에 달한다. EU 1등이자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주택 가구가 거의 없고, 다주택자도 매우 드물다. 그렇다면 루마니아는 주거 천국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1주택자가 너무 많아 갖가지 병폐에 시달린다.
루마니아에선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 시절만 하더라도 국가가 전체 아파트의 70%를 소유했다. 하지만 첫 민주화 정권인 일리에스쿠 행정부가 공공주택 입주자들에게 대대적으로 집을 헐값에 매각하기 시작했다. 세입자가 갑자기 집주인으로 변신한 집이 10여 년에 걸쳐 220만 채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진 일은 축복이 아니었다.
먼저 주택 건설 시장이 빈사 상태가 됐다. 소득 수준이 낮은 가운데 누구나 집이 있기 때문에 새 집을 짓거나 사려는 수요가 위축됐다. 아직도 공산주의 시대 유물에서 살아가는 이가 많다. 가족 숫자 대비 방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는 국민의 비율을 말하는 주거 과밀도가 40.7%로 EU 평균(16.9%)의 2.4배에 달한다. 루마니아인의 14%가 욕실 또는 가내 화장실이 없는 집에서 산다는 통계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민간 임대 시장이 사실상 소멸해 버렸다는 점이다. 거의 다 집주인이다 보니 민간인 소유 집에 세 들어 사는 루마니아인은 전체 국민의 1.3%뿐이다. 다른 지역에 취업 기회가 생겨도 살 곳을 찾기 어려워 옮겨 가지 못한다. 그래서 아예 외국으로 떠나는 국민이 많다. 전체 루마니아인의 약 20%인 400만명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인력 유출 국가인데,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극단적으로 높은 자가 보유율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한다.
영국 워릭대 앤드루 오스왈드 교수는 1주택자가 너무 많으면 노동 시장이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1주택자 비율이 높을수록 근로자 이동성이 낮고, 출퇴근이 길어지며,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그 이론에 딱 들어맞는 나라가 루마니아다. 유럽에서 자가 보유율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독일(47%)과 스위스(42%)는 민간 임대 시장이 발달해 지역간 이동이 원활하다. 독일·스위스가 루마니아보다 후진 나라여서 자가 보유율이 더 낮을까?
부작용은 이쯤에서 그치지 않는다. 민간에 임대용 주택이 거의 없으니 루마니아 청년들은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집에 묶여 살아간다. 사는 동네에 따른 계급 격차도 갈수록 굳어진다. 집을 새로 짓거나 매입하는 길이 워낙 좁은 탓에 대대로 물려받는 문화가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주택 정책은 어떤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부지불식간에 주택시장을 루마니아 상황에 조금씩 가까워지게 만들고 있다. 다주택자가 집을 내놓도록 몰아가고, 이런 집을 갭투자로는 사기 어렵게 만들어 전월세 공급을 줄였다. 게다가 ‘비거주 1주택자’마저 용납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며 실거주하라고 압박한다. 이런 식으로 몰아가면 1주택 실거주 비율이 높아져 전·월세 품귀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수도권 전역에서 전·월세 급등으로 차라리 집을 사려는 수요가 치솟고 있다. 지난 10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부활 후 매물은 더 줄어들어 부동산 시장의 불안은 한층 커지고 있다.
정부는 자가 거주 1주택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주택시장이 루마니아를 닮아갈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한 채씩 소유하고 자기 집에서만 살아가는 게 천국이 아님을 루마니아 사례가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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