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의 무게여 안녕] 선수 때나 지금이나 목요일이 좋다

장미란 용인대 교수·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26. 5. 14.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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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최고 중량을 들어야 했기에
목요일은 한 박자 쉬어가는 날이었다
이제는 강의 없는 해방감에 감사한 날
냉장고에 꽉 들어찬 과일에 눈물 왈칵
주변의 사랑 느끼며 마음 전하니 행복
감사는 끝없이 좋은 것을 가져다 준다
일러스트=이철원

나는 목요일이 좋다. 선수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수 때 목요일은 보통 가벼운 움직임이나 휴식을 취하는 날이었다. 금요일에 최고의 중량을 다루기 위해 한 박자 쉬어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 날 중량을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때로는 기록 도전에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했지만 들뜨거나 낙심하지 않았다. 다시 올 금요일의 기회를 담담하게 기다리며 지나간 일들은 빨리 잊으려 노력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목요일이 좋다. 이번 학기 내 강의는 월·화·수요일에 몰려 있어 수요일 오후면 해방감을 느낀다. 목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목요일이 지나면 주말이 오는데 어찌 신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말은 강의 준비의 압박이 대단하지만 나는 걱정과 근심을 빨리 흘려보내고 목요일에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을 생각한다.

목요일 아침마다 출근 전 꼭 들르는 카페가 있다. 그곳에 간다는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카페라테를 만들어 주는 사장님과 그녀가 준비한 빵과 디저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맛있는 라테를 마시며 사장님과 짧은 대화를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있었던 이야기와 카페에서 손님들과 경험한 일을 나누며 서로 공감하고 생각을 나눈다. 이렇게 좋은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낀다. 그 행복감이 내 걱정과 근심을 잠시 잊게 해준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연구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창문을 열어 화분에 시원한 바람을 쐬어주고 화병에 꽂힌 꽃 줄기를 다듬은 뒤 물을 갈아준다. 내 기분도 상쾌해지고 마음도 시원해진다. 식물에 영양을 공급해 줬으니 이제 내게도 해줄 차례다. 평소보다 힘차게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냉장고 속에 과일이 정말 많았다. 사과, 방울토마토, 오렌지, 망고, 키위, 수박, 블루베리 등 형형색색의 신선한 과일이 빼곡했다.

‘내가 산 과일은 방울토마토 하나인데 저게 다 어디서 왔지?’ 하는 순간 기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엄마가 보내준 사과, 친구가 준 오렌지, 동료 교수님이 선물해 준 키위. 온갖 과일이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싣고 내 냉장고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는 강의 준비에 바빠 눈여겨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낯설게 다가오면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선물로 들어온 귤 한 박스를 하루 만에 끝장낸 우리 삼남매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과일을 품었다. 나와 남동생은 누가 더 많이 먹을 수 있나 겨루는 사람처럼 먹었고, 여동생 미령이는 우리를 쫓아오지 못해 ‘나중에 먹어야지’ 하며 책장 속이나 침대 밑에 숨겨 두었다. 그리고 잊어버려서 썩은 채로 종종 발견되었고 그것을 본 엄마는 ‘쟤는 도대체 왜 저런다니…’ 하시면서 ‘나 어렸을 때랑 똑같다’는 말씀을 아주 작게 덧붙이셨다. 옆에 계시던 아빠는 ‘자기 닮아서 그렇지 뭐’라며 엄마 약 올리는 것을 꽤 즐기신 기억도 떠오른다.

귤 한 알에도 행복했고 감사했는데 지금은 나에게 익숙한 모든 것이 그런 감사를 잊게 했다는 생각에 잠겼다. ‘더 풍성하고 여유 있게 누리는데 왜 감사를 잊고 있었지? 무엇이 내 마음을 감사에서 멀어지게 했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생각도 잠시,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처럼 모든 과일을 꺼내 색깔별로 담아 요거트에 찍어 먹었다. 이렇게 신선하고 좋은 과일을 골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꽃을 보면서 창밖의 밝은 햇살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더할 나위 없는 아침을 선물로 받았는데 ‘내가 오늘 못할 것이 뭐가 있을까? 강의는 100번도 할 수 있지. 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한다.

기분이 좋다. 아주 좋다.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며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마음을 전하는 것, 나의 것을 조금 나누어 주는 것. 그 작은 마음이 상대에게 어떤 크기의 행복을 가져다줄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사랑이 누구에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감사와 사랑이 얼마나 배가 되어 누구에게로 흘러 들어갈지 알 수 없어서 기대가 된다. 그 기대와 소망을 안고 나는 오늘도 우리 가족에게, 친구에게, 동료 교수님에게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눈다. 나눠 먹으면 더 많이 먹을 수 있고 나눠 가지면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기쁘게 해줄지 생각할수록 내가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다.

이렇게 내 마음을 유연하게 하는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내 무기가 느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다. 꽃을 보고 새소리를 듣는 것,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햇살과 바람을 느끼는 것, 신선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나를 참 기분 좋게 한다. 그리고 이런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감사로 시작하는 아침이 또 감사하다. 감사는 이렇게 끝도 없이 좋은 것들을 내 안에 가져다준다. 오늘따라 목요일이 더 좋다. 앞으로 다른 요일이 좋은 이유도 빨리 만들어 나가려 한다. 그럼 나는 7배 더 행복하고 감사하겠지!

올림픽 역도에서 금·은·동메달을 모두 따고 은퇴한 장미란 용인대 교수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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