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전 정원오 "외박 강요" 허점투성이…증언도 전무
언론 보도는 "6·27 지방선거, 5·18 문제 말다툼"
판결문도 "정치 이야기 나누다 정파 달라 다툼"
언론과 검경이 추문 일부러 덮어줬을 리 없어
혼자 폭로극 벌인 장행일 구의원은 민자당 출신
다른 구의원들 강력 반발…"정치적 흑막" 의심
장행일 본인도 이젠 "기억 안 난다" 꼬리 내려
주진우 공개 피해자 녹취에도 '외박' 언급 없어
박범진 의원 보좌관으로 추정돼…역시 민자당
김석영 "내가 폭행, 정원오는 수습하다 휘말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가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95년 10월 11일 서울 양천구의 한 카페(일반음식점)에서 여종업원에게 외박을 강요하다 폭행 사건을 일으켰다며 당시 양천구의회 속기록을 근거로 제시했지만, 해당 발언을 했다는 구의원이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주자유당 출신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신빙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구의원의 주장은 당시 언론 보도나 판결문 내용과는 전혀 달라서 일방적인 정치 공세였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폭행 피해자라는 인물의 녹취도 공개했으나, 그 역시 민자당 소속이었던 데다 '외박 강요'를 뒷받침하는 증언은 일절 내놓지 않아 오히려 의혹의 설득력을 더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양천갑 지역구 민자당 박범진 의원의 보좌관과 합석 중 말다툼
언론은 전부 "6·27 선거, 5·18 문제로"…판결문도 "정치 얘기 중"


검찰에 넘겨져 불구속 기소된 정 후보에게 1996년 7월 10일 벌금 300만 원 형을 선고한 재판부 역시 판결문에서 "피해자와 함께 합석하여 정치 관계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 서로 정파가 다른 관계로 언성이 높아지면서 다툼이 되자"라고 적시했다. 이 같은 언론 보도와 판결문은 정 후보가 지난해 12월 15일 "30년 전 당시 민자당 국회의원 비서관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식 차이로 다툼이 있었다"고 밝힌 해명과 일치한다. 정 후보는 "사건 직후 당사자들(해당 비서관과 경찰관)께 사과드리고 용서를 받았으며, 화해로 마무리되었다. 저는 이 일을 제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지금까지도 당시의 미숙함을 반성하는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면서 "당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안으로, 이를 선거 때마다 선관위에 신고하고 공개해 왔음을 함께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재섭 의원은 13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을 통해 "6·27 선거, 5·18과는 무관하고 카페 여종업원과의 외박을 강요하다가 벌어진 주폭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1995년 10월 20일 양천구의회 임시회 본회의 속기록을 공개했는데, 여기서 신정1동 장행일 구의원은 "구청장의 비서실장과 비서가 카페에서 술을 15만 원 상당 마신 뒤 카페 주인에게 여종업원과 외박을 요구했으나 주인이 이를 거절하자 '앞으로 영업을 다 해 먹을 것이냐' 등으로 협박하면서 주인과 말다툼을 하던 중 옆좌석에서(당시 언론 보도와 법원 판결문에는 모두 '합석' 상태였다고 돼 있어 현장 묘사부터 사실관계가 다르다) 술을 마시고 있던 모 의원의 비서관이라는 손님이 이를 만류하자 폭행을 가했다"는 요지로 발언했다.
장행일 구의원 일방적 주장에 다른 구의원들 항의, 소란 끝 정회
선거 공보물에 '민자당 양천갑 부위원장'…이제는 "기억 안 난다"
그러나 속기록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같은 발언은 즉각 다른 구의원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구의원은 "이의 있습니다"라고 소리쳤고, 급기야 장행일 구의원이 양재호 구청장을 향해 "도의적 책임감을 통감해 구청장직을 물러날 용의는 없는지, 김 비서실장과 정 비서를 파면 조치할 용의는 없는지 현명한 답변을 해달라"고 촉구하자 장내가 본격적으로 시끄러워졌다. 결국 유봉길 양천구의회 의장은 "회의장 소란으로 인하여 의장의 직권으로서 부득이" 20분간 정회를 선포한 것으로 속기록에 나와 있다. 즉, 장행일 구의원의 일방적 폭로에 다른 구의원들 상당수가 항의에 나섰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 '외박 강요' 주장을 꺼낸 본회의 참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다음 차례로 단상에 오른 신월1동 명병수 구의원은 "구청장과 국회의원 양쪽의 비서들이 합의점을 찾아서 문제를 풀었어야 했는데 보도자료를 통해서 각 신문사, 방송국에 이게 나갔다"며 "어떻게 해서 이것이 보도자료로 나갔는가, 정치적인 흑막이 없는가, 이 문제는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건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정치 쟁점화한 게 아니냐고 의심한 것이다.

민주당 소속 구청장 측근들 봐주려 '외박 강요' 덮어줬을리 만무
폭행당한 보좌관이나 카페 주인, 여종업원 등 관련 진술도 없어
당시 경찰과 검찰이 전북 전주 출신에 민주당 소속이던 양재호 구청장의 수하 직원들을 봐주기 위해 '외박 강요'라는 추문을 애써 덮어줬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직 구청장 측근들의 그런 성매매 시도가 실제로 있었다면 언론도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의혹을 혼자 폭로했던 장행일 구의원이 정략적 공격 이상의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언론이나 수사기관도 폭행 피해자나 카페 주인, 여종업원 진술 등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한 바 없었기 때문에 추가 보도를 내거나 검찰 공소사실에 포함시키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재판부라고 법정에서 그런 증언을 확보했을 리 만무하다. 이번에 국민의힘 측에서 서울시장 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해 장행일 씨에 대한 집요한 설득 또는 회유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는 이젠 언론에 "시간이 오래 지나 기억나지 않는다"고만 말하며 선을 긋고 있다.



해당 민자당 보좌관인 듯한 피해자 녹취에도 '외박' 언급 없어
카페는 목동 아파트 단지 근처 위치…접대부·외박 있던 곳 아냐
윤석열 대통령실에서 법률비서관을 지낸 검사 출신 주진우 의원도 가세해 14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폭행 피해자라는 인물의 육성 녹취를 공개했다. 피해자가 최근 지인과 나눈 대화 내용을 주 의원이 제보받았다는 것이다. 국회 보좌진 출신이라고 하니 사건 당시 박범진 의원의 보좌관이던 이재곤 씨가 확실시되는데, 그는 불과 35초 분량의 녹취에서 강한 경상도 억양으로 "5·18 때문에 서로 언쟁이 붙어서 폭행을 했다(고 하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런 거는 전혀 없었다. 그 이후에 사과를 받았다는 기억도 없다"고 말할 뿐 여종업원에 대한 외박 강요를 말리다 폭행을 당했다는 식의 얘기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이 씨 역시 민자당 소속이었고 당시는 5·18 관련자 불기소 처분과 위증 수사 여부를 두고 정치권 공방이 치열하던 시기였다. 특히 당일 아침 신문 1면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광주 사태는 중국 문화혁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발언한 내용이 보도돼 사회적 공분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역사 인식과 정치관의 차이로 시작된 논쟁이 격한 언쟁으로 번졌고 그 과정에서 신체적 충돌이 발생했다는 것이 정 후보 측의 설명이다. 게다가 해당 카페는 목동 아파트 단지 근처에 위치해 있었고 접대부는 물론 외박을 요구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김석영 전 구청장 비서실장 "격한 정치적 논쟁하다 내가 폭행 주도"
"경찰에도 그렇게 진술…오히려 정원오는 상황 수습하려다 휘말려"
이렇듯 '외박 강요'를 입증할 만한 당사자들 증언이나 증거가 전무한 상태에서 국민의힘과 오세훈 후보 측이 거의 총력을 기울여 기정사실처럼 여론몰이를 하고 다수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쓰자 네거티브전에 가급적 말리지 않으려던 민주당과 정원오 후보 측도 반격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우선 13일 오후 8시 김재섭 의원을 공직선거법상 '낙선 목적 허위사실 공표죄'로 서울경찰청 수사과에 고발한 데 이어 14일 오후 5시 30분 주 의원도 같은 혐의로 고발했다.
정원오 캠프 측은 "양천구의회 속기록은 회의 참석자의 발언을 그대로 기록한 문서일 뿐이다. 반면 당시 언론은 수사 경찰과 피해자, 현장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적으로 검증해 사건이 '5·18 관련 견해차와 지방선거 문제'로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사실관계가 가장 정확하게 반영된 객관적 기록"이라며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던 구청장을 흠집 내기 위해 민자당 출신 구의원이 쏟아냈던 억지 주장을 김재섭 의원이 사실 확인도 없이 유포했다.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흑색선전"이라고 적극 반박했다. 정 후보 본인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포럼에 참석해 "허위이며 조작"이라고 잘라 말했다.
해당 카페 술자리에 함께 있었던 김석영 전 양천구청장 비서실장도 보다못해 나섰다. 김 전 비서실장은 자신이 폭행 주범이었기 때문에 사건 다음 날 바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고, 결국 사퇴해서 정 후보가 비서실장 자리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날 오후 정원오 캠프를 통해 공개한 메시지에서 사건 전후 경위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김재섭 의원과 주진우 의원이 양천구의원의 일방적인 말을 인용하며 제기한 의혹은 사실이 아닙니다. 1995년 10월, 양천구 신정5동 카페 '가애'에서 벌어진 사건의 모든 단초는 전적으로 저에게 있습니다. 그날의 자리를 마련한 것도 저였고, 당시 6·27 선거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격렬한 정치적 논쟁 끝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폭행을 주도한 것 역시 저였습니다. 이 사실은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이○○ 비서관 또한 명백히 알고 있는 진실입니다. 오히려 정원오는 그 자리에서 상황을 수습하려다 사건에 휘말린 것입니다. 사건 직후 경찰 조서를 받을 때도 저는 제가 주된 잘못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1995년 양천구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이 다시 회자된다면 제가 직접 나서서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한 바 있고, 이 자리를 빌어 이렇게 당시 상황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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