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정식 개장하는 '메덩골 현대정원' 미리 가보니

"인생의 길은 미로다. 나는 수없이 길을 잃었고, 그래서 나 자신의 길을 찾았다."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는 인생을 미로에 비유하며 이렇게 적었다.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금왕리에 위치한 메덩골 현대정원 맨 끝자락에 위치한 '니체의 미로'는 문득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좁은 입구를 통과해 출구를 찾을 때까지 수없이 길을 헤매고, 미로를 걸으면서 낯선 오브제들과 맞닥뜨린다. 작은 음악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미로 끝에서 어느 이름 없는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나고, 그러다 위를 올려다보면 저 높이 푸른 하늘이 걸려있다.
국내 유일의 인문정원을 표방하고 있는 메덩골정원이 지난해 9월 한국정원 오픈에 이어 오는 6월 현대정원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12년 첫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를 기점으로 하면 14년, 첫삽을 뜨기 시작한 시기(2021년)를 출발점으로 해도 5년만의 완전 개장이다.


이번에 문을 여는 현대정원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생각의 섬', 또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 이야기'라는 이라는 문패를 달았다. 우선, '생각의 섬'은 프리드리히 니체, 플라톤, 생텍쥐베리, 니코스 카잔차키스, 붓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 동·서양의 철학자와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자 정원이다. 여기에는 이데아, 여정, 깨달음, 자유, 미로, 영원 등 철학자들의 사상을 응축한 건축물이 차례대로 세워져 있고, 그 주변으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풀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관람객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은 플라톤의 철학을 형상화한 '이데아'다. 높낮이가 서로 다른 금속 기둥이 세로 가로 10개씩 모두 100개가 세워져 있는 이 공간을 지나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이번에는 붉은 빛깔의 사암(沙岩)으로 둥그렇게 지은 '어린왕자의 여정'이 나온다. 어린왕자가 별을 여행하듯 커다란 원형 공간을 한 바퀴 돌다보면 "너의 장미가 특별한 건 네가 들인 시간 때문이야"라는 '어린왕자' 속 한 문장이 떠오르는 듯도 하다.

그 바로 위로는 사람의 키보다 한참 높은 두 개의 커다란 돌이 관람객을 맞이하는 '붓다의 깨달음'이라는 공간이 나온다. 메덩골정원 측은 이 공간에 대해 "고요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는 공간"이라는 설명을 붙여놨는데, 보랏빛 등나무꽃이 감싸고 있는 노출 콘크리트 속 공간으로 들어가 보면 그곳엔 사방팔방으로 거울이 붙어 있어 수많은 '나'를 만날 수 있다. 무한 반복되는 나를 바라보며 어떤 이는 이것이 붓다가 말하는 연기(緣起)나 윤회를 형상화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문득 해볼 수도 있겠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를 '정원'이라는 콘셉트로 풀어낸 공간이다. 거기에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와 '선비의 나라'가 있고, 한국 근현대사를 표현한 '고난의 시대'와 '번영의 시대'가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한국의 갓을 형상화한 '선비의 나라'다. 두 그루의 소나무가 어머니의 두 팔처럼 관람객을 맞이하는 공간을 지나 나선형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언덕 위에 갓 형상의 쉼터가 나온다. 메덩골정원 측은 "갓이 있는 이 공간은 큰소리 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보여준다"며 "이곳에선 한복을 차려 입은 국악 연주자의 대금 연주가 펼쳐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역사의 상처를 표현한 '고난의 시대'와 '피난길'도 인상적이다. 이 공간은 죽은 나무나 쓰러진 나무를 그대로 두고, 어두컴컴한 숲길엔 전쟁통에 사람들이 캐먹던 이름 모를 식물들이 아무렇게나 자라게 내버려둬 '고난의 순간도 우리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드문드문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들이 나타나는 이 길을 지나면 긴 수로가 곧게 뻗어있는 '한강의 기적'과 둥근 잔디 언덕이 끝없이 이어지는 '번영의 시대'가 나온다.

정원의 안쪽 가장 높은 곳에는 니체의 '위버멘쉬'(Übermensch·超人)에서 이름을 가져온 '위버하우스'가 우뚝 서 있다. 열여섯 개의 돌기둥이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있는 이 건물은 현대정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이자 식음 공간이다. '파티(FATI)'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게 될 레스토랑은 대한민국 요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는 이동희 셰프가 이끄는 공간으로, 정원에서 자란 식재료를 식탁 위 예술로 풀어낼 예정이다.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초록빛 세상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이 건축물은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페소 본 에릭사우센이 설계했다.
메덩골 현대정원을 미리 둘러본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보통의 정원이 예쁜 아이들이나 아름다운 여인들이 밝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 모습을 하고 있다면, 메덩골정원은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한 사나이가 나를 반겨주는 모습을 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정신이 하나의 교향곡을 이루는 메덩골정원은 우리가 자신의 삶을 어떤 정원으로 만들어야 할 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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