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퍼는 나무를 닮아간다!

방민준 2026. 5. 1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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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칼럼과 관련 없는 참고 이미지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나무는 바람을 맞아야 단단해진다. 어린 묘목이 흔들리는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 뿌리를 더 깊이 내리기 위한 과정이다. 바람이 줄기를 흔들수록 땅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성장이 일어난다. 흙을 더 움켜쥐고, 돌을 비집고 들어가며, 물길을 찾아 뿌리를 뻗는다. 겉으로는 위태로워 보여도 속에서는 단단함이 자란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를 떠올려 보자. 사계절을 고스란히 견디며 수십 년, 수백 년을 서 있는 나무. 여름의 폭염과 장마, 겨울의 눈보라를 모두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넉넉한 그늘을 만든다. 그 굵은 줄기와 넓게 퍼진 가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바람을 통과한 시간의 결과다.



 



골프는 자연 속에서 치르는 운동이다. 바람과 햇빛, 잔디와 지형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스윙은 인공적으로 다듬을 수 있어도 필드 위의 상황은 통제할 수 없다. 같은 코스라도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전혀 다른 코스가 된다. 순풍이 불면 욕심이 생기고, 역풍이 불면 두려움이 앞선다. 결국 골퍼는 자연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골퍼는 나무를 닮아간다. 비탈에 선 소나무 같은 골퍼가 있다. 경사진 언덕에 뿌리 내린 소나무는 늘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자라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골프에서도 완벽한 평지는 드물다. 발끝 오르막, 발뒤꿈치 내리막, 공은 위에 있고 몸은 아래에 있는 난감한 라이. 이런 상황에서 실력이 드러난다. 불평 대신 적응을 선택하는 사람, 조건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조정하는 사람은 점점 더 단단해진다. 좋은 스코어는 평평한 자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울어진 자리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힘, 그것이 골프의 깊은 뿌리다.



 



느티나무 같은 골퍼가 있다. 실력도 좋지만 더 큰 것은 품이다. 동반자의 공이 러프로 깊이 빠졌을 때 함께 공을 찾고, 실수가 이어질 때는 조용히 격려하며, 좋은 샷에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그는 경쟁하되 적을 만들지 않는다. 라운드가 끝나면 스코어보다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골프는 기록의 스포츠이지만 동시에 동행의 스포츠다. 4~5시간을 함께 걸으며 그 사람의 성품을 본다. 느티나무 같은 골퍼는 그 시간 속에서 그늘이 되어준다.



 



빠르게 자라지만 속이 빈 나무 같은 골퍼도 있다. 연습량은 많고 기술은 화려하지만, 작은 실수에 쉽게 무너진다. 더블보기가 나오면 다음 홀까지 흔들리고, 동반자의 플레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뿌리가 얕으면 바람이 세게 느껴진다. 골프는 멘탈의 경기라 말하지만 멘탈은 하루아침에 단련되지 않는다. 반복된 실패를 통과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결과보다 과정을 점검하는 습관 속에서 서서히 길러진다. 깊은 뿌리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축적이다.



 



가시 많은 나무도 있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주변에 상처를 남긴다. 규칙에는 엄격하지만 배려에는 인색하고, 자신의 기준에는 철저하지만 타인의 실수에는 차갑다. 물론 골프는 엄정한 스포츠다. 그러나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진정한 고수는 기술 이전에 태도로 기억된다. 함께 다시 라운드하고 싶은 사람인가, 그것이 한 사람의 골퍼를 평가하는 또 다른 잣대다.



 



생각해 보면 골프는 나무의 생애와 너무도 닮았다. 처음 클럽을 잡았을 때는 묘목과 같다. 작은 성공에도 기쁘고, 작은 실패에도 크게 흔들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깨닫는다. 한 번의 버디가 인생을 바꾸지 않고, 한 번의 트리플보기가 모든 것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중요한 것은 매 샷 이후에 다시 어드레스에 들어가는 태도다. 바람이 분다고 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 눈보라가 친다고 가지를 스스로 꺾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나무로 남고 싶은가. 바람을 피해 온실에 머무는 나무가 아니라, 바람을 통해 더 깊어지는 나무여야 하지 않을까. 스코어카드에 적힌 숫자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함께 걸었던 사람의 향기는 오래 남는다. 좋은 골퍼는 멀리 치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기억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바람을 맞으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흔들리되 뿌리 뽑히지 않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그늘을 남과 나눌 줄 아는 사람.



 



오늘도 필드에는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이 우리의 스윙을 흔들 수는 있어도, 우리의 중심까지 빼앗지는 못한다. 뿌리를 깊이 내린 골퍼라면 말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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