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맥주의 몰락…대형 플랫폼 진출 오히려 독 됐다
가격 경쟁에 무리한 설비 확장·품질 저하
“수제맥주 본연의 다양성·맛 등 되찾아야”

수제맥주 열풍을 이끌던 국내 양조장들이 줄도산하고 있다. 남해의 수제맥주 업체 '완벽한인생 브루어리'도 지난해 말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때 편의점·대형마트 등 전국 유통망에 진출하며 급성장했지만, 업계에서는 오히려 이 같은 플랫폼 의존이 수제맥주의 자체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진단한다.
업계에 따르면 부산 수제맥주 브랜드 와일드웨이브는 최근 부산회생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고 관련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이다. 앞서 서울 성수동의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지난달 21일 서울회생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다. '곰표 밀맥주'로 알려진 세븐브로이맥주도 지난해 6월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한 이후 회생 계획안 제출이 연이어 미뤄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와이브루어리가 실적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1월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지역에서는 남해 완벽한인생 브루어리가 지난해 말 폐업했다. 완벽한인생은 지역 특색을 살린 수제맥주로 이름을 알렸던 업체다.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4년 연속 대상을 받았고, 홈플러스·CU 등 주요 유통 채널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최근 수제맥주 시장 침체 흐름 속에 문을 닫았다.
수제맥주는 코로나19 시기 국내 주류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집에서 술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편의점·대형마트를 통한 가정용 주류 소비가 크게 늘었고, 일본 불매운동 여파로 일본 맥주 수요 일부를 대체하며 특수를 누렸다.
그러나 대외환경이 바뀌면서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19 이후 식당·주점 등 외식 채널이 회복됐고, 소비자 관심도 하이볼·위스키·와인 등으로 분산되면서 수제맥주는 상대적으로 존재감을 잃었다. 불매운동 분위기가 식으며 일본 맥주 브랜드가 주요 유통 채널에 재진입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특히 대형 유통 채널 진출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제맥주 업체들은 편의점과 대형마트에 진출해 대기업 맥주·수입맥주와 본격적인 가격 경쟁을 벌였다. 납품 단가를 맞추기 위해 추가 설비 투자와 생산량 확대에 나섰지만, 이는 결국 무리한 확장으로 이어져 재정 부담이 됐다는 것이다.
또, 편의점 입점을 위한 저가 납품 경쟁이 반복되면서 차별화된 맥주 대신 대중적인 밀맥주 중심 제품만 시장에 쏟아졌다. 업계에서는 '곰표 밀맥주' 흥행 이후 유사한 콘셉트 제품이 우후죽순 출시되며 시장이 빠르게 획일화됐다고 본다. 소비자들에게 수제맥주는 편의점 밀맥주라는 인식이 굳어졌고, 지역 양조장 특유의 개성과 실험성은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도내 수제맥주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수입맥주와 가격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추가 투자가 필요하고, 이는 곧 무리한 확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납품가를 맞추기 위해 원가를 낮추다 보면 수제맥주 본연의 다양성과 품질을 담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다만, 수제맥주 업계가 대형 유통 채널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2021년 1520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에는 752억 원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한 맥주를 소비해줄 펍과 외식 채널이 감소하면서 생산 라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형 유통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는 수제맥주의 다양성과 품질 등 본질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축제·행사 등을 통한 문화 확산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축제나 행사에 참여해 전국 소비자에게 수제맥주 문화를 알리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저가 경쟁이 아니라 수제맥주의 다양성과 품질이라는 장점을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원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