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때 생산라인 안 멈추게”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량 조절

삼성전자가 노동조합 총파업 일주일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반도체 생산량을 조절하기로 했다. 노조 파업으로 반도체 생산 라인이 멈춰서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미리 생산량을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사실상 매출과 이익을 포기하고 사고 방지에 나선 것으로, 파업으로 인한 타격이 벌써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14일 반도체 전 사업장에서 비상관리상황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에 앞선 메모리 생산량 축소가 골자다. 반도체 생산은 24시간 가동을 전제로 설계된 초정밀 공정이다. 대규모 파업에 따른 인력 부족으로 반도체 생산 라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불량이 잇따르고, 라인이 멈출 경우 웨이퍼 폐기, 장비 안정성 저하 등 피해가 천문학적으로 커질 우려가 있다.
또 인력 부족으로 품질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관리하지 못하고 글로벌 고객사에 납품할 경우 신뢰도가 하락하고 향후 거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파업 일주일 전부터 천천히 생산 물량을 조절하며 적은 인원으로도 품질 이슈가 나지 않는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공정에 투입하는 웨이퍼 수량을 제한하고, 단가가 높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으로 생산 제품군을 재편할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 노조가 18일 총파업에 돌입하기 전부터 생산량 조절을 계획하면서 파업 후 재가동까지 최소 한 달 이상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조 측은 파업으로 인한 손실액이 최대 30조원이라고 밝혔는데, 재계에선 삼성전자 직접 피해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1754개 1~3차 협력사까지 연달아 생산 차질을 빚으며 손실액이 최대 100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한편 정부의 이틀간의 사후 조정에서 합의를 보지 못한 삼성전자 노사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날 중앙노동위원회는 삼성전자 노사에 16일 사후 조정 재개를 요청했고 삼성전자 사측도 노조에 추가 대화를 제안했지만, 노조 측은 “(사측의) 변화가 없을 경우 파업으로 대응할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통상 반도체 업체의 감산은 수요 부진이나 재고 조정, 업황 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경영 판단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이번 생산량 조절은 시장 상황이 아니라 파업 리스크에 대비한 선제 조치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메모리 공급이 빠듯한 시점에 세계 최대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가 파업 가능성 때문에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불안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직간접 파업 손실 100조원까지 거론
반도체 생산 라인은 단순히 전원을 껐다 켜는 방식으로 멈추고 재가동할 수 없다. 수백 개 공정이 길게 연결돼 있고, 웨이퍼 한 장이 완성품이 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생산 라인은 자동화돼 있지만, 인력이 필수적이다. 오류가 발생할 경우 바로 엔지니어가 투입돼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목 현상이 발생해 생산량이 감소하고 품질과 수율이 하락한다.
14일 기준 삼성전자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전체 노조원은 7만2405명인데, 이 중 파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인원은 4만3286명이다.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직원 중 노조에 가입한 비율이 81.6%인 것을 감안하면 DS 소속 직원 10명 중 6명 이상이 파업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업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노조 요구 대비 미흡한) 회사 제시 안건으로 봤을 때는 5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는 사실상 공장 셧다운과 같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같은 규모로 파업이 진행될 경우 전무후무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가 공정에 투입된 웨이퍼가 중간에 멈추고, 장비 오류로 라인이 멈추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급격한 감산이나 라인 중단은 수율과 장비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라인이 멈춰버리면 끝장 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생산량을 관리 가능한 정도로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파업 후에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재가동 준비 기간만 2~3주가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조 측은 총파업 시 반도체 생산 차질 규모가 최대 30조원이라고 자체 추산했고, JP모건은 인건비를 포함해 최대 39.5조원(최대 매출 손실 추정액은 9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도체 업계는 직접 손실보다 간접 손실을 더 우려한다. 18일간의 파업 기간 손실보다 파업으로 인한 고객 신뢰도 상실, 고객사 이탈, 품질 하락과 재점검 등에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고객사들은 공급 안정성을 가격이나 성능 못지않게 중요한 조건으로 본다. 재계 일각에서는 파업 기간 직접 손실액(최대 40조원)과 파업 일주일 전 감산, 재가동에 따른 매출 손실(40조원), 기타 공급망 관련 피해를 포함해 최대 10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노조 “변화 없으면 대화 이유 없다”
파업 예정일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는데 삼성전자 노사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쟁점은 성과급 재원과 상한 폐지의 ‘제도화’다. 노조는 영업이익 15%를 DS 부문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 연봉의 50%로 정해진 성과급 상한선을 폐지할 것을 제도화하라고 요구한다. 반면 사측은 경영·투자 유연성을 고려해 특별 보상의 형태로 경쟁사 이상의 성과급을 주겠다고 맞선다. 지난 11~12일 열린 사후조정에서도 노사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날 삼성전자와 정부는 노조에 추가 대화를 제안했다. 삼성전자는 14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초기업노조)에 ‘노사 간 추가 대화를 제안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삼성전자는 “사후 조정 과정에서 노사 양측이 각각 의견을 전달하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며 “이에 회사는 노사가 직접 대화를 나눌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중앙노동위원회도 삼성전자 노사에 중단된 사후 조정을 16일에 재개하자고 이날 공식 요청했다.
노조는 사후조정에서 내놓은 의견과 다른 것이 없다면 대화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초기업노조는 “진심으로 노사 간 대화를 원한다면 성과급 투명화, 상한 폐지, 제도화 등 핵심 안건에 대해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기 바란다”며 “15일 오전 10시까지 대표이사가 직접 답변하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변화가 없을 경우 적법한 쟁의 행위인 파업으로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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