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사회학자 김성균 박사 “지붕없는 박물관, 함께 나이드는 삶의 공간”

장선 기자 2026. 5. 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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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뮤지엄 새 정의…10여년 주장
주민 한 사람마다 삶의 순간 증명
문화정책·도시재생·복지 융합을
사라지는 기억 복원·이웃 연결 여정
▲ 공간사회학자 김성균 박사가 인천일보와 인터뷰를 했다./장선 기자 now482@incheonilbo.com

"지역의 에코뮤지엄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재생하거나 박물관을 짓는 사업이 아닙니다. 지역 전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문화적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작업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지역문화 정책으로 '지방형 에코뮤지엄'을 제안한 공간사회학자 김성균 박사를 만났다. 그는 에코뮤지엄은 '지역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현재 에코뮤지엄은 '지붕없는박물관'이라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김 박사가 지붕 없는 박물관을 한국 문화정책의 전면에 내세우게 된 계기는 아주 근본적인 회의감에서 비롯됐다. "왜 지역의 이야기는 항상 외부 전문가의 시선으로 만들어지는가, 왜 그 이야기 속에 주민은 관객으로만 머물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동안 정책들은 대규모 공간을 조성하고 그 안을 채울 콘텐츠를 고민했지만, 정작 그곳에서 평생을 보낸 이들의 삶은 소외되기 일쑤였다. 김 박사는 주민 스스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기록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붕 없는 박물관의 철학을 한국 실정에 맞게 이식하기 시작했다.

사업 추진 10년, 현장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가장 큰 성과는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던 노포의 집기들, 할머니의 옛이야기, 평범한 골목길의 풍경들이 하나의 소중한 문화적 유산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박물관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허물고 지역사회 전체가 하나의 문화적 장(場)이 되는 경험을 제공했다.

그러나 성과만큼이나 한계도 뚜렷하다. 김 박사는 행정의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김 박사는 "여전히 문화행정은 단기적인 성과를 도출하되 머물러 있다. 지붕 없는 박물관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인데, 이는 긴 호흡과 기다림이 필요한 작업"이라면서 "하지만 예산은 프로젝트로 쪼개져 집행되고, 실적 위주 평가가 반복되며 주민 주도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됐다"고 분석했다.

주민 참여 역시 프로그램의 숫자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김 박사는 "참여는 기획된 이벤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관계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외부에서 이식된 흥미로운 프로그램에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방식으로는 지역의 정체성을 바꿀 수 없다. 주민이 이 활동을 통해 스스로 존재감을 확인하고, 내 삶의 질과 연결돼 있다는 신뢰가 쌓일 때만 참여의 지속성이 담보된다는 뜻이다. 결국 참여를 지탱하는 힘은 세련된 기획이 아닌 사람 간의 두터운 관계망에서 나온다.

기존의 박물관 중심 정책과 지붕 없는 박물관의 차별점은 '전시'가 아닌 '생존'에 있다. 수집된 유물을 보여주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증명한다. 여기서는 국보·보물보다 이름 없는 민초들의 일상이 더 귀한 가치를 지닌다.

이것은 문화의 주권을 전문가의 손에서 지역 주민의 손으로 되찾아오는 민주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앞으로 지붕없는 박물관이 한국의 지속 가능한 지역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김 박사는 "단순히 사업 기간을 늘리는 것을 넘어, 지역이 자생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장기적인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안하며 "문화정책의 칸막이를 낮추고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복지 등 다양한 영역과 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삶의 현장에는 문화와 복지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지붕 없는 박물관이 갖는 궁극적인 힘을 다시금 환기했다.

"지붕 없는 박물관은 지역을 더 이상 개발의 대상이 아닌, 우리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삶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사라져 가던 기억을 복원하고 끊어졌던 이웃을 다시 연결하는 여정은, 결국 소멸해가는 지방 도시들이 스스로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장선 기자 now482@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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