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려던 ‘신탁방식’···분당 재건축 발목 잡았다

길해성 기자 2026. 5. 1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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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마을, 대신자산신탁 단독 입찰 유력
사업시행자 선정 두고 주민 갈등 심화
제자리 재건축·정산 방식 논란에 소유주 동의도 변수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인 분당 양지마을이 사업 초기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예비신탁업자 선정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정산 방식과 제자리 재건축을 둘러싼 단지 간 갈등, 특별정비구역 지정 취소 소송까지 겹치면서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선택한 신탁방식이 오히려 사업 추진의 변수로 떠오른 모양새다.

◇ 대신자산신탁 단독 입찰 유력···신탁사 선정 갈등 확산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분당 양지마을 통합재건축 주민대표단은 새 예비신탁업자 선정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7일 개찰을 통해 대신자산신탁과 우리자산신탁을 최종 후보로 추린 바 있다. 우리자산신탁이 설명회를 하루 앞둔 8일 입찰 참여를 포기하면서 사실상 단독 입찰 구도가 됐다. 주민대표단 측은 오는 22일까지 소유주 투표를 진행하고 23일 예비신탁업자를 확정할 계획이다.

신탁사 선정 과정은 단지 내 갈등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대신자산신탁이 사업시행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주민대표단과 추진준비위원회 간 이견이 커지고 있어서다. 양지마을에서는 현재 주민대표단(양지 3·5단지 금호·한양 주축)과 추진준비위원회(양지 2단지 청구 주축)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앞서 주민대표단은 지난 2024년 한국토지신탁(한토신)과 예비사업시행자 업무협약(MOU)을 맺고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한토신이 전략환경영향평가 절차 통보를 누락하고 신탁수수료 제안 요청에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MOU를 전격 해지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양지마을 위치도. / 그래픽=시사저널e DB

추진준비위원회 측은 대형 신탁사와의 업무협약을 해지한 뒤 상대적으로 규모와 정비사업 경험이 부족한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선정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입찰 지침이 대형 신탁사에 불리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신탁사의 정비사업 준공 실적보다 그룹사 총자산 규모가 평가에 반영되면서 실제 정비사업 수행 경험이 많은 대한토지신탁 등이 설명회 참여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 제자리 재건축·정산 방식이 진짜 뇌관

신탁사 선정 논란의 밑바탕에는 제자리 재건축과 정산 방식 문제가 깔려 있다. 양지마을은 금호·한양·청구 등 6개 단지 4392가구를 하나로 묶어 6839가구 규모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대형 통합재건축 사업이다. 단지별 입지와 대지지분, 주택형, 기존 자산가치가 달라 재건축 이후 이익 배분과 분담금 산정을 두고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특히 수인분당선 수내역과 가까운 단지 주민들은 재건축 이후 제자리 우선배정과 독립 정산, 독립 분양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입지 가치와 자산가치를 재건축 이후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역세권 단지 입장에서는 통합재건축 과정에서 기존 입지 우위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반면 다른 단지 주민들은 통합 정산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여러 단지를 하나로 묶어 용적률 상향과 기반시설 정비 효과를 얻는 만큼 개발이익도 통합 기준으로 나눠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정 단지의 입지 우위만 과도하게 반영하면 전체 사업의 형평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정산 방식은 향후 분담금과 직결된다. 제자리 재건축 여부도 새 아파트 배정 위치와 자산가치에 영향을 준다.

정비업계에서는 신탁사가 해당 갈등을 조율하기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본다. 신탁사는 사업 관리와 인허가 지원에는 강점이 있지만 단지별 손익 배분을 강제로 중재할 권한은 없다. 새 신탁사를 선정하더라도 정산 기준과 배정 원칙이 먼저 정리되지 않으면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 특별정비구역 취소 소송까지···사업 지연 우려 확산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도 번졌다. 지난 3월 수원지방법원에 성남시장을 피고로 하는 특별정비구역 지정 취소 청구 소송이 접수됐다. 업계에서는 사업 진행 방향과 주도권 배분에 불만을 품은 소유주가 법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1기 신도시 분당 전경. / 사진=시사저널e DB

소송이 실제 구역 지정 취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성남시는 "선도지구가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사안인 만큼 주민 내홍을 이유로 조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소송 자체가 예비신탁업자 확정과 사업시행자 지정 일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사비와 금융비용 부담이 큰 상황에서 일정이 밀리면 분담금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합 재건축은 개별 단지 재건축과 달리 단지별 입지와 자산가치, 분담금 문제가 동시에 얽힌다"며 "민간 사업이라는 이유로 공공이 한발 물러서 있으면 갈등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선도지구는 후속 사업지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만큼 필요할 경우 강제력 있는 중재 기구를 두고 정산 기준과 권리 배분 원칙을 조율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8월 단지별 과반 동의···한 단지 반대가 전체 사업 흔들 수도

오는 8월 시행되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개정안도 변수다. 개정안은 사업시행자 지정 시 전체 소유주 과반 동의 외에 단지별 과반 동의도 요구한다. 단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양지마을에서는 특정 단지 한 곳만 반대해도 전체 사업 일정이 흔들릴 수 있다. 

제도 취지는 소규모 단지 보호지만 정산 방식과 제자리 재건축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갈등 조정 장치가 아니라 사업 추진의 거부권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입지와 집값이 다른 단지들을 무리하게 통합하면서 발생한 예견된 부작용"이라며 "국토부와 지자체가 실질적인 중재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은 희망고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공언한 2030년 1기 신도시 6만3000가구 공급의 첫 시험대인 양지마을에서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분당을 넘어 1기 신도시 정비사업 전반의 추진 일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일산·평촌·산본·중동 등 다른 1기 신도시 선도지구도 양지마을과 비슷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여러 단지를 묶는 통합 재건축인 만큼 단지별 입지와 자산가치 차이에서 비롯된 정산 방식과 배정 원칙 갈등은 어느 사업지에서나 반복될 수 있다. 양지마을에서 갈등 조정 모델을 만들지 못하면 후속 사업지에서도 같은 진통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 정비업계 관자는 "선도지구는 정비사업 속도와 방식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며 "그러나 이곳에서 신탁사 교체와 주민 갈등, 행정소송이 반복되면 후속 지구의 사업 참여자들도 관망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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