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 교수의 에코칼럼]전남광주, 반도체 산업 전력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곧 전기의 산업이다. 공장 부지와 용수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충분히,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 첨단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365일 멈출 수 없으며, 순간 정전과 전압·주파수의 미세한 흔들림조차 막대한 손실로 이어진다. 그래서 반도체 유치는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일이 아니라, 전력계통과 에너지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전남·광주는 결코 불리한 지역이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에서 첨단산업의 대규모 전력 수요를 가장 전략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풍부한 재생에너지 잠재력, 해상풍력과 태양광, 수소와 ESS, 그리고 확충 가능한 전력망 여건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기존 전력망과 분산에너지 체계, RE100 산업단지 모델을 결합한다면, 반도체가 요구하는 전력 수요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물론 전력은 선언으로 공급되지 않는다. 송전망, 변전소, 배전망, 계통안정화 설비, ESS, 예비력, 전력품질 관리체계가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기존 산업도시들이 포화된 계통과 높은 토지비, 복잡한 민원 구조로 한계에 부딪힌 지금, 전남광주는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RE100 산업단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을 처음부터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할 수 있다. 이것은 후발의 약점이 아니라, 백지 위에 그릴 수 있는 후발의 강점이다.
이제는 '반도체 기업이 오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접을 때다. 받아들일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어느 날 어느 기업이 결정을 내리든 즉시 응답할 수 있도록 전력·용수·부지·계통·인허가·금융·행정 지원 체계를 미리 갖추어야 한다. 기업이 투자를 결정한 뒤에 변전소 입지를 찾고 송전선로를 협의해서는 이미 늦다. 반도체는 기다리는 지역이 아니라, 준비된 지역이 잡는다.
특히 기업이 요구하는 것은 연간 발전량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필요한 전력용량, 즉 GW 단위의 안정적 공급 능력이다. 따라서 전남광주의 메시지는 '재생에너지가 많다'에서 '대규모 전력용량을 계획적으로 수용한다'로 진화해야 한다. 해상풍력은 중장기 대용량 전원으로, 태양광은 산업단지 연계 분산전원으로, ESS와 그리드포밍 인버터는 전압·주파수 안정의 기둥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공공 주도 에너지 플랫폼이 가상발전소, 직접 PPA, 장기 고정가격 계약, RE100 공급체계를 운영한다면, 기업은 전력비와 탄소경쟁력을 동시에 얻는다.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후보지별 필요 전력용량을 먼저 산정하고, 154kV·345kV 변전소와 송전망 계획을 산업입지 계획과 동시에 수립해야 한다. 재생에너지·ESS·예비전원·전력품질 보상설비를 아우르는 통합 공급 모델, RE100 이행계획, 전력요금 경쟁력까지 포함한 투자유치 패키지가 필요하다. 기업은 숫자와 일정, 그리고 책임 있는 공급 주체를 원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은 이 전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결정적 계기다. 특별법은 에너지산업·첨단산업·전력계통·분산에너지·투자금융을 통합 설계할 근거를 제공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자신감 있는 실행이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기다리기보다, 전남광주가 먼저 전력수급 계획과 산업입지 전략, 에너지 금융 모델을 들고 나서야 한다.
시민과 공직자께 당부드린다. 전남광주는 반도체의 전력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부족할까 걱정하는 소극적 자세에 머물 이유가 없다. 준비만 제대로 한다면, 전남광주는 단순한 전력 생산지가 아니라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전력 기반 도시가 된다. 이제는 '전남광주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에너지 수도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기업을 만나야 한다.
반도체는 수도권만의 산업이 아니다. 전력과 부지, 용수와 재생에너지, 지역 수용성과 장기 성장전략을 모두 갖춘 지역이 미래의 중심이 된다. 전남광주는 그 조건을 이미 지니고 있다. 남은 일은 가능성을 계획으로, 계획을 투자유치의 언어로 바꾸는 행정의 자신감이다. 준비하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유치하면 된다. 전남광주가 에너지와 반도체를 결합한 국가균형발전의 새로운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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