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배 늘어난 국가 R&D 심의에 AI 첫 투입… 35조 예산 훑는다
업스테이지 ‘솔라’ 모델로 개발
연간 35조원 규모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심의에 사상 처음으로 인공지능(AI)이 투입된다. 각 부처가 제출한 R&D 사업 계획을 AI가 먼저 훑어 기존 사업과 겹치는지, 과거 심의에서 어떤 쟁점이 있었는지, 예산 낭비 요인은 없는지 찾아내는 방식이다. 기술 발전이 빨라지고 사업 수가 급증하면서 R&D 예산 심사 전문위원들이 일일이 자료를 검토하기 어려워진 가운데, 정부 예산 심의에 처음으로 AI 활용이 시도되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는 2027년 국가 R&D 예산 심의·배분 과정에 ‘예산 심의 특화 AI’를 도입했다고 14일 밝혔다. 예산 심의는 각 부처가 제출한 R&D 사업 계획을 전문가들이 검토하고, 다음 해 어느 사업에 얼마를 배정할지 조정하는 절차다. 매년 5~6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원회 산하 10개 기술 분야별 전문위원 166명과 예산 심의 담당자들이 이 작업을 맡는다. 6월까지 예산 배분·조정을 마치면, 이를 토대로 기획예산처가 정부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다.
문제는 국가 R&D 예산과 사업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 건수는 2017년 639건에서 올해 1430건으로 2.2배 늘었다. 예산 규모는 같은 기간 18조9000억원에서 35조5000억원으로 1.8배 커졌다. 전문위원들은 적게는 수십 건, 많게는 200건 넘는 사업 자료를 일일이 검토해야 한다. 사업 계획서와 예산 요구서는 한 건당 많게는 수백 쪽에 이른다. 각자 맡은 사업을 파악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다른 부처, 다른 분야의 유사 사업까지 일일이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백 쪽 사업계획서, AI가 먼저 훑는다
예산 심의 AI는 최근 5년간 진행된 2850여 개 R&D 사업과 관련 문서 2만여 건을 학습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 목적과 핵심 연구 내용을 요약하고, 과거 사업과 유사성·중복성을 분석한다. 전문위원 검토 의견서와 예산 심의서 초안 작성도 돕는다. 지금까지 전문위원들은 개인 경험과 키워드 검색에 의존해 일일이 비슷한 사업을 찾아야 했다. 앞으로는 AI가 사업명, 연구 목표, 핵심 기술, 예산 구조, 참여 기관 등을 종합해 유사 사업을 가려낸다. 단순히 제목이 비슷한 사업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분이 겹치고 어떤 점은 다른지도 함께 정리한다.
예를 들어 신규 에너지 기술 개발 사업이 올라오면 AI는 과거 유사한 국산화 사업, 지방비·민간 매칭 구조, 연차별 투입 예산, 기존 연구 성과를 함께 보여준다. 전문위원은 이를 근거로 부처에 “기존 사업과 무엇이 다른가” “이미 나온 성과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를 지적하고 의견을 요청할 수 있다. 한 전문위원은 “예전에는 내가 속한 전문위원회 이외 사업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AI가 부처별 유사 사업을 한눈에 정리해줘 예산 효율화에 활용할 수 있는 큰 무기가 하나 생겼다”고 했다.
행정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과기부에 따르면 지난 11일부터 실제 심의를 시작한 전문위원 166명 전원이 한 차례 이상 이 서비스를 사용했다. AI 분야를 담당하는 한 전문위원은 “심의 기간에는 업무에 치여 제대로 밥 한 끼 먹기도 어려웠는데, AI를 활용한 뒤 제때 식사할 여유가 생겼다”며 “자잘한 행정 업무 대신 본연의 심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보안 때문에 국내 모델… 고도화는 숙제
중복 사업 일부만 줄여도 재정 절감 효과는 작지 않다. 국가 R&D 예산 35조원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중복·비효율을 추가로 잡아낸다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으로 3조5000억원 재원을 다른 분야에 돌릴 수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구체적 중복 절감 효과를 추산할 계획”이라며 “자료 탐색과 서류 작성 시간을 줄여 전문위원들이 실제 심의와 토론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 목표”라고 했다.
이번 AI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4개월여 만에 개발했다. 국내 AI 기업 업스테이지의 ‘솔라 오픈 100B’를 기반 모델로 했다. 과기부는 지난해 말부터 국내외 AI 모델을 검토한 뒤 보안과 활용 가능성, 개발 용이성 등을 고려해 이 모델을 택했다고 밝혔다. 가장 큰 이유는 보안이다. R&D 예산 심의 자료에는 각 부처 사업 계획, 예산 요구액, 전문위원 검토 의견 등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민감 정보가 들어간다. 개발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보안성 검토도 거쳤다.
다만 이번 도입은 업무 효율화에 초점을 맞춘 만큼 보완해야 할 측면도 있다.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하지만, AI가 초안을 제시하는 만큼 전문위원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앞으로 심의 과정에서 나온 의견을 다시 학습하는 경우 기존 판단이 굳어지는 편향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과기부 관계자는 “AI의 환각과 편향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사용 기록과 전문위원 의견을 분석해 중립성과 정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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