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소리의 궤적을 좇는 작곡가 김택수
작곡가 김택수와 마주한 사유의 창
최근 스튜디오를 이전하며 한쪽 벽면에 8폭으로 분할된 대형 풍경 사진을 걸기로 했다. 분할된 프레임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액자 사이의 간격과 수평을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맞추는 세밀한 공정이 필수적이었다. 인테리어 업체의 호의로 시작된 설치 작업이었지만, 첫 못질 소리가 울린 지 오래지 않아 나의 기대는 참담함으로 바뀌었다. 설치 기사의 손길에는 긴장감이 없었다. 정교한 수평계 대신 주먹구구식 눈어림이 동원되었고, 수평이 맞지 않자 액자 뒤에 구멍을 찢으면 된다는 거친 제안이 돌아왔다. 유럽 가구 메이커의 조립 액자를 다루듯 거침없이 작품 표면을 스치는 손길 앞에서 나는 결국 참아왔던 짜증을 터뜨렸다. 벽면은 이미 파편 같은 구멍들로 얼룩졌고, 작품들은 제각기 다른 간격으로 흩어져 있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추운 겨울 오대산 선재길의 추위를 무릅쓰며 셔터를 누르고 모니터 앞에서 픽셀 하나를 고민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전시 때 깔끔하게 작업해 주었던 설치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지 않은 게 후회됐다. 그러나 나는 그 어지러운 벽면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작품 뒤로 제멋대로 박힌 못 자국(나만 아는…)과 조금씩 비뚤어진 액자들을 매일 마주하기로 한 것이다. 이 흉터 같은 벽면은 나에게 매 순간 준엄한 다짐을 상기시킬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작업이란 결국 정밀함에 대한 집요한 투쟁이다.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빛의 계조를 조절하며 찰나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모든 과정은 타협할 수 없는 정확성 위에 존재한다. 저 뒤틀린 8폭의 풍경은 단 한 번의 방심이 초래한, 세밀함을 포기한 대가를 내 시선에 매일 각인시키고 있다. 이제 나는 비뚤어진 액자 사이의 틈을 보며 다시금 셔터의 무게를 느낀다. 세밀한 조정을 포기한 결과가 어떤 파편을 남기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다.
사진계에는 전설적인 보도 사진가 위지(Weegee, 본명은 아서 펠리그)가 남긴 격언이 있다. “f/8 and be there(조리개는 8에 맞추고, 그 자리에 있어라.)” 아무리 뛰어난 장비가 있어도 사진가가 그 장소, 그 순간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진은 태어날 수 없다. 기술적 고민에 매몰되기보다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현장에서 인내하며 피사체와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이 지독하게 성실한 문장은 사진가의 숙명과도 같다. 비뚤게 걸린 작품은 어느 해 1월, 무작정 차를 몰아 오대산 월정사 부근에서 촬영한 것이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9km의 옛길, 스님들이 수행을 위해 걸었다는 그 깨달음의 길이다. 얼어붙은 개천 너머로 보이는 차가운 숲은 당시 내 마음처럼 서늘했다. 그 서늘한 숲길에서 추위를 견디며 기록했던 선재길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작품 옆으로 세워져 있는 투명 아크릴판을 보니 작곡가 김택수가 생각났다. 그 아크릴판의 검은 네임펜 자국을 보노라면 작곡가와 나누었던 그날의 열정이 다시금 뜨겁게 샘솟는다. 2024년 8월, 나는 작곡가 김택수와의 인터뷰 촬영을 위해 홍제동 스위스그랜드 호텔로 향했다. 작곡가의 보이지 않는 소리의 궤적을 좇는 정체성을 단 한 장의 사진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나는 작업실 한쪽의 투명 아크릴판을 행거에 고정하고 네임펜 한 자루를 챙겼다. 그 투명한 캔버스 위에 그가 써 내려갈 선율이 곧 그의 세계가 되리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호텔 로비의 정적 속에서 카펫 위를 구르는 바퀴의 마찰음을 들으며, 나는 그가 아크릴 너머로 보여줄 예술적 찰나를 기대했다. 이윽고 도착한 작곡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내가 준비한 투명한 캔버스 위에 거침없이 오선지를 그리고 작곡을 시작했다. 나는 그 투명한 아크릴 너머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아크릴 위에 새겨지는 검은 선율들은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음악적 운명이 현실로 투과되는 과정이었다. 그가 그려내는 음표와 그 너머의 진지한 눈빛을 하나의 평면 위에 담아냈다.
미팅 없이 마주하는 낯선 공간에서의 촬영은 사진가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통제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배경을 선별하고 모델과 호흡을 맞추는 일은 매 순간이 즉흥적인 결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찰나의 표정을 포착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긴장감은 오히려 감각을 더 날카롭게 세워준다. 준비성이 철저했던 작곡가 덕분에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나는 다시금 확신했다. 지적인 통찰을 가진 이는 렌즈 앞에서도 자신만의 아우라를 운용할 줄 안다는 것을. 결이 같은 감각은 긴 설명 없이도 통하는 법이다. 사전에 약속된 미팅은 없었으나 현장에서 발휘된 서로의 영감은 그 어떤 치밀한 기획보다 견고했다.

촬영을 마치고 같은 달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힉엣눙크(Hic et Nunc) 뮤직 페스티벌을 보러 갔다.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을 뜻하는 힉엣눙크 정신은 클래식의 에이지리스(Ageless) 본질과 닿아 있다. ‘에이지리스’라는 키워드는 단순히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한 가치를 뜻한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과거의 권위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세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소통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많은 음악가가 장르의 벽을 허무는 시도를 통해 에이지리스를 구현하고 있다. 작곡가 김택수처럼 한국적 정서나 현대적인 일상의 소리를 클래식 악기로 풀어내는 시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의 아시아 초연곡 ‘네 대의 바이올린과 타악기를 위한 협주곡(with/out)’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악장들이 독주자로 대거 나서서 세종솔로이스츠와 협연한 작품으로, 그 공연은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예술적 교감의 장으로 승화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만난 작곡가는 무척 반가워했고, 나도 반가워서 기념사진을 한 컷 남겼다.
작곡가 김택수는 유망한 화학도에서 현대음악 작곡가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로, 현재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은메달리스트 출신의 화학 영재였으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작곡과에 편입하여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다.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 등을 사사했고, 현재는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San Diego State University)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 필하모니, 오리건 심포니 등 유수의 악단들이 그의 작품을 연주했으며, 2021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 ‘빨리빨리’로 국제적 권위를 지닌 버를로우 작곡상(Barlow Prize)을 수상하는 등 근래 들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김택수의 작품은 일상적인 소재를 현대 클래식 어법으로 치밀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공학도 출신답게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한국적인 정서를 세련되게 녹여내는데, 앞서 언급한 ‘빨리빨리’도 그 일례다. ‘국민체조’, ‘찹쌀떡’, ‘더블리치’ 등 한국인의 일상과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들과 클래식에 트로트 요소를 가미한 파격적인 시도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인과의 대화 중 문득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행 초등학교 미술 수업에는 친구의 얼굴 앞에 투명 아크릴판을 대고 그리는 과정이 있다고 한다. 상대의 눈동자와 속눈썹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서로의 세계가 투영되는 통로를 만드는 일. 2024년 8월, 그날 내가 준비했던 아크릴판 역시 단순히 소품을 넘어 작곡가 김택수와 내가 마주한 사유의 창이었다.
새로 옮긴 이곳에서, 김택수 작곡가와의 인연처럼 밀도 높은 수많은 운명적 작업이 찬란하게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어쩌면 비뚤어진 8폭의 액자 틈새는, 그 완벽하지 못한 틈을 메우기 위해 내가 평생 치열하게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가장 정직한 선언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수평은 아니더라도 그 틈 사이로 흐르는 공기가 오히려 나의 사진을 숨 쉬게 할 것이다. 김택수 작곡가가 투명한 아크릴 위에 보이지 않는 소리의 궤적을 그려 넣었듯, 나 또한 이 불완전한 벽면 위에 나만의 새로운 궤적을 채워보려 한다. 어쩌면 사진가의 숙명이란 1mm의 오차도 없는 정교함이 아니라 비뚤어진 세상 속에서도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결정적 순간’을 향해 기꺼이 그 자리에 머무는 일일 테니까.
구본숙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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