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괜찮아…박준영이 건넨 시속 138㎞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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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번째까지 그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그때 박준영은 결심했다.
박준영의 승리는 그와 같은 시간을 버텨낸 가족 모두의 승리이기도 했다.
강속구가 지배하는 시대, 박준영의 공은 그리 빠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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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번째까지 그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부모님은 다시금 우셨다. 그 또한 울 수는 없었다. “저까지 울어버리면 부모님이 더 힘드실 것 같아서 최대한 괜찮은 척했어요.”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른거린 것은 부모님의 젖은 눈망울이었다. 그때 박준영은 결심했다. ‘이대로 포기하지 않아. 더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해서 부모님 기쁘게 해드릴 거야.’
한화 이글스 육성 선수 출신 박준영의 프로 데뷔 첫 선발 등판(10일 대전 LG 트윈스전)이 유독 특별했던 이유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두 차례의 신인드래프트 낙방이라는 쓰라린 고통을 견디고 일궈낸 무대였기 때문이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같은 유니폼을 입어도 기회는 드래프트 지명 순서, 즉 구단의 ‘투자 가치’(계약금)에 따라 차등 분배된다. 지명받지 못한 육성 선수에게는 퓨처스(2군)리그 등판조차 가뭄에 콩 나듯 주어진다. 박준영은 실력으로 증명했다. 3~4월 퓨처스 무대를 평정(7경기 4승, 평균자책점 1.29)했고, 마침내 1군 등판 기회를 거머쥐었다.
그는 이날 79개의 공으로 지난 실패의 시간을 ‘리셋’했다. 수천, 수만개의 공을 던지고 만들어낸 기회를 허투루 날리지 않았다. 1회초 1사 2, 3루, 4회초 2사 1, 3루 위기 때마다 그는 더 단단해졌다. 5이닝 3피안타 3볼넷 2탈삼진 무실점. 5회초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올 때 그의 귀에는 커다란 함성이 꽂혔다.
“박준영! 박준영!”
야구장을 가득 메운 한화 홈팬들의 응원 소리였다. 순간, 그는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사실 박준영을 야구로 이끈 것도 이 ‘함성’이었다. 기아(KIA) 타이거즈 팬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을 자주 갔던 소년은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매료되어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글러브를 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야구, 그의 곁을 지킨 첫번째 코치는 아버지였다. 중학교 시절까지 아버지와 주고받은 캐치볼은 박준영 야구의 뿌리가 됐다.
그래서 1군 데뷔전 때 관중석을 지킨 부모님의 존재는 더욱 각별했다. 특히 어머니는 아들의 투구 하나하나에 심장을 부여잡았다. 박준영의 승리는 그와 같은 시간을 버텨낸 가족 모두의 승리이기도 했다.

성장의 변곡점은 청운대 시절과 야구 예능 ‘불꽃야구’였다. 속구와 슬라이더에 의존하던 투수는 변화구를 연구하고 투구 메커니즘을 재정립하면서 공부하고 성장하는 투수로 거듭났다. 특히 ‘불꽃야구’ 김성근 감독의 지도는 도움이 많이 됐다. 김 감독은 공의 궤적부터 하체 사용법까지 세밀하게 전수했다. 첫 승 직후 감사의 전화를 건 박준영에게 김 감독은 “이제 시작이다. 더 멋진 모습을 보여달라”며 따뜻한 격려를 건넸다.
강속구가 지배하는 시대, 박준영의 공은 그리 빠르지 않다. 데뷔전 속구 평균 구속은 시속 138㎞, 최고 구속도 시속 142㎞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정교한 코너워크와 담대한 배짱으로 구속의 열세를 극복했다. 그리고, 결과는 KBO리그 역대 최초 육성 선수 출신 데뷔전 선발승이라는 대기록이었다. 엠비티아이(MBTI)가 이엔에프피(ENFP)라는 박준영에게 실패는 좌절의 이유가 아니었다. 그는 실패를 “야구 인생의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남들보다 더디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한화에는 2022년 1차 지명된 동명의 후배 박준영(2003년생)이 있다. 팀 내에서 나이순으로 ‘일준영’이라 불리는 그는, 1군 데뷔전에서 시속 130㎞대의 공으로 ‘시속 150㎞가 아니면 안 된다’는 편견을 보란 듯이 깨뜨렸다. 느려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늦어도 괜찮다는 것을 그는 79개의 공으로 증명했다. 그렇게 박준영의 야구는 이제야 시작됐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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