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익 6조 터진 정유사, ‘공급망·신사업’이 진짜 실력 가른다
[한국금융신문 곽호룡 기자] 지난해 1분기 총 9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에쓰오일·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가 올해 1분기엔 영업이익 6조 원으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몰고 온 유가 상승세가 실적 전반을 견인했다. 다만 이번 호실적이 유가에 기대온 '일회성' 성격이 짙은 만큼, 향후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는 시점에서 원유 조달 안정성과 비정유 신사업의 결실 여부에 따라 실질적인 경쟁력 차이가 극명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14일 정유 4사의 올해 1분기 실적을 합산해보니, 매출은 53조9050억 원, 영업이익이 5조9635억 원으로 나타났다. 작년 1분기보다 매출은 14.9%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조532억 원 늘었다.
이번 호실적은 지난 3월 중동 사태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으로 재고 관련 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난 영향이다. 전쟁 이전 싼 가격에 사둔 원유를, 전쟁 이후 급등한 제품 가격으로 판매해 마진이 극대화하는 긍정적인 래깅효과로 깜짝 실적을 낸 것이다.
SK이노베이션(대표이사 장용호·추형욱)은 가장 큰 폭으로 실적이 반등한 곳이다. 올 1분기 매출 24조2121억 원, 영업이익 2조1622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작년 4분기(2361억 원)보다 9배 넘게 확대됐다. 회사는 "1분기 재고 관련 이익이 1조249억 원"이라고 밝혔다. 전체 영업이익 가운데 절반 가량이다.
특히 정유 자회사 SK에너지는 영업이익 1조2832억 원 가운데 60%인 7760억 원이 재고 이익에서 나왔다. 석유화학 부문을 담당하는 SK지오센트릭(영업이익 1275억 원), SK인천석유화학(6471억 원)도 1년 전 적자를 털어냈다. 두 회사의 재고 효과는 1800억 원 수준으로 이를 제외하고도 비용 효율화 노력 효과 등을 봤다.

에쓰오일(대표이사 안와르 알 히즈아지)은 매출 8조9427억 원, 영업이익 1조2311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13.8%로, 4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성을 실현했다. 경쟁사와 비교해 정유 사업 비중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회사는 이번 분기 재고 관련 효과가 6434억 원으로, 전체 영업이익 중 절반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에쓰오일은 월별 실적을 공개해 유가 상승에 따른 실적 영향을 보다 자세히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월별 영업이익률이 ▲1월 6.2% ▲2월 9.4% ▲3월 23.1%로 전쟁 이후 급등했다. 또 정유 부문 영업이익 1조390억 원 가운데 7423억 원(71%)이 3월에 발생했다.
이 외에도 GS칼텍스(대표이사 허세홍) 영업이익 1조6367억 원(영업이익률 12.6%), HD현대오일뱅크(대표이사 송명준·정임주) 9335억원(12.1%) 등도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벌어도 불안...공급 관리 집중
정유사들은 이 같은 깜짝 실적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할 경우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두바이유 기준 60달러대)으로 급락해, 대규모 재고 손실 효과를 볼 가능성도 있다.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정부의 최고가격제에 따른 손실을 얼마나 보전해줄 지도 변수다.
단 정유·석유화학 업계 전망을 종합해보면, 중동 사태가 진정될 경우 국제유가는 90달러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동 현지 에너지사들이 타격을 받은 인프라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원유 공급 차질은 지속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정유사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다. JP모건은 오는 6월 초 글로벌 상업용 원유 재고가 한계 구간에 도달 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현재 일부 공정에 대한 정기보수와 중동산 이외 지역에서 대체 원유 물량 확대를 통해 관리에 나서고 있다. 전체 원유 90%를 모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에서 들여오는 에쓰오일은 우선 6월까지 전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원유를 공급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종전 이후 드러날 체질개선 성적표
한편 이번 지정학적 위기는 역설적으로 국내 정유사들에 원유 조달 능력을 재점검하고, 정유 부문에 쏠린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E&S는 호주 가스전에서 생산한 LNG를 지난 3월부터 도입했다. 이를 통해 E&S는 SK이노베이션 합병전 달성했던 연간 1조원대 영업이익을 올해 다시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전유진 iM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 기업분석 보고서를 통해 "호주산 물량은 E&S 발전소에 필요한 LNG 수요의 30%에 달한다"며 "전력도매가격(SMP) 강세 국면에서 마진 확대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배터리 자회사 SK온은 포드와 협력 중인 ESS(에너지저장장치) 사업 확대를 통한 배터리 부문의 적자 폭 개선도 꾀하고 있다.
정유 비중이 가장 높았던 에쓰오일은 올해 말 가동 예정인 대규모 석유화학 프로젝트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낸다.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TC2C 기술을 적용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4월 말 기준 EPC(설계·조달·시공) 공정률은 96.9%로, 사실상 완공 단계에 접어들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사업 구조 개편을 통해 재무 안정성 강화에 나섰다. 롯데케미칼과 합병 법인을 출범하기로 한 대산 공장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오는 9월 출범을 목표로 하는 이번 합병을 통해 그간 재무 부담이 과중했던 HD현대케미칼의 사업 안정성을 높이고 운영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GS칼텍스의 경우 수년째 국내 설비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바이오항공유(SAF) 사업에 속도를 낼 지 관심이 모인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