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다] AI 활용하면 창작 속도·비용 개선되지만… 소비자 ‘거부감’에 난감한 콘텐츠 기업들
"구매할 창작물은 ‘인간’이 만들어야"
창작자들, AI 제한적 활용 중
게임·웹툰·애니 등서 AI와 ‘불편한 동거’ 중

보수적인 콘텐츠 소비자들은 "인공지능(AI) 창작물은 영혼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의 손길과 혼이 담긴 콘텐츠에 돈을 쓰길 원한다.
AI는 창작물 제작 과정 전반을 혁신하고 있다. AI를 사용하면 새로운 콘텐츠를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적은 노력과 돈을 들여서 만들 수 있다. 생성형 AI 시대가 본격화한 이후 유튜브, 소셜미디어(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AI를 사용해 만든 콘텐츠가 범람한다.
하지만 콘텐츠 업계는 AI 전면 도입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상당수 소비자들이 AI로 생산된 콘텐츠에 반감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AI를 사용하면 창작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2차 창작물로 일회성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굳이 돈을 내고 이런 콘텐츠를 사고 싶지 않아 한다.
AI를 적극 사용해 만든 콘텐츠들은 기존 콘텐츠 소비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해 흥행이 극히 제한적이다.
때문에 AI를 사용한 창작자들은 이를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걸리지만 말자'며 암묵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으로 번져가고 있다. 개발자와 작가 등은 AI를 통해 '초안'을 받고 이를 수정, 콘텐츠화하면서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웹툰, 애니메이션, 게임 등 '일러스트'와 '내러티브'가 반드시 필요한 콘텐츠 업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사람이 공들여 창작한 그림과 음악과 스토리를 원한다는 것을 업계도 잘 알기 때문이다.
서브컬처는 AI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이 가장 큰 영역이다. 서브컬처 팬들은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연출에 만족감을 표시할 때 '작업자들이 갈려 나간 것 아니냐'고 표현한다. 사람이 수작업으로 해낸 성취에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는 뜻이다. 캐릭터와의 교감이 중요한 서브컬처 게임도 캐릭터 일러스트에서 AI 사용 흔적이 보이지 않아야만 이용자들이 인정해준다. 창작자와 콘텐츠 기업들은 이러한 소비자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신규 지식재산(IP)의 성공이 더욱 힘들어졌고, IP 사업은 결국 '팬덤 베이스'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이를 소비할 팬이 없다면 그 작품은 '가치 없는 디지털 데이터'에 불과하다.
이에 AI와 콘텐츠 기업, 소비자 간의 '불편한 동거'는 지난 몇 년간 이어져왔다. 웹툰 시장에서는 AI 티가 나면 '별점 테러'를 당했고, 게임도 마찬가지로 매몰찬 외면을 받았다.
스마일게이트의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는 일부 캐릭터 일러스트가 AI를 사용했다고 문제 제기를 당했다. 펄어비스의 '붉은사막' 역시 게임 속 '그림'을 AI로 사용해 전 세계 이용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아 환불 사태까지 벌어졌다. 스튜디오비사이드의 '스타 세이비어'는 AI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논란에 휩싸였고, 그림 작가가 직접 소명까지 하는 촌극까지 일어났다.
지난해 '올해의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도 일러스트 제작 일부에 AI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사실로 확인됐다. 이후 '인디 게임 어워즈'에서 수상이 취소되고 이용자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AI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들의 거부감은 어설픈 완성도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생성형 AI 등장 초창기에는 사람 그림의 한 손 손가락 개수가 5개를 초과하는 경우도 많았다. 연속된 장면에서 일관성이 보이지 않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왼손잡이'인데 어느 순간 '오른손잡이'로 변했거나, 입고 있는 옷 또는 외형이 장면마다 달랐다. AI가 사용자와의 대화에서 학습한 '맥락'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어 나타난 부작용이었다. 캐릭터들의 외모 역시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아 거부감이 컸다.
특히, 게임 분야에서는 AI에 대한 기업과 이용자의 인식이 완전히 달랐다. 기업은 게임 개발 '공정 효율화' 도구로 AI의 활용도를 살폈지만, 국내 이용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게임성'을 기대했다. 게임 콘텐츠는 게임사가 설계한 시스템과 생태계를 게임 이용자가 즐기면서 소비된다. 여기서 이용자가 개선 사항 또는 추가적인 콘텐츠를 요구하면 게임사가 이를 수용하고 게임을 발전시키는 '상생 구조'다.
한국 게임 이용자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구조를 AI가 깨부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게임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거나 논플레이어블캐릭터(NPC)와의 대화가 맥락 있게 이어지는, 이용자가 만들어 나가는 내러티브를 원한 것이다.
하지만 게임 개발에서 AI는 개발 전반의 혁신에 우선 적용했다. 크래프톤의 '인조이' 외에는 이용자들의 바람을 적극 반영한 게임이 많지 않다.
서구 이용자들 사이에는 '게임은 인간의 창작물이어야 하며 AI가 이 가치를 훼손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특히 스토리와 디자인 분야에서는 더욱 강경하다. 다만, 이들은 창작이 아닌 영역에서의 AI 활용은 거부하지 않고 있다.
최근 공개된 신작 중 AI를 콘텐츠로 풀어내 호평받은 게임은 인조이와 엠바크 스튜디오의 '아크 레이더스' 정도가 있다. 인조이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AI 협력캐릭터(CPC)를 통해 사용자 선택에 맞춰 변화하는 세상을 보여줬다. 아크 레이더스는 머신러닝 학습 기법을 통해 똑똑해진 아크(몬스터)들을 선보였다. 소비자의 거부감과는 별개로 AI와 콘텐츠는 기술의 진보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 가고 있다. 산업 특화 AI 도구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툴은 AI를 탑재해 재탄생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볼 때 앞으로 콘텐츠 기업들은 AI가 인간의 창작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을 돕는 도구임을 증명해 내야 한다. 실패할 경우 소비자의 거부감은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불법도 아닌데 '들키지 않는 수준'에서만 사용해야 할 수 있을 것이다. AI 도입을 통한 비용 절감과 작업 효율화는 전 산업군에서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콘텐츠 업계가 AI 기반의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을 추구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온다.
김영욱 기자 wook95@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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