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 건원릉까지…‘태조의 길’을 걷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 이후 처음 세운 경복궁
회암사지, 계단식 배치 속 고려 선종 사찰 구조 고스란히 남아
가파른 오솔길 오르면 건원릉 봉분 등장

조선 왕릉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여행 ‘왕릉팔경’을 개시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에서 주관하는 조선왕릉길 여행으로 조선의 왕과 왕비가 잠든 왕릉을 따라 걸으며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500년 왕조의 시간을 마주할 기회다.
11일에는 왕릉팔경의 두번째 여정이 펼쳐졌다. ‘태조의 길’을 주제로 잡고 경복궁과 경기 양주 회암사지, 경기 구리 동구릉을 두러보는 일정이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ICOMOS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의 해설이 함께했다.
‘태조의 길’의 시작점인 경복궁에서 참가자 서른여 명은 광화문 앞 월대에서부터 근정전·사정전·교태전과 경회루까지 걸으며 조선 궁궐의 구조와 건축에 담긴 의미를 들여다봤다.

◆경복궁=1395년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 이후 처음 세운 법궁이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탔고 이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흥선대원군이 1860년대 대대적인 중건에 나섰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다시 훼손됐다. 신 교수는 “해방 뒤 남아 있던 건물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며 “1990년부터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지금도 복원이 완전히 끝나진 않았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금천교를 건너 근정전으로 향했다. 금천은 속세와 궁궐을 구분하는 상징적 경계다. 신 교수는 “물 위를 지나며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임금을 만나러 들어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왕의 집무 공간인 사정전과 왕과 왕비의 침전인 강녕전·교태전도 둘러봤다. 교태전 뒤 아미산 굴뚝 앞에 이르자 참가자들이 발길을 떼지 못했다. 육각 굴뚝마다 십장생과 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계단식 화단에는 작약과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양주 회암사지=이어서 경기 양주 회암사지로 이동했다. 이곳은 고려 말과 조선 초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선종 사찰 터다.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서 물러난 뒤 머물렀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먼저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에 방문해 현재 회암사지와 과거 회암사의 모습을 모형과 영상으로 소개하는 ‘대가람 영상’을 관람했다.
회암사는 조선 건국 이후에도 왕실 후원을 받으며 번성했다. 태조 이성계는 함흥과 개경에 오가던 시기 이곳에 자주 머문 것으로 전해진다. 실록에도 관련 기록이 존재한다. 이후 임진왜란 전후 화재로 건물이 사라졌지만 돌 기단과 터는 흙 아래 묻혀 보존됐다. 주민들은 이곳을 태조가 머물렀던 신성한 장소로 여겨 함부로 훼손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현장에선 당시 건물터와 기단, 석축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고려 말 문인 이색이 남긴 ‘천보산 회암사 수조기’에는 건물 이름과 규모·공간 구성까지 상세히 적혀 있는데 발굴 결과가 그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 문헌 속 내용을 실제 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사찰은 총 아홉 단의 계단식 대지 위에 조성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건물이 더 웅장하게 보이도록 설계한 고려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중심 축에는 절 입구의 문(산문)과 부처를 모신 중심 법당(불전), 스님이 불경을 가르치거나 법문하던 설법 공간, 절을 운영하는 주지 스님의 생활 공간이 차례로 놓였다.
가장 안쪽에는 부처나 고승의 사리를 모신 사리전지(舍利殿址)와 사찰의 업무를 보거나 왕이 방문했을 때 머물던 정청지(政廳址)가 있다. 이는 중국 선종 사찰의 규범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고려식 변형을 더한 구조다.
현재 회암사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신 교수는 “13~14세기 동아시아 선종 사찰의 전형을 가장 온전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일본·베트남에서도 당시 선종 사찰 원형이 남아 있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회암사지는 건물은 사라졌지만 기초 체계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세계유산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완전성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태조 건원릉=경복궁과 양주 회암사지를 지나 드디어 조선 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가 잠든 건원릉에 방문했다. 이곳은 아홉 개의 능이 있는 경기 구리 동구릉에 있다.
속세와 왕릉 공간의 경계를 뜻하는 홍살문을 지나면 제례 공간인 정자각이 나온다. 조선왕릉 제사는 이곳에서 올렸다. 가운데 높게 솟은 길은 향로로 향과 축문을 든 제관과 신령이 다니는 길이다. 왕은 그 옆의 낮은 어로를 걸었다. 길 하나에도 산 사람과 신령의 질서를 구분한 것이다. 정자각 앞 판 위에서는 왕이 네 번 절한 뒤 제례를 올렸다. 제사가 끝나면 신은 능에 머물고 왕만 돌아간다는 의미로 내려가는 계단은 하나만 두었다.

건원릉 봉분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은 매우 가팔랐다. 태조 능의 봉분에는 일반 잔디 대신 억새가 뒤덮었다. 태조의 고향 함경남도 함흥 풍습을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봉분 아래에는 왕의 혼이 머문다고 여긴 널찍한 돌인 혼유석이 놓였다. 주변에는 열두 방향을 지키는 동물 형상의 수호신 조각인 십이지신상과 봉분 경계를 두른 돌난간인 난간석 왕릉이 있는 자리임을 알리는 기둥 모양의 망주석이 둘러섰다.
왕릉 하나를 조성하는 데에는 짧게는 반년 동안 수천 명을 동원했다. 봉분과 조각상·제례 공간을 갖춘 거대한 국가 사업이었다. 건원릉은 그렇게 조선 왕조의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세워진 왕릉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조선 왕릉 문화의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이날 구리 동구릉에서는 국악 앙상블 ‘국악의숲’ 공연도 함께 열렸다. 오나연 해금 연주자와 김범수 대금 연주자가 무대에 올라 드라마 추노의 주제곡 ‘비익련리’, 비틀스의 ‘헤이 주드(Hey Jude)’,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을 유려한 선율로 들려줬다.
임금의 능은 한 제국의 정신이 깃든 상징물이다. 서사가 흐르고 역사가 아로새겨진 왕릉길을 걷다 보면 분명 주인공의 통치 이념을 헤아려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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