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첫사랑이 50년 후에 부부의 인연으로 ‘결실’

박청교 기자 2026. 5. 14. 12:4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분당의 어느 조용한 카페.

찻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눈빛에는 '예순여섯'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만큼 청량한 기운이 감돈다.

서로의 눈을 마주한 순간 두 사람은 깨달았다.

1년여의 연애 끝에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의 일상은 말 그대로 알콩달콩한 신혼이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 김종학·채희분 씨의 영화 같은 로맨스
김종학·채희분 씨
분당의 어느 조용한 카페. 찻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눈빛에는 '예순여섯'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만큼 청량한 기운이 감돈다.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나 어린 시절의 모든 계절을 공유했던 두 사람. 이들은 초등학교 동창 김종학·채희분 씨 부부다.

둘의 이야기는 단순한 재회를 넘어 인생의 가장 깊은 곳에 묻어 뒀던 첫사랑의 조각을 완성해가는 한 편의 로맨스와 같다.

# 50년 전 교정의 코스모스 가슴속에

이들의 인연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군 대왕면 고등리(현 성남시 고등동)에 있는 왕남초등학교 시절, 이들은 탄천 개울가에서 함께 뛰놀던 무구한 동무였다. 

김종학·채희분 씨가 중학교 때 은사 배영숙 선생님과 평창 여행에서 추억을 만들고 있다.
효성중학교(심곡동) 시절에는 등굣길 담벼락 사이로 수줍은 인사를 나누던 단짝이었다. 당시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봄이면 적푸리 저수지(상적동)로 소풍을 갔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헌인릉에서 추억을 쌓았다. 

특히 생일마저 같아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성별 구분(1, 2)만 다를 뿐 모든 숫자가 똑같았던 이들은 서로에게 운명 같은 이끌림을 느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사랑은 고백보다는 아껴둠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인연은 잠시 어긋났다. 각자 타 지역으로 학교를 옮기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것. 이후 20대에 각자 가정을 꾸리며 소년과 소녀의 기억은 그렇게 40여 년의 세월 속에 묻히는 듯했다.

# 50년 세월을 건너온 기적 같은 재회

각자의 자리에서 부모로, 사회인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 자녀들이 장성하고 삶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질 무렵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초등 동창 모임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 것이다. 서로의 눈을 마주한 순간 두 사람은 깨달았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가슴 한구석에 간직해 온 '그 시절의 아이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김종학·채희분 씨의 초등학교 동창 부부동반 강릉 여행.
남편 김종학(66)씨는 "다시 만났을 때, 마치 어제 헤어졌던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이 나이에 이런 감정이 다시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물론 현실은 냉혹했다. 지켜야 할 사회적 체면과 책임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들은 남은 인생을 누구의 곁에서 마감하고 싶은가라는 본질적 질문 앞에 섰다. 수많은 밤을 지새운 고민 끝에 두 사람은 각자의 과거에 진심 어린 사죄와 이해를 구하며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수십 년 세월의 마침표는 아팠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함은 그 통증보다 깊었다.

# "가장 늦게 도착한 첫사랑" 황혼의 선물

1년여의 연애 끝에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의 일상은 말 그대로 알콩달콩한 신혼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같은 날 태어난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함께 산책하며 어린 시절 교정에서 나누지 못한 얘기들을 쏟아낸다.

김종학·채희분 씨가 초등학교 동창 부부와 충주호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부인 채(66)씨는 "우리는 서로의 부모님 성함부터 어린 시절 살던 집의 대문 색깔까지 알고 있어요. 40년 넘게 떨어져 살았지만 사실은 평생을 함께해온 것과 다름없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주변에서는 이들을 '특별한 부부'라 부르지만 정작 본인들은 스스로를 가장 늦게 도착한 첫사랑이라 정의한다. 같은 날 태어나 먼 길을 돌아 다시 손을 맞잡은 두 사람. 이들에게 66세는 인생의 황혼기가 아니라 가장 열정적인 청춘기이다.

 광주=박청교 기자 pcg@kihoilbo.co.kr

Copyright © 기호일보. 무단전재, 재배포, AI학습·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