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interview] ‘투명인간에서 해외진출까지’ 이정근, 그가 견뎌온 미생의 시간 (1편)

정지훈 기자 2026. 5. 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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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IF'의 사전적인 의미는 '만약에 ~라면'이다. 은 '만약에 내가 축구 기자가 된다면'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누구나 축구 전문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있는 'No.1' 축구 전문지 '포포투'와 함께 하는 은 K리그부터 PL, 라리가 등 다양한 축구 소식을 함께 한다. 기대해주시라! [편집자주]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독립구단'이라는 이름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곳 양천 TNT FC에는 저마다 가슴 속에 남들에게 다 말하지 못한 아픈 사연 하나씩은 품고 있는 선수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부상 때문에, 누군가는 운이 없어서, 또 누군가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고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이곳 훈련장을 누빈다.

그 수많은 발소리와 땀방울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 바로 양천 TNT FC의 주장 이정근 선수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단단함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확신'은 그가 처음부터 가졌던 당당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고 그는 누구보다 뼈아픈 실패를 먼저 맛본 선수이다.

꿈에 그리던 프로 구단에 입단했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그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채 마치 '투명인간'처럼 지내야 했던 외로운 날들이 있었다. 다시 한번 국내 무대에 도전해 보려 했지만, 차가운 현실의 벽 앞에서 결국 무거운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날들도 있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들의 화려한 모습인 '완생'을 먼저 보려 한다. 하지만 이정근 선수의 진짜 이야기는 그 화려함 뒤편에 숨겨진 '미생'의 시절에 있다.

그가 어떻게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는지, 그 시련들이 어떻게 지금의 단단한 이정근을 만들었는지부터 들어보려고 한다. 완벽해 보이지 않았기에 더 치열할 수 있었고, 부족했기에 더 정교하게 자신을 설계할 수 있었던 이정근, 피치 위에서 조용히 승리를 설계하는 그의 첫 번째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 침대 위 다이빙 소년, 축구에 눈을 뜨다

모든 위대한 여정은 아주 작은 동경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이정근에게 그 시작은 온 나라가 붉은 함성으로 가득 찼던 2002년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당시 TV 속에서 신들린 선방을 보여주던 이운재 골키퍼의 손끝은 어린 소년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중계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한 채, 초록색 잔디 대신 집 안의 푹신한 침대 위에서 연신 몸을 날리며 골문을 지키는 흉내를 내곤 했다. 비록 장소는 침대 위지만 날아오는 공을 막아내겠다는 순수한 열정만큼은 국가대표 못지않은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소년의 발걸음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침대 위를 구르던 그 소년은 훗날 골키퍼 장갑을 벗고, 축구화 끈을 조여 매며 그라운드 전체를 지휘하는 ‘중원의 사령관’으로 성장하게 된다. 자신이 경기장의 최후방이 아닌 가장 치열한 중심부에서 팀의 운명을 설계하는 리더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화려했던 월드컵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무작정 축구공을 쫓기 시작했던 소년 이정근, 그렇게 시작된 그의 축구 인생 이야기를 같이 들어보자.

Q. 축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희 세대는 다 비슷하겠지만, 2002 한일 월드컵이 계기였어요. 4강 스페인전에서 이운재 골키퍼가 PK를 막는 장면을 보고 “나도 골키퍼를 해보고 싶다”라는 꿈이 생겼죠. 집 침대 위에서 다이빙 연습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필드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 싶어요.

Q. 실제로 골키퍼를 해본 적이 있나요?

초등학교 3학년에 축구를 시작했는데, 첫 1년은 실제로 골키퍼 훈련을 받았어요. 그런데 당시 감독님이 “이 선수, 발이 빠른데 필드를 해보면 어떻겠냐”라고 권유해 주셨어요. 그 한마디가 제 포지션을 바꿔놓은 셈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축구는 소년에게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빠른 발 덕분에 골키퍼에서 필드 플레이어로 전향하며 재능을 보였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그에게 축구는 즐거움보다 ‘무거운 책임감’에 가까웠다. 부모님의 헌신을 보며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당시 학생 선수라면 누구나 겪어야 했던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는 축구의 재미를 잃어갔다.

Q. 중고등학교 시절 선수 생활은 어땠나요?

솔직히 그 시절엔 축구 자체가 크게 즐겁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걸 보며 “내가 성공해야 한다”라는 의무감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다 지금 인천 대건고 감독님이신 이성규 감독님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축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를 느꼈어요. 그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겐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또 바르셀로나 경기를 보며 혼자 따라 하고, 스스로 갈고닦던 게 그 시절부터입니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한 명의 스승이었다. 현재 인천 대건고를 이끄는 이성규 감독과의 만남은 이정근의 축구 인생에서 거대한 전환점이 됐다. 단순히 이기기 위한 축구가 아닌, 축구 그 자체의 즐거움을 일깨워 준 스승 덕분에 그는 비로소 그라운드 위에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던 선수는 스스로 생각하는 선수로 변모했다. 당시 전 세계를 매료시켰던 바르셀로나의 유기적인 축구를 보며 밤새 영상을 돌려보고, 혼자 운동장에 나가 그들의 움직임을 몸에 새겼다. 특히 화려한 공격수들 뒤에서 묵묵히 팀의 중심을 잡는 세르히오 부스케츠는 그의 우상이 됐다. 오죽하면 지금까지도 그의 SNS 계정 닉네임이 성(Lee)과 부스케츠를 합친 ‘이스케츠’일 정도다.

Q. 존경하는 감독이 있나요?

이민우 감독님, 그리고 제주 U-18을 맡고 계신 윤대성 감독님이요. 제가 알고 있던 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신 분들입니다. 김병수 감독님도 직접 지도를 받은 적은 없지만 늘 한 번쯤 배워보고 싶었던 분이에요.

# 프로의 냉혹함과 해외 리그의 경험

화려한 조명 뒤에는 언제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프로 선수 중에서도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레전드가 되는 선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2016년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며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냉혹했다.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으로 지내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 하지만 이정근은 무너지지 않았다.

시즌 초반엔 스쿼드에도 들지 못했지만, 후반부엔 기회를 잡으며 12번의 선발 출장과 1번의 교체 출전을 기록했다. 하지만 끝내 다시 부산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축구를 향한 갈증 하나로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부산 아이파크부터 해외리그까지의 경험을 자세히 들어보자.

Q. 프로 무대 첫발을 내디딘 부산 시절,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2016년 일이에요. 명문 학교 출신도 아니었고, 지방 학교를 나온 제가 프로에 들어오니 첫 6개월은 그야말로 투명인간이었습니다.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치열하게 싸우는 곳에서, 저는 그냥 보이지 않는 존재였어요. 내 기회를 언젠가 만들겠다는 생각 하나로, 그 6개월을 뼈를 갈듯 버텼습니다.

그렇게 버티던 와중, 최영준 감독님이 후반기에 기회를 주셨고, 그 기회를 잘 살리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완생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간이 있다면, 저에겐 그 6개월이었습니다.

Q. 부산 이후 해외 리그까지 거쳤는데, 진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부산을 떠난 뒤 국내 재도전을 원했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스스로도 자만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그러다 경기를 복기하려고 직접 편집해둔 영상을 양천 TNT의 외국인 감독들이 보고 싶다고 했고, 그 영상을 본 태국에서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뛸 수 있다면 어디든'이라는 마음으로 무조건 가겠다고 했어요.

Q. 태국 리그, 실제로 뛰어보니 어땠나요?

솔직히 처음엔 “동남아니까 내가 제일 잘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어요. 완전히 틀렸습니다. 초반 3개월은 적응하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폭염과 습도 때문에 탈수 증세까지 왔는데, 하루 네 끼를 먹으며 버텼습니다. 잔디도 일명 ‘떡잔디’라고 환경도 다르고, 선수들도 체구가 작은데 속도가 빨라 고생했었습니다.

또 구단 환경도 엄청 좋았습니다, 전담 피지컬 케어부터 마사지까지 해주시고, 식단부터 프로틴에 수분까지 챙겨주는 세밀함이 있었어요. 3개월이 지나 적응을 마치니 결국 현지 선수들보다 더 잘 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좋은 환경들을 바탕으로, 동남아 축구가 크게 성장하겠다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Q. 해외 생활에서 외로움은 없었나요?

감사하게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라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급여도 나쁘지 않아서 가족들이 방문해 여행처럼 보내기도 했고요. 날씨와 우기 시즌만 빼면, 나중에 태국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 익숙한 안락함을 포기하고 다시 ‘독립구단’을 택한 이유

좋은 대우와 보장된 환경은 달콤하지만, 때로는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한다. 병역 문제라는 현실적인 고민부터 태국과 한국의 훈련 방식 차이까지, 숱한 고비 속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결국 양천 TNT FC였다.

양천 TNT는 200명 넘는 선수들을 상위리그, 프로 무대로 재기시키며 ‘프로선수 양성소’라는 별명을 가진 클럽이다. 현재는 아마추어 리그인 K5 리그에 소속되어 있지만, 라이선스 획득을 준비하며 세미프로 입성을 앞둔 구단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연결고리 역할을 이상적으로 수행하며 2025 KFA 올해의 클럽상을 수상했다.

김태륭 해설위원이 대표이며, 박주영 전 선수 또한 이사이자 공동 대표로 합류하며 구단을 이끈다. 고요한, 신세계 등 은퇴한 K리그 선수들도 스쿼드 멤버로 활약하며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최근 5년간 K5 리그 서울 권역을 4번 우승했으며, 작년엔 K5 챔피언십을 우승하고 더 큰 무대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다.

부산에서 나온 이후에도 축구의 꿈을 잃지 않고 계속하게 해준 양천 TNT로 돌아오게 된 이정근이 화려한 프로 무대와 세미프로의 경계에서 찾은 진짜 ‘축구 인생’의 방향성을 들어보았다.

Q. 예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계시는 양천 TNT FC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 부탁합니다.

저희 양천 TNT는 작년 K5 챔피언십 우승팀으로 내년 2027년 하면서 K4로 진출하는 것과 동시에 이제 30년까지 K3, K2를 넘어 K1까지 올라가는 게 장기적인 플랜입니다.

또 200명이 넘는 선수가 상위 리그에 진출했어요, 재기하는 게 사실 쉽지 않은데, 너무나 대단한 일을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팀은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는 유일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Q. 좋은 환경과 대우를 뒤로하고 다시 양천 TNT로 돌아온 이유는요?

병역 문제가 첫 번째였어요.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선수는 해외 활동에 제약이 많거든요. 김태륭 대표님과 코칭스태프가 “조금 더 뛰어보고 군대를 가는 게 어떻겠냐”라고 먼저 제안해 주셨고, 저도 동의했습니다. 다만 태국과 한국은 훈련 방식의 결이 너무 달라서 적응하는 데 꽤 힘들었어요. 그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것도 양천 TNT의 몫이었습니다.

Q. 프로와 세미프로, 두 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환경입니다. 영국만 해도 3.4부 선수들이 투잡을 병행하는 게 당연한 문화인데, 우리나라는 “선수는 축구만 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아직 강해요”

Q. 양천 TNT와 다른 하부리그의 구단과의 특별한 차이점이 있을까요?

양천 TNT는 그 틀을 깨고 있는 팀입니다. 운동도 하고, 일도 병행하고, 삶 전체의 방향성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이에요.

일단 대표님께서 유럽 시스템과 같은 인식이 너무 뚜렷하십니다. 모두가 알듯이 우리나라는 ‘축구만 한다’라는 인식이 너무 잡혀 있는 것 같아요. 일본도 마찬가지고 이 근방에 있는 아시아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다 투잡, 쓰리잡 병행하는 선수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서 저는 선수로서 시야가 좀 좁아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양천 TNT에 오면서 이러한 시스템이 너무 잘 구축되어 있어서 이 안에서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축구도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엄청난 좋은 이정표가 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정근 선수가 뛰고 있는 양천 TNT FC는 어떤 구단일까,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진다.

콘텐츠 제작='IF 기자단' 7기

인터뷰=김영준, 박현민, 추성우, 홍민혁

장소제공=레코드피자 경의선숲길점

정지훈 기자 rain7@fourfourtw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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