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 웰컴'이라는 표현의 중요성[글로벌 칼럼]

2026. 5. 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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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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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은(왼쪽) 학교법인 건국대학교 이사장이 13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행정관 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건국대 동물병원 헌혈센터 반려견 관련 행사에서 최다 헌혈견 복희에게 생명나눔상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며칠 전, 나는 관습적인 응답 표현의 잠재력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는지에 관한 한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됐다. 그 발표자는 누군가가 감사 인사를 했을 때 “You’re welcome(천만에요)”이라고 답하는 표현이 이제는 금기시되는 말처럼 여겨진다고 소개했다. 그 영상에서는 대신 “It’s my pleasure(기꺼이 한 일입니다)” 혹은 “도와드릴 수 있어서 기뻤어요. 당신도 저를 위해 그렇게 했을 거라는 걸 알아요”라고 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영어 사용에서 이런 새로운 관습은 꽤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나도 인터넷을 조금 찾아 보았고, 1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관련 기사들도 읽었다.

“You’re welcome”이라는 표현이 효용과 가치 면에서 쇠퇴 중인 배경에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는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이 차갑고 중립적이며, “It was my pleasure”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관계를 북돋우는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You’re welcome”은 중립적이고 반사적이며 인위적이거나 심지어 냉담하게 들린다. 또 다른 사람들은 감사의 표현이란 그것을 받는 사람이 상호성을 주장하거나, 혹은 “별말씀을요. 당신도 저를 위해 똑같이 했을 거라는 걸 알아요”라고 말함으로써 관계 속의 에너지를 키우는 기회라고 말한다.

나에게는 세 번째 관점도 떠오른다. 그것은 소셜미디어와 문자 메시지의 시대와 관련된 것이다. 나는 “You’re welcome”이라는 표현을 타이핑하는 길이가 그 사용을 방해한다는 글을 읽었다. 마치 예의가 키보드 입력 수의 자비에 맡겨진 셈이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Thank you(감사합니다)”나 “You’re welcome”이라고 말하는 것은 농담이나 반어, 혹은 비꼼이 개입된 경우를 제외하면, 불성실해서는 안 된다. 두 표현 모두 진실성, 상호 존중, 그리고 감사와 환대의 순간 속 조화를 나타내고 또 함축하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환대(welcomeness)'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 문자와 이메일 중심의 소통이 기계적 반복 속에 평탄화되었기 때문이다. 늘 똑같고, 일상적이며, “빨리 좀 해”와 “됐어” “아무거나” “그런 거지 뭐” 같은 태도로 말이다. 예전에는 감사와 환대의 표현을 이끌어내던 일들이 이제는 실제로는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라면 하는 일” “그냥 하는 말”, 혹은 부탁하지 않아도 “누구나 하는 일” 정도로 여겨진다. 우리는 환대라는 언어적 표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바꾸어 버렸고, 많은 사람은 관계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환대의 표현을 ‘관계 속 선의(goodwill)’를 두 배로 강화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한 기회로 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감사의 표현에 대한 응답이든, 혹은 감사를 불러온 행동에 대한 것이든 상관없다. 나는 “You’re welcome”이라고 말하는 것이 “Thank you”라고 말하는 것보다 덜 진정성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감사와 환대의 맥락을 만들어내는 사람, 혹은 관계 속의 사람들이라면, 그 순간이 담고 있는 것 이상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전의 순간들이나 이후의 순간들이 있다면, 그것들 역시 비슷한 상호 감정을 포함하길 바랄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또 다른 순간들일 뿐이며, 현재의 순간이 그것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적 맥락에서 나는 “감사합니다”와 그 변형 표현들은 자주 듣지만 “천만에요”는 훨씬 덜 듣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관련 자료들을 읽어보니, 내 관찰이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많은 한국인 역시 “You’re welcome”에 해당하는 표현을 다소 구식으로 여기는 듯하다. 당신은 “아니에요” “괜찮아요” 혹은 “별말씀을요” 가운데 어떤 표현을 듣는 것을 더 선호하는가?

그것은 손실이다. 사람들은 주고받음의 평등함을 보여주는 대화를, 주목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혹은 힘과 잠재력을 가지려면 더 확장되어야 하는 무언가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실수다.

우리는 각각의 감사와 환대의 순간이 지닌 가치, 그 순간이 무엇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입증하는지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해야 한다. 힘과 영향력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그것은 이득이 아니라 인간성의 상실이다. 감사와 환대의 순간들을 또 다른 기회로 전환해 버리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훨씬 더 차가운 일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환대를 표현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기대된 일을 했다는 사실이나 상호성을 추구하는 기회 이상이어야 한다면, 인간의 언어와 행동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적절히 감사를 전달하는 태도는 환대의 표현과 정확히 맞물린다.

“You’re welcome”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감사의 표현을 하는 사람들 위에 자신을 놓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감사 표현을 단지 무언가를 얻고 보답을 받아내기 위한 기회로만 사용하려는 대중영합적 태도를 가진 것일 수도 있다. 선행은 그 자체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 아니었던가? “You’re welcome”은 반사적이거나 진부한 관용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중심주의와 권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키우게 되는데, 그것은 반민주적이며 허세에 가깝다. 반민주적이고 허세 어린 행동은 오늘날 세상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는 점점 빈곤해지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왕이 아니며, 대부분의 사회는 오래전에 왕을 상징적 존재로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와 환대 속에 담긴 언어의 민주적 가능성을 부정함으로써, 군주적 정신을 오히려 민주화해 버린 것은 아닐까?

버나드 로언 시카고주립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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