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고점 논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계속 봐야 하는 이유

권순우 기자 2026. 5. 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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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수요 폭증이 메모리 산업의 기존 사이클을 흔들고 있다. 김장열 유니스토리자산운용 본부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이미 크게 올랐음에도 밸류에이션 관점에서는 여전히 과열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핵심은 HBM만이 아니다. AI 모델 고도화와 에이전트 AI 확산이 토큰 생성량과 메모리 사용량을 폭발적으로 늘리면서 메모리 쇼티지가 이제부터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장열 유니스토리자산운용 본부장이 짚은 최근 반도체 장세의 본질은 이익 전망의 급격한 상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1년 동안 시장의 중심에 섰다. 특히 SK하이닉스는 HBM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가총액이 폭발적으로 커졌고 삼성전자도 뒤늦게 반도체 리레이팅 기대에 합류했다. 그러나 김 본부장은 주가가 올랐다는 사실만 보고 고점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봤다. 주가보다 더 빠르게 이익 전망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둘러싼 가장 큰 논쟁은 사이클이 사라졌느냐는 질문이다. 김 본부장은 사이클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주장에는 선을 그었다. 다만 과거의 메모리 사이클과 지금의 사이클은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메모리 산업은 2년 정도 좋아지고 2년 정도 꺾이는 패턴이 반복됐다. 수요가 좋아지면 공급 투자가 늘고 공급 과잉이 오면 가격이 무너지는 구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AI 수요가 워낙 빠르게 커지고 있고 공급 증설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짧은 사이클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진짜 판단은 앞으로 2년가량 더 지켜봐야 한다고 봤다. 올해와 내년의 이익 전망이 실제로 확인되고 메모리 가격 상승과 쇼티지가 유지된다면 그때는 과거 사이클과 다른 구조라는 판단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중요한 것은 이 판단이 완전히 확인된 뒤에는 이미 주가가 상당 부분 움직였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투자자는 확인된 숫자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 구조가 왜 달라졌는지 공부해야 한다.

그가 강조한 첫 번째 포인트는 밸류에이션이다. SK하이닉스는 주가가 크게 올랐지만 컨센서스 기준 이익 전망을 감안하면 과거 고점과 같은 과열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과거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사이클 특성 때문에 낮은 PER을 적용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마이크론도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고 있고 글로벌 투자자들이 메모리 업체를 과거보다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가 과거보다 높은 배수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열리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오히려 덜 오른 쪽에 가깝다고 봤다. 과거에는 삼성전자가 더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SK하이닉스보다 높은 배수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하이닉스가 HBM을 앞세워 빠르게 올라오면서 두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붙어버렸다. 이는 하이닉스가 과하게 올랐다기보다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눌려 있었다는 해석이다.

삼성전자의 단기 변수는 노조와 파업 이슈다. 협상 결렬 우려가 주가 변동성을 키웠고 장중 낙폭도 컸다. 그러나 김 본부장은 이 문제가 본질적 펀더멘털을 바꾸는 변수는 아니라고 봤다. 정부가 조정 의지를 보이고 있고 반도체 생산 차질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면 삼성전자는 다시 이익 전망과 밸류에이션 논리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파운드리와 CPU 관련 이슈가 있지만 메모리 업황 자체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계속 뒤처질 이유도 크지 않다고 봤다.

김 본부장이 설명한 AI 수요의 핵심은 토큰과 메모리다. AI는 질문과 답변을 처리할 때 토큰을 생성한다. 토큰은 단어와 의미 단위에 가까운 데이터 조각이다.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하나의 토큰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메모리 용량이 커진다. 과거 GPT 3 수준에서 필요했던 메모리와 앞으로의 모델에서 필요한 메모리는 다르다. 모델이 커지고 사고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메모리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여기에 에이전트 AI가 붙으면 수요는 더 커진다. 지금까지는 사용자가 AI에게 한 번 질문하고 답을 받는 형태였다. 그러나 에이전트 AI는 여러 개의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일을 수행한다. 한 사람이 다섯 개의 에이전트를 동시에 돌릴 수도 있고 열 개나 스무 개를 돌릴 수도 있다. 각각의 에이전트는 다시 여러 차례 루프를 돌며 작업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토큰 생성량과 메모리 사용량은 급증한다. 김 본부장은 반도체 수요를 예측하려면 단순히 데이터센터 숫자만 볼 것이 아니라 에이전트 수와 루프 수와 모델 고도화를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이 최종 수요를 직접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AI 모델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것은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기업들이다. 이들이 어떤 모델을 만들고 얼마나 많은 토큰을 생성하고 에이전트 구조를 어떻게 확장할지에 따라 메모리 수요가 결정된다. 메모리 업체는 그 수요의 하단에 있는 공급자다. 그래서 메모리 업체의 밸류에이션이 낮게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도 수요 예측 주도권을 직접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변화는 있다. 오픈AI와 앤트로픽 같은 AI 모델 기업들이 상장을 준비하거나 자본시장의 감시를 받게 되면 관련 데이터가 지금보다 더 많이 공개될 수 있다. 그러면 투자자들은 AI 서비스 사용량과 토큰 생성량과 메모리 수요 사이의 관계를 더 정교하게 추정할 수 있다. 김 본부장은 시간이 갈수록 이 예측력이 높아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메모리 기업의 밸류에이션도 다시 평가될 수 있다고 봤다.
김장열 유니스토리자산운용 본부장 

장기 공급 계약도 중요한 변화다. 과거에도 장기 계약은 있었지만 법적 구속력이 강하지 않았고 수요가 꺾이면 계약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데이터센터 고객들이 1년 단위가 아니라 3년 이상 물량을 확보하려 하고 시가가 내려가도 일정 프리미엄을 붙여주는 방식의 계약이 거론되고 있다. 선수금을 지급하거나 특정 생산 라인에 필요한 장비 투자 비용을 고객이 일부 부담하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구조가 확산되면 메모리 산업의 변동성은 줄어들 수 있다. 과거에는 가격이 떨어지면 고객이 주문을 미루고 메모리 업체는 재고를 떠안았다. 그러나 장기 계약과 선수금과 고객 참여형 투자가 확대되면 공급자 입장에서 수요 가시성이 높아진다. 이는 메모리 산업이 과거와 다른 밸류에이션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김 본부장이 말하는 리레이팅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김장열 본부장은 야구에 비유해 지금을 3회에 도달했는지조차 아직 논쟁적인 단계로 봤다. 에이전트 AI가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AI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사람들이 여러 개의 AI 비서를 동시에 쓰는 단계가 오면 4회나 5회에 해당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피지컬 AI와 온디바이스 AI와 자율주행이 본격화된다. 이 단계까지 가면 AI 수요는 또 다른 국면으로 넘어간다.

결국 반도체 주가의 핵심은 단기 조정이 아니라 수요의 방향이다. 미국 반도체 지수가 빠지고 마이크론이 급락하더라도 장중 낙폭을 상당 부분 회복한 것은 펀더멘털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한국 시장에서도 전약후강 흐름이 나타났다. 개인 자금과 기관을 통한 개인 자금이 강하게 들어오면서 매물 압력을 받아냈다.

그럼에도 투자자는 추격 매수와 공포 매도를 모두 경계해야 한다. 김 본부장은 반도체를 공부한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의 차이는 조정장에서 드러난다고 봤다. 펀더멘털을 이해한 투자자는 급락 시 분할 매수할 수 있지만 공부하지 않은 투자자는 공포에 매도하거나 급등 시 포모에 휩쓸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기 가격이 아니라 왜 메모리 수요가 늘고 왜 공급이 부족하며 왜 장기 계약이 늘어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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