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시대, 달라져야 할 科技 기본계획 [이민형의 과학기술 혁신 짚어보기]

서경IN 2026. 5. 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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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
과학기술 기본계획 변화 필요성을 묘사한 AI 이미지.

세계는 지금 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반도체·배터리·바이오·양자기술 등 인공지능과 연계된 전략기술은 국가안보와 경제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은 더 이상 특정 산업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시스템 간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자국 우선주의까지 확산되면서 공급망과 기술동맹, 연구개발과 산업정책, 과학기술과 안보전략이 하나로 연결된 국가 간 전략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주요 선진국들이 발표하는 과학기술 혁신계획에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생존 전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국은 제15차 경제사회발전계획(2026~2030)을 통해 첨단분야의 기술 자립을 바탕으로 첨단제조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통합추진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제7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26~2030)에서 과학기술을 국력의 원천으로 천명하며 국가안보와 전략적 이익 확보를 위한 전략적 자율성 강화를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곧 제6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과학기술기본계획은 과학기술경쟁력 제고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 기반 확대와 전략기술 육성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기술패권 시대의 생존 경쟁은 공급망 확보, 경제안보와 연결되어 단순한 연구개발 투자 전략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 과학기술기본계획은 단순한 연구개발 투자계획을 넘어 국가혁신체계를 재설계하는 수준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우선,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한국의 전략적 역할에 대한 방향과 세부 전략들을 제시하는 지도가 필요하다. 기존 과학기술기본계획의 가장 큰 한계는 국가 과학기술 혁신전략의 방향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못한 점이다. 그동안 정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을 강조해 왔지만, 진정한 선도자는 단순한 기술확보 속도가 아니라 핵심기술이 국가 생존과 국제질서 속에서 어떤 ‘지렛대’가 될 것인지를 설계하는 능력에서 결정된다. 전략의 선명성이 부족하면 기본계획은 화려한 키워드와 기존 정책들을 연결해 모아놓은 백화점식 나열에 그칠 수 있다

둘째, 구호에 그치고 있는 임무중심 혁신정책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특히 전략기술 확보와 시회문제해결 사이의 정책임무 혼선을 정리해 주는 명확한 목표설계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기술패권 경쟁은 기술 자체보다 기술에 기반한 시장 지배력과 산업 경쟁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술확보 중심 접근에서 시장과 산업의 혁신가치 창출을 강조하는 혁신성과 중심의 임무중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략기술 확보-혁신성장 견인-사회문제 해결로 정책관계를 정립하고 단순히 신기술 확보가 아닌 관련 산업과 시장목표 달성이 주된 임무로 제시되는 임무중심 혁신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연구개발 투자와 정책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신산업혁명 시대의 재정수요 급증에 대응해 연구개발투자 확대 기조와 함께 투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시스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AI 혁명에 의한 경제사회 구조 변화와 기술패권 경쟁 심화로 연구개발 투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재원과 투자 방식의 다양화 등 투자 시스템 혁신이 필요하다. 아울러 투자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정책 시스템 혁신도 중요하다. 특히 세부과제 중심 및 단기성과 중심 구조를 개편하고, 직관이나 유행하는 키워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데이터와 분석에 기반한 ‘증거 기반 정책(Evidence-based Policy)’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넷째, 연구 생태계의 건전성과 질적 고도화가 중요하다. 지금과 같이 성공가능성이 높은 안전한 과제에 매몰되도록 하는 연구관리제도는 연구생태계를 관료화시킨다. 실패가 미래 연구와 혁신을 위한 자산으로 축적되는 고위험-고수익(High-risk, High-return) 연구가 실질적으로 가능하도록 연구제도와 문화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출연연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주체들이 역할과 임무, 자율, 책임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건강한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섯째, 거버넌스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정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거버넌스 체계의 안정성이 중요하지만 급변하는 혁신 환경에서 생존력을 높이려면 거버넌스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상위 전략기구의 전략 역량과 기능을 정비하고, 기술정책·산업정책·기반정책 간 연계를 위한 부처간 실질적인 정책통합이 필요하다, 또한 중복적이고 비효율적인 관리조직을 개편하고 다양한 연구 및 혁신주체들 간의 협력과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가 혁신의 전략적 역량과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제6차 과학기술 기본계획은 단순한 연구개발 계획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패권시대에 국가의 산업·안보·혁신 전략을 통합하는 국가운영체계가 되어야 한다. 기술패권 시대의 국가 생존은 국가 혁신 전략목표를 중심으로 연구개발과 산업, 인재와 시장을 연결하는 실행체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화려한 구호 이면에 자리 잡은 전략의 부재와 시스템 혁신의 부진은 앞으로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민형의 과학기술혁신 짚어보기

서경IN sk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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