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대신 철도
1. 국무총리 주재의 제2공항 대토론회
크든 작든 어느 사회나 항상 사이좋게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제주사회도 그렇다. 웬만하면 대강 합의가 가능하다 싶은데도 그렇지 않다. 더욱이 제주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주로 정부의 사업 추진과 연관되는 공공갈등이라, 이를 바라보는 심사가 편치 않다. 탑동매립, 해군기지, 제2공항 다 대표적인 제주사회의 공공갈등이다.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 진행 중인 대표적 공공갈등이다. 앞으로도 가치간의 차이, 상호 이해 부족, 이해관계의 교차, 당파적 고집으로 인해 계속 갈등을 안고 살아가야 하나. 안타깝기 그지없다.
갈등의 미학이라는 견지도 있다. 갈등을 가두려고 하거나 회피하려 말고 드러내고 조정하고, 또 혹 가능하다면 창조적 에너지로 적극 활용해 보자는 내용이다. 공항 대신에 철도를 주창하는 이 글은 갈등의 전환을 의도하고 있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게 아니라 갈등의 내용을 바꾸어보자는 것이다. 제주 미래찾기의 일환으로. 이 글이 공항과 철도에 대한 생각을 점검하고 정리하는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26년 현재 가장 의견이 분분한 게 제2공항과 해저철도라면, 이에 대해 하나하나 차분하게 짚어가는 것도 나름 소용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제2공항과 해저철도는 인프라다. 둘 다 섬 제주와 반도 육지를 잇는 이른바 연륙 교통운송 인프라로서 나름 유용성이 있다. 다만 건설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공항과 철도를 둘 다 건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공항을 하나 더 짓자는 일방통행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2026년 현 시점에서 공항이든 철도든 꼭 하나를 건설해야 할 긴급함이 있는가에 의견을 같이하기도 어렵다. 제주의 관광 수용능력을 고려할 때 관광객 1500만에 추가로 1000만~1500만 되는 관광객이 제주로 오는 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 회의적이라 그렇다.
성산에 제2공항이 들어선다고 하여 과연 관광객이 기대한 만큼 크게 늘어날 지는 미지수다. 미지수의 미래를 담보로 하여 제2공항을 운운하는 진짜 이유가 무얼까. 그게 궁금하다. 공항이 하나 더 생기면 도합 3000만 관광객이 제주를 찾아오리라고 상당한 근거를 갖고 책임감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3000만 관광객이 들어온다고 치자. 근데 그게 제주도와 제주도민에게 좋은 걸까. 관광객 3000만이 되는 외부의존형 제주경제의 앞날이 과연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서 좀 더 심도 있는 검토를 요한다, 무작정 공항 하나 더 만들자고 외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일관되게 제2공항을 찬성하고 있다. 서귀포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고기철 후보의 제2공항 건설 특별법은 그 일관성의 압권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제2공항은 특히 성산쪽 유권자 동원의 한 캐치프레이즈가 되고 있다. 김성범 후보의 제2공항 찬성 입장에서 보듯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다만 고기철 후보의 경우 임기 2년 의원이 제2공항 특별법을 만드는 게 가능할 지는 의문이 많다. 특정의 지역개발 프로젝트를 위해서 특별법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국민의힘의 선거용 정책은 막무가내식 정치적 술수라는 비판을 받기 딱이다. 정치에서는 일관성만이 덕목이 아니다. 유연성도 그 못지않게 요구된다. 지난 10년간 제2공항을 외치기만 했을 뿐 국민의힘이 70만 제주도민에게 설득력 있게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정책토론회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제2공항을 황금알 낳은 거위처럼 신주 모시듯 하는 데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2026년 현재는 민주당 이재명 정부의 입장이 중요한데, 여전히 민주당의 어정쩡은 그대로이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도 제2공항 추진 여부를 도민 합의로 넘기고는 팔장을 낀 채 시간만 축내고 있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10년이 지나가는데도 아직도 주민합의나 주민의견 존중만 읊조리고 있다. 집권당으로서의 책무감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제2공항 추진 여부를 주민투표로 묻자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진보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문대림 의원도 주민투표를 통한 해법 찾기를 주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토부가 제2공항 주민투표 요구 관련, 차기 제주도정이 공식 요청하면 '적극 검토'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무얼 하다가 이제 와서 주민투표 운운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국토부의 역량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실망이 크다.
더욱이 주민투표 요구에 대한 국토부의 답변이 얼마나 유효한지도 의구심이 많다. 늦었다 할 때가 빠르다는 심정으로 주민투표를 통해 제2공항 해법 찾기에 나서고자 했다면, 지난 3월 이재명 대통령이 배석한 제주 타운홀미팅에서 주민투표를 통한 해법 찾기를 제안해야 했다. 제주 타운홀미팅에서 제2공항을 책임지고 있는 국토부는 자리에 없었다. 비겁하거나 무능하던가 둘 중 하나다.
그래서 제안하고자 한다. 이참에 제2공항 이슈에서 국토부는 손을 떼고 국무총리실이 맡기로 하자. 주민투표 운운하는 부처에게 제2공항이라는 중차대한 국책사업을 맡길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제2공항 같은 국책사업은 추진하든가 그만두든가, 아님 재조정하든가 대안을 찾든가 하는 게 맞지, 주민투표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시 직접 제주로 와서 해법을 제시하기가 어렵다면, 제주에서 김민석 총리 주재 하에 제2공항 추진 관련 대토론회를 갖자. 국토부장관, 환경부장관, 제주도지사는 물론이고 제주도 국회의원, 도의회 의장, 국민의힘 대표, 민주당 대표 그리고 제2공항 찬반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을 총망라, 찬반 포함 다양한 견해를 통해 제주미래 찾기를 해 보자는 것이다. 이게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니지 않은가.

2. 제주해저터널: 제주~추자~완도(또는 보길도)
제주~목포 해저철도도 '오래된 미래'의 하나이다. 2007년 김태환 제주지사와 박준영 전남지사의 공동건의문에서 제안된 지 어느덧 20년이 되고 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성산 제2공항 구상이 발표되면서 제주도 정치권은 제2공항에 올인하여 왔다. 물론 국민의힘과 민주당 간에 온도 차이는 있다. 그 와중에 제주 시민사회도 찬반으로 입장이 나뉘면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간 어떻게 공항 찬반에만 매달려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해저철도와 같은 대안은 공항 찬반의 양극화된 여론전에 밀려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제주~목포 해저철도는 무시되거나 억눌려왔다. 제주에서는 그 흔한 토론회마저 개최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에 비해 전라남도는 꾸준히 목포-제주 해저철도 관련 정책 토론을 벌여오고 있다. 제주를 끌어들여 목포~제주 해저철도라는 대구상이 들어서야 전남지역 철도망 구축이 수월하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을 터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제주에서는 해저철도로 득을 보는 건 호남이고 제주는 들러리라는 인식이 통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해저철도로 인한 제주의 이득과 손실이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제주도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광역단체인 제주도가 기초자치단체인 제주~추자~완도(또는 보길도) 구간에 해저터널을 설치하는 것이라, 앞으로는 제주해저터널로 명칭도 바꿔야 한다.
박근혜-윤석열 정부에서뿐만 아니라 문재인-이재명 정부에서도 제주 보수정치권과 관광경제 관련업자에게 성산 제2공항은 국책사업으로서 무조건 추진해야 할 사안으로 자리했다. 여기서 해저철도는 사실상 금기사항이다. 시민사회의 공항 반대 입장을 무시하기가 어려운 제주 진보정치권은 공항 문제에 대해 주민합의라는 어정쩡한 입장으로 피해 나가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괜스레 해저철도라는 대안을 꺼내어 분란을 일으킬 정치적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어서다. 말만 진보지 보수와 다름없는 행보였다. 제주 미래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의 담대한 구상이나 정책 아젠다 없이, 그렇게 진보 정치권도 제2공항 찬반에 매몰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제주해저터널 없이 광주~목포~제주 해저철도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제주가 주도권을 가져가야 할 국책사업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지난 제주 타운홀미팅 때 이재명 대통령은 일단 제주해저터널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섬 정체성'이 그 이유다. 실망스러웠다. 해저터널이 섬 정체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인식으로 제주를 바라보면, 더 이상 제주의 미래가 없을 것이기에 그렇다. 섬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설마 제주와 육지를 잇는 해저터널이 생긴다고 해서 제주가 섬으로서의 표상이 상실된다는 건 아닐 테고. 해저터널이 생기면 제주의 고유한 생태적·문화적 고유성이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는 걸까. 과다한 관광개발은 제주 섬 특유의 생태계와 정주 및 생활환경 여건을 크게 훼손시킬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그래서 공항이든 철도든 더 이상의 개발은 멈추자는 견해도 꽤나 설득력이 있다. 실제 국제자유도시, 제2공항, 해저터널 모두 일정 부분 제주의 생태·문화적 특성을 손상시킬 위험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제주미래 찾기에서 막연하게 섬 정체성 운운하면서 해저철도에 대해서만 큰 우려를 표하는 건, 균형 감각에서 벗어난다고 볼 것이다.
돌이켜 보면, 2022년 이재명 후보 시절 제주~목포 해저터널이 적극 검토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민주당 제주도당의 송재호-오영훈-위성곤 모두 반대를 했다. 당시에는 제주~서울 고속철도 추진이 김포공항 이전이라는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과 연동되면서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탓이 컸다. 그런 사정을 거치면서 해저철도는 다시 한번 또 정치권에서 사라지게 됐다. 제주~목포 해저철도가 왜 김포공항 이전과 엮어지게 되었는지 그 연유는 잘 모르겠지만, 공항과 철도의 선택지를 놓고 친환경의 철도를 우선하였던 게 아닌가 추론을 할 뿐이다.
2026년 다시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해저철도를 화두로 끄집어내면서 기대를 갖게 된 이유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제주공약 가운데 2035년까지 제주를 '탄소중립 선도도시'로 만들겠다는 데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저탄소는 공항보다 철도가 더 격에 맞는다. 제주의 탄소중립 추진에서도 저탄소 에너지인 풍력과 햇볕 외에 교통운송의 저탄소 수단으로서 수소전기열차인 철도와 트램을 떠올리게 되는 건 자연스런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철도와 트램은 항공이나 자동차에 비해 탄소 배출이 확연히 낮기에 기후위기 시대의 교통운송 인프라로 널리 각광받고 있다. 해저철도든 트램이든 철로 건설의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의 비용이 문제일 뿐이다.
<제주미래 찾기 1탄: 제주도일주 트램>에서 제주도에 저탄소 트램을 제안한 바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해 자동차를 타지 않고도 제주도 내 읍면동 전역을 오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해저철도는 비행기 대신 고속전철을 통해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교통운송 수단으로 적합성을 갖는다. 도일주 트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해저터널의 경우도 15조에 달하는 재원이 문제다. 그런데 다행히도 제주에는 제2공항 건설 예정 재원으로 5조원이 넘게 책정되어 있다. 광주·전남에는 통합특별시 출범으로 받게 될 20조원이 있는데, 이 가운데 일부를 쓰는 방법도 있다.
제주~목포 해저철도 추진을 전남이 줄기차게 애쓰는 걸 보면, 해저철도로 전남이 큰 이득을 보는 건 맞아 보인다. 그렇기에 전남·광주가 돈을 더 내는 건 인지상정이다. 제주도의 경우도 성산지역의 땅을 공항으로 묶이지 않으면서 제주를 오가는 교통운송 수단으로 철도를 갖추게 되는 것이라 큰 불만이 없을 게다. 그런데도 제주는 왜 해저터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가. 성산지역에 들어 오리라 예상되었던 제2공항 부지를 어떻게 미래지향적으로 활용해 나갈 것인가의 지혜 모음으로 다르게 가보자. 이와 관련 <제주 미래찾기 9탄: 성산AI관광타운>을 통해 성산지역의 천지개벽을 기대한 바 있다.
3. 제주해저터널의 현황과 이점
제주를 제주답게. 섬 정체성. 이재명 대통령의 이 두 마디로 해저철도는 기지개 펴볼까 하다가 다시 수면 아래로 들어가 버린 듯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굳이 여기서 해저터널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공항보다는 철도가 다방면에 걸쳐 낫다는 판단이다. 특히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 시대에 제주와 육지를 잇는 교통운송 수단으로 공항 하나 더 짓는 건 좀 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당연히 해저철도로 제주를 오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줄을 선다고 그리 기뻐할 일도 아니다. 제주 사람들이 돈은 조금 더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활환경은 악화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약 도민 다수가 무언가 교통운송 인프라를 하나 더 마련할 요량이라면, 성산 제2공항보다는 제주~추자~목포를 잇는 해저철도가 탄소중립 가치와 미래비전에 더 부합하다는 것을 재삼재사 강조하고자 한다. 그래서 혹 언제 다시 해저철도 논의가 나올 미래를 위해서 여기서는 해저철도의 현황과 이점을 요약·정리해 두고자 한다. 제주미래 찾기에서 성산 제2공항과 제주~광주~대전~서울로 이어지는 제주~서울 KTX 중 어느 게 더 제주도민에게 유익한지를 비교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당연히 이 가운데 해저철도 구간은 제주~추자~완도(또는 보길도)이다.
1) 해저철도의 가장 큰 이점은 편의성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바 항공에 비해 철도의 가장 큰 이점은 전천후라는 점이다. 갑작스런 기후 변화에 구애받지 않음은 물론이고 안개나 폭풍우 등이 불어닥쳐도 당일로 제주를 오갈 수 있다. 제주에 왔다가 또는 제주로 오려다 기상 악화로 인해 발이 묶이고 일정이 꼬였던 경험을 누구나 한 번씩은 해 보았을 것이다. 성산에 공항 하나 더 짓는다고 이와 같은 난감을 해소해 줄 것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제2공항만 쳐다보지 말고 이런저런 불편을 덜어줄 해저철도에 대해서도 눈길을 주자는 것이다.
2) 해저철도의 또 하나의 이점은 물류 경제성이다. 항공은 사람을 오가게 하는 편의성에서는 나름 괜찮은 인프라다. 그러나 물류로 들어가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철도는 24시간 운송이 가능한 만큼 밤늦게도 제주와 육지를 오가면서 다음날 오전이면 목표지에까지 상품 수송이 가능하다. 항공에 비해 더 많은 양의 상품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이 점에서 철도는 제주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물류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는 인프라로 부족함이 없다. 제주산 광어와 친환경 농작물, 흑돼지 등이 냉동하지 않고도 다음 날이면 경향 각지의 식당과 소매점에 제주산 식재료가 놓여있는 광경을 떠올려보자.
해저철도의 경제적 효과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보고가 있다. 43조(제주 13조)의 경제적 효과와 33만명(제주 10만) 고용효과가 그것이다. 다분히 장밋빛 보고 같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해저철도를 통해 제주~서울 사이의 9개 광역단체 주민들에게 교통 및 물류 편익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목포~완도(보길도)~추자도~제주도를 잇는 남서부 해양관광권이 크게 활기를 띨 전망이다. 이 점에서 향후 호남선은 경부선에 이은 경제선(서울-제주)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도 싶다.
3) 제주~서울 이동 시간이라는 측면에서는 철도가 항공보다 더 빠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더 소요되는 건 아니다. 제주에서 서울역까지를 예를 들면, 비행기로는 정상적 출·도착일 경우 3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갑작스런 기상 변화, 예기치 않은 공항 사정과 기체 상황 등의 이유로 평균 30분 정도의 지연 출·도착은 늘상이다. 이에 비해 철도는 정시 출·도착이다. 티켓 예매만 되어 있으면, 10분 전에 도착해 지정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정확히 3시간30분 후에 서울역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해 낼 수 있다.
더욱이 항공에 비해 철도는 짐을 맡기고 검사를 받는 번거로움이 없다. 당연히 외투를 벗어서 혹시나 하는 스크린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다. 만약 해저에서도 휴대폰이 작동되기만 한다면, 기차를 타고 가면서 비즈니스와 오락 등 다양하게 시간 활용도 가능하다. 영국~프랑스 간 도버해협 해저철도를 타 본 경험을 떠올려보면, 철도는 비행기보다 훨씬 몸 컨디션을 편하게 해 준다. 독서하는데 무리가 없다. 간단한 음료와 음식을 섭취하는 데 있어 철도의 편리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큰소리로 떠들지만 않는다면 일행과 함께 마주 보면서 오손도손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해저터널 이외의 구간에서는 주마간산 격이기는 하지만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대한민국의 아름답고 정겨운 산야를 눈에 담을 수도 있다.
4) 제주~완도(또는 보길도)를 잇는 제주해저터널의 총 길이는 73㎞다. 이는 유명한 도버 해저터널의 2배이지만, 한일(부산~후쿠오까 또는 시노모세끼) 해저터널이나 중국 다롄~옌타이 해저터널의 반이 조금 안 된다. 기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중국 다롄~옌타이 해저철도의 경우 건설비용을 40조원 내외로 예상하고 있다. 해저 공사라 건설비가 많이 드는 게 흠이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력으로 감당이 가능하다. 전남도의 용역에 따르면, 해저고속철도 건설 비용은 16년간 16조원이지만, 쉴드 TBM(터널보링머신) 공법과 하이퍼루프 진공열차기술(HTT) 등을 활용하면 건설비가 8조원 절감 가능하다고 한다.
해저터널 공사에서 로봇과 드론을 활용하면 안전 뿐만 아니라 정교함과 신속함을 통해 비용 절감과 공기 단축이 충분히 가능하다. 24시간 일하는 로봇 활용의 성공적 경험을 통해 우리의 토목기술이 향후 다른 나라의 해저터널 공사를 수주하는 데도 도움이 될 터다. 그런 점에서 해저터널 공사는 일종의 기술 투자이기도 하다. 제주해저터널 사전타당성조사에서도 0.894로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의 국민투자펀드 150조 중의 10%인 15조를 여기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요는 제주도민의 선택이고 이재명 정부의 결심이다.
5) 길이 생기면 생기면 사람이 오가고 사람이 많이 오가면 번영은 뒤따라 온다. 역세권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제주~서울 KTX(이하 경제선)는 단순히 목포~제주를 잇는 제주해저터널을 넘어 제주가 동북아의 거대한 철도망에 편입되는 세계화 인프라다. 경제선은 동북아~한반도~대한민국~지방(제주)라는 4층 구조에서 제주도의 위상과 역할을 한 단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터다. 인천 영종도에 항공 허브를 빼앗겼지만, 대신 제주도가 경제선을 통해 항차 북한을 거쳐 중국과 시베리아로 이어지는 거대한 연결망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날 몽골의 대일본 침공 기지였고, 근대사에서는 일본의 대중국 전진기지이자 대미항전기지였던 제주도가 경제선을 통해 교류협력의 평화길 한축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상품·자본이 자유롭게 오가는 제주국제자유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제주해저터널이라는 미래형 인프라의 한 자락이 바로 제주~추자 해저터널이다. <제주 미래찾기 4편>에서 추자도의 천지개벽을 제안한 바 있다. 추자~완도(보길도) 해저터널은 2단계로 일단 미루어놓기로 하자. 전남은 목포에서 완도(또는 보길도)까지 철도를 놓으라. 그리고 제주는 추자까지 해저터널을 놓기로 하고, 당장은 트램으로 제주~추자를 오가도록 하자. 한때 주민이 5000명이던 추자가 지금은 1500명밖에 안 된다. 제주도정이 추자도, 우도, 마라도, 가파도, 비양도 등 주변 도서를 발전시켜 나가는 일련의 노력 속에서 예기치 않게 제주의 또 다른 미래가 펼쳐질 지도 모른다. 그 시작은 길을 내는 것이다. 기존의 하늘길과 바닷길 말고도 해저길의 유용성에도 눈을 돌려보자. / 양길현 전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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