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회계장부 보던 협회 직원, 코트에서는 개나리부 챔피언
- 지난해 협회 입사 1년 만에 생활체육 무대 정상
- ‘빨간 모자’ 쓰고 파트너 김민주와 세 번째 호흡…4강 위기 넘고 우승
- “협회는 테니스와 함께하는 일터, 국화부(최고 등급) 우승이 다음 목표”

대한테니스협회에서 회계업무를 맡는 직원이 퇴근 후 라켓을 잡고 생활체육 테니스 대회 정상에 섰습니다. 최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장에서 끝난 KATA 서울컵 개나리부에서 우승한 협회 인사 회계팀 김유리 주임(34)이 그 주인공입니다.
테니스 구력이 만 5년이라는 김 주임은 레슨을 일주일에 한 번 받고, 퇴근 후에는 일주일에 3~4차례 코트에 나가 라켓을 휘두릅니다. 협회 직원이면서 동시에 생활체육 현장의 열기 속에 직접 뛰는 열성 동호인입니다. 이번에 우승의 기쁨을 맛본 테니스코트는 바로 그의 직장인 대한테니스협회가 입주한 센터코트와 길 하나를 두고 붙어 있습니다.
김 주임이 대한테니스협회에 입사한 것은 지난해 5월입니다. 공교롭게도 테니스 대회 출전이 입사의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KATO 대회 개나리부에서 우승한 뒤 국화부 대회를 찾아보려고 대한테니스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채용공고를 보게 됐다. 마침, 조건이 맞아 지원했는데 운 좋게 입사하게 됐다"라며 웃었습니다.
스포츠 행정에 관한 관심도 오래됐습니다. 김 주임은 대학과 대학원 모두 체육을 전공했습니다. 다만 학창 시절에는 테니스를 가까이 접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젊을 때 시작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라고 했습니다.
본격적인 테니스 입문은 2021년 4월 무렵입니다. 당시 강원 화천에서 직장 생활하던 그는 남편과 함께 퇴근 후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테니스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골프도 함께 배웠지만 마음은 곧 테니스로 기울었습니다. 김 주임은 "골프보다 테니스가 더 재미있고 운동하는 느낌이 컸다. 남편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테니스를 치며 만난 인연들도 좋아 꾸준히 하게 됐다"라고 했습니다.

협회 생활은 김 주임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지난해 주원홍 회장 부임 후 대한테니스협회 내부에는 직원들이 함께하는 자체 토너먼트와 친선 경기 문화가 생겼습니다. 그는 "정말 테니스와 함께하는 일터라는 느낌이 든다. 업무를 하는 데도 만족감을 많이 느낀다"라고 했습니다.
김 주임을 비롯한 협회 직원들은 박용국 전 농협은행 테니스부 감독이자 전 스포츠 단장이 운영하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설 코트에서 월 1회 정도 친선 대회를 갖고 있습니다. 함께 운동하며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가까워지는 점도 장점입니다. 김 주임은 "협회 분위기가 더 활기차지고 업무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를 딴 윤용일 협회 미래 국가대표 전임 감독과의 만남도 기억에 남습니다. 윤 감독은 협회 내부 친선 경기에 방문해 직원들과 함께 게임하고 레슨도 해줬습니다. 김 주임은 "부족한 부분을 말씀해 주셔서 도움이 됐다. 협회 직원으로서 자부심도 느꼈고, 실제 게임 운영을 보면서 배울 점이 많았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이번 서울컵에서는 파트너 김민주 씨와 함께 우승을 합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울 송파구에 사는 동네 인연입니다. 김민주 씨(33)는 현재 스포츠센터에서 근무하면서 대학원 학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테니스 구력은 4년입니다.
김민주 씨는 키 172cm의 좋은 체격 조건을 갖췄습니다.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수영했던 경험이 있어 운동 감각과 코트 커버 능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우연처럼 시작됐습니다. 알고 보니 같은 동네 주민이었지만 서로 모르고 지내다가 일주일 사이 각기 다른 세 개 클럽에서 연달아 마주쳤습니다. 그 인연이 결국 서울컵 우승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두 사람이 함께 쓴 빨간 모자에도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 대회 때는 초록색 모자를 맞춰 쓰고 출전했지만 아쉽게 탈락했습니다. 이후 "다음 대회는 열정을 보태줄 빨간 모자를 쓰자"라는 이야기를 나눴고, 김 주임이 김민주 씨에게 직접 선물했습니다. 김민주 씨는 "저희도 빨간 모자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웃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빨간 모자는 우승만큼이나 특별한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김 주임은 "민주는 포핸드뿐 아니라 서브, 스매싱, 발리가 좋다. 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파트너라고 생각했다"라고 했습니다. 코트 밖에서도 성격이 잘 맞고 대화가 잘 통했습니다.
김민주 씨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유리 언니와는 경기가 끝나면 늘 복기하며 대화를 많이 나눈다. 특히 게임 플레이나 전략을 구상할 때 생각하는 방향이 비슷해 '우리가 정말 잘 맞는구나'라고 느낀다"라고 했습니다.

서울컵은 두 사람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대회였습니다. 경기 전후로 전략과 생각을 자주 나눴고, 테니스에 대한 의견도 꾸준히 공유했습니다. 김유리 주임은 "대화와 소통이 많았던 점이 우승하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 것 같다"라고 우승 요인을 짚었습니다.
가장 큰 위기는 4강전이었습니다. 5-1로 앞서다 김유리 주임의 실수가 늘면서 흐름을 내줬고, 내리 4게임을 내준 뒤 타이브레이크에서도 2-5까지 끌려갔습니다. 그때 김민주 씨가 "즐기자. 할 수 있다"라며 계속 분위기를 끌어올렸습니다. 이어 서브 에이스 2개로 흐름을 뒤집었고, 결국 타이브레이크 7-5 승리로 결승행을 확정했습니다. 김유리 주임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 했습니다.
김민주 씨에게도 그 순간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언니를 믿고 언제든 다시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고비마다 힘을 낼 수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우승 순간을 떠올리는 김유리 주임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편하게 할 줄 알았는데 너무 떨렸다. 많은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고 그냥 너무 기뻤다"라고 했습니다. 특히 좋아하는 동생과 함께 우승을 이뤄냈다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협회 동료들에게는 조용히 알리고 싶었지만, 주원홍 협회장이 가장 먼저 축하 연락을 줬습니다. 김유리 주임은 "너무 감사했다"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벌써 다음 도전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민주 씨는 "둘이 함께 '우리 나중에 I 포메이션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그 전략을 실제 경기에서 완벽하게 구현해 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김유리 주임의 목표는 국화부 우승입니다. 좋아하는 선수로는 여자 선수 엘레나 리바키나, 남자 선수 카를로스 알카라스를 꼽았습니다. 리바키나의 침착함, 알카라스의 밝은 에너지가 좋다고 했습니다.
김유리 주임은 "두 선수처럼 대회 때는 침착하고 자신 있게, 또 즐기면서 테니스를 오래오래 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회계장부와 함께 계산기를 두드리던 협회 직원은 그렇게 오늘도 퇴근 후 코트로 향합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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