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막히자 사막에 트럭 3500대…중동 물류지도 바뀐다

이혜인 2026. 5. 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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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와 오만 국경 검문소에 트럭들이 줄지어 서있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WSJ)


최근 걸프 국가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육상 물류망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오만의 고속도로·철도·항만이 전쟁 충격을 흡수하는 비상 물류망으로 바뀌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단일 해상 요충지에 의존해온 중동 물류 체계가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을 13일(현지시간) 내놨다.

사우디 국영 광산기업 마덴이 대표 사례다. 밥 윌트 마덴 최고경영자(CEO)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 직후 임원진을 홍해 항만으로 급파했다. 이후 2주 만에 철도와 트럭 운송업체를 확보해 비료를 사우디 전역으로 실어 나르는 체계를 구축했다. 윌트 CEO는 “처음 600대였던 트럭이 1600대, 다시 2000대로 늘었고, 지금은 3500대가 걸프 지역에서 홍해까지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육상 운송망은 세계 식량 공급과도 직결된다. 사우디는 세계 3위 인산염 수출국이다. 인산염은 비료 생산의 핵심 원료로, 평상시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출됐다. 전쟁으로 해협 봉쇄 위험이 커지자 마덴은 홍해 항만으로 물류 방향을 틀었다. 윌트 CEO는 “마덴은 5월 말까지 밀려 있던 수출 물량을 모두 따라잡게 될 것”이라며 “정말 가능할 거라고 믿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해냈다”고 말했다.

글로벌 해운사들도 육상 우회로를 활용하고 있다. MSC와 머스크(Maersk)는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질러 화물을 트럭으로 운송하고 있다. UAE 슈퍼마켓 체인 스피니스는 감자칩, 오트밀, 어린이 간식 등 영국 식료품을 실은 트럭을 영국 켄트에서 출발시켜 서유럽과 이집트, 사우디를 거쳐 두바이까지 보냈다. 이동 기간만 16일이 걸렸다. 에티하드 레일 프레이트는 UAE 동부 푸자이라에서 아부다비까지 닛산 차량 수백 대를 철도로 운송했다. UAE 최초의 차량 철도 운송 사례다.

UAE의 소규모 항만 코르파칸도 의외의 물류 거점으로 부상했다. 전쟁 전 하루 100대 수준이던 이 항만의 트럭 통행량은 7000대로 급증했다. 원래 환적 중심 항만이던 코르파칸은 이제 컨테이너를 트럭에 실어 창고와 공장, 상점으로 보내는 관문 항만으로 변모했다. 주간 컨테이너 처리량도 전쟁 이후 2000개에서 5만개로 늘었다.

코르파칸 항을 운영하는 걸프테이너는 2주 만에 직원 900명을 채용하고, 고객 서비스 직원을 게이트 관리와 야적장 운영 업무에 투입했다. 파리드 벨부아브 걸프테이너 CEO는 “하룻밤 사이 오케스트라를 꾸려 모차르트 교향곡을 연주해야 하는 상황과 같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UAE는 원유 수출에서도 대체 경로를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홍해 연안 얀부 항구로 이어지는 동서 송유관 의존도를 높였다. UAE는 푸자이라를 통한 원유 수송을 확대하고 있다. 양국은 송유망 처리 용량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중동 지역에서는 신규 철도 건설과 항만 인프라 확충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육상 운송은 해상 운송보다 비싸고 비효율적이다. 항만에서 돌아오는 트럭 상당수가 빈 차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산염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추가 비용을 상쇄하고 있다. 윌트 CEO는 “육상 운송 경로는 비효율적이고 항만에서 돌아오는 트럭 상당수가 빈 차로 복귀하고 있다”면서도 “인산염 같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추가 운송 비용을 상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덴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홍해 수출망을 상시 체계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윌트 CEO는 “애초에 이런 상황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이제는 새롭게 중요해진 수출 거점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회사 운영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위기를 통해 우리의 역량을 입증했다”며 “이 체계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 언제든 홍해로 연결되는 수출 경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 직후만 해도 시장에서는 사우디 제품이 정상적으로 수출될 수 있을지 의문이 컸다. 그러나 선박 추적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최근 홍해 연안 얀부 항에서 출발한 인산염 화물이 지부티, 태국,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피터 해리슨 CRU 애널리스트는 이번 대응을 “사우디아라비아의 물류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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