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N 칼럼] 노동의 위기
![유재원 법률사무소메이데이 변호사·일본 와세다대학 방문학자 [출처=유재원 변호사]](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4/552778-MxRVZOo/20260514090007663neic.jpg)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영화 <타짜>의 대사 중에서)
2026년 초. 대한민국 자영업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자영업 폐업은 근로자들의 일터를 닫아 '싸늘하게' 노동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더 넓게 보면, 대기업은 인공지능(AI) 노동시대를 맞아 필수인력-유휴인력을 이미 구분하고 있고, '관리직군'과 '사무직군'에 대한 인력구조개편(감축을 위주로)을 시도해왔다(감시 단속 근로자나 외주가능한 전산 등은 이미 외주화).
유일한 활로였던 공기업-공공기관은 이미 (인력구조상) 살찔대로 찐 상태라서 추가인력을 늘리거나 조직을 확장하기 보다는 필수인력에서 벌어지는 퇴직-이직에 대응하는 인력관리에 보다 급급하다. 여타의 다른 공공 서비스 부분에서 노동계층은 대단히 확장되었지만 이러한 공공기능이 항구적일지 미정이고 (저임금과 처우불만 등으로) 상주 인력의 고용존속기간도 짧은 편이다.
나아가, 근로자들의 측면에서도 노동의 위기는 '비수가 날아드는' 현실이다. 청년층 실업은 가히 최대치를 찍고 있는데, 취업한 청년층도 65세 이상 근로계층의 숫자나 근로소득에 상호 비견될 정도라니 이미 성장동력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한다. 고용과 노동에 대한 정부주도의 정책에 대하여도 패착론이 나온다.
최저임금의 인상이 실제로 청년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실증연구가 시작되었고(급격한 최저임금액 인상개편이 있었던 2017년 이후부터 코호트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음), 고용보험기금의 고갈에 기여하는(?) 실업급여의 확장세는 고질적인 병폐가 되고 있다(본래 실업급여가 아닌 구직활동을 위한 일부 수당지급이 제도적 취지).
최저임금제도는 고용을 늘리기는커녕 24시간제-교대제를 없애거나 종국적으로는 일자리 자체를 해체했다. 실업급여는 꿀과 같은 '시럽(syrup)'급여가 되어 반복적-누적적 급여 또한 증가해버린 상황이고, 아예 '달디 단' 급여수득 이후에는 아예 일을 하지 않는 노동회피계층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노동회피계층은 50만을 훨씬 상회하는 은둔형 청년계층(일본의 '히키코모리')도 풍부히(?) 포함하고 있어, 향후 사회적으로 외로움과 기피, 무기력이라는 인간과 사회의 근원적인 병폐(?)도 급선무로 해결을 요하고 있다.
노동에서 자의반(?)-타의반(?) 소외된 이들은 말한다. "일자리가 없거나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회적인 원인이 있다", "과거의 영화를 누리지 못한 우리 청년층에게 '성실'과 '저임금'을 강요하지 말라", "일보다는 투자가 낫겠다" 등등.
맞다! 역시 '새로운 세대(NEO-GENE)'다. 그들에게는 미래적인 비전과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 임금이든 수당이든 여러 복리이든 뭐든지 줄 것은 주는 건 맞다.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것은 노동이고, 노동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적정한 대우, 임금이며, 임금은 결국 돈이기에, 네오제네들에게 적정한(많은?) 돈를 계속 주는 것은 필요하겠다.
그런데, 청년노동계층에게 그냥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단순히 그들의 생활에 대하여 임금을 준다?(생활 임금의 곡해) 그들의 존재에 대하여 임금을 준다?(기본소득제의 허구) 그들을 무차별하게 고르게 대우해준다?(보편적 복지로서의 청년수당 문제) 이런 것들이 과연 우리사회의 헌법적 가치에 맞는가, 적어도 사회통념에 맞는가, 아니면 정의로운가?
쉽지 않다. 즉, 노동의 교환가치로서의 임금-수당-후생을 강조하고 싶다. 돈이든 대우이든, 그들이 적정한 교환가치를 누리기 위하여는 그들도 지속적으로 최적화된 노동을 우리 사회에 공여할 의무가 있다.
이제, 이런 문제까지 들여다 보면, 어쩌면 건전한 노동을 위협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돈'이다. 건전한 노동을 (지속적으로) 제공하지 아니하거나 사회복지를 이용․의존하는 수단으로서만 노동이 현존한다면, 이 사회는 마치 노동회피를 사회적으로 유인하는 꼴이 된다. 과거에 어느나라이건 도박과 마약이 그 자체로 금지되거나 사회적으로 강한 규제(형벌 등)를 받았던 것은, 사회적인 기조가 무너지고 경제체제와 사회적 이념까지도 훼손시켰기 때문이었다.
최근 유행을 보이는 청장년층에 투자문화가 있다면(역설적이게도 자산이 없는 부채상태에서의 투자다), 이 또한 노동문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청년층은 IT에 강하고 변화에 빠르다. 최근 이들은 1억개의 주식계좌를 만들었고 이미 100조원의 투자를 감행했다. 가상화폐 선물 거래도 그렇고 국내외 주식투자에 열을 올리는 사회현상에 당당히 참여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는 그 열기와 동시에 수반되는 노동회피 증후군까지 만연해지고 있다. 순간순간의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에 대하여는 "탁월한 식견", "과감한 투자감각", "위험 감수 능력" 등으로 자위하면서, 일터의 말단직에게 보상하는 것에 대하여는 '쥐꼬리(?)' 급여에 불만이 싹튼다. 일터에서는 직무를 소홀히 하거나 동료를 비난하면서까지 성실한 노동에 반감을 보인다.
결국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노동회피(노동멸시)의 경향은 단지 노동기피계층의 형성을 뛰어 넘어서서, 당당히(?) "이 사회가 문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문제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치부하는데까지 이른다.
일례로, 저명한 정신과 전문의는 최근 청장년층에서 도박, 주식이나 코인투자, 부동산투자 등에 빠진 사람들로부터 불만족의 정신병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일찍이 투자를 경험한 네오제네들에게서는 '벌었던' 사람이나 '잃었던' 사람이나 하나같이 불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혹자는 "아~ 그때 더 벌었어야 하는데... 충분히 벌수 있었는데"라는 우울감 요소가 있고, "아~ 그만했어야 하는데, 계속 말려들 때 그만두어야 했었는데" 등의 우울 요소가 있다고 한다. (이미 정신과 의사들이 분석하고 있는대로) 어쩌면 이들의 노동시장 복귀는 쉽지 않거나 요원할지 모른다.
이들이 노동시장의 구성원으로 다시금 활약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지 이들에 대하여 정당한 대우, 정당한 댓가만을 주도록 기업과 사업주에게 강제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거나 막대한 국가기금을 계속 활용해야 할 것인가?
이제, 건전한 노동관과 성실근면한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는 문화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터를 가서 동료선후배와 함께 일하고, 내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구성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지속적인 구성원이 되도록 돌봐야 하는 시점이다.
여러 측면에서 도전받고 있는 노동위기다.
노동의 위기시대! 이것은 일자리가 줄어들거나 AI가 대체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총체적인 인식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노동의 위기는 종국적으로 임금의 문제이면서도 또한 임금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AI시대의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 1,700만 근로자들의 마음가짐에 건강하고 활기있는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사회적인 변혁과 노동시장의 변화는 2인 3각처럼 발걸음(보조)을 맞춰가야 할 것이다!
한편, 지난 3월초 필자는 5일간 오사카, 고베, 교토 등의 한신공업지역 및 문화산업지구를 두루 탐방하는 기회를 가졌다. 극한적 완전고용의 노동시장을 맞이한 일본을 보면서, 그 저력은 정부의 견실한 노동시장 형성이 있었고, 그러한 사회를 떠받치는 일본 근로자들의 근면한 노동관이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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