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새내기'의 11가지 공략법 [5.11이 보인다]

암벽등반을 시작한 지 1년 반, 등반을 잘하고 싶어졌다. 더 어려운 바위를 오르고 더 재미있게 등반하고 싶어졌다. 훈련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선배 등반가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암장을 등록해 실력을 키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기로 했다. [5.11이 보인다] 연재는 월간산 정유진 기자의 암벽등반 훈련기다. (연재 제목 속의 5.11은 암벽등반 난이도다. 태권도로 치면 빨간띠 정도다.) _편집자 주

암벽등반에서 베타beta란 루트 완등을 위한 '공략집'이다. 특정 루트를 오를 때 홀드의 위치,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어느 구간이 어려운지 등 등반에 필요한 모든 정보와 조언을 뜻한다.
'베타'는 비디오테이프의 형태인 베타맥스betamax에서 온 용어다. 미국의 클라이머 잭 밀레스키Jack Mileski가 자신의 등반 영상을 베타맥스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 친구들에게 보여 준 것이 그 시작이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녹화한 등반 영상을 보며 완등 방법을 연구하고 함께 고민했다. 비디오 포맷의 명칭이던 '베타'가 등반 정보를 뜻하는 용어로 굳어져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베타를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암장에서 등반을 하며 주변의 숙련된 클라이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사이트에서 해당 루트 영상을 검색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직접 바위에 붙어 홀드를 살피고 동작을 만들어 내는 과정 또한 베타 수집의 한 가지 방법이다.
▶ 5.11이 보인다연재의 최종 목표는 선운산 속살바위의 '새내기(5.11b)' 완등이다. 새내기는 속살바위의 관문이자 5.11 난이도의 상징으로 통하는 루트다. 본격적인 도전에 앞서 연습이 필요했다. 난이도가 한 단계 낮은 조비산의 '붉은여우(5.10d)'를 그 대상으로 골랐다.
(1) 훈련일지
지난달 마감이 끝나자마자 바위 앞으로 갔다. 새벽 3시가 넘어 집에 도착한 뒤 장비를 챙긴 후 잠에 들었다. 몇 시간 뒤, 해가 뜨고 조비산 암장으로 향했다. 피곤할 틈이 없었다.
올해 첫 바위다. 겨우내 플라스틱 홀드만 잡았다. 손끝에 차갑고 거친 바위를 붙여보러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다. 여행보다도 설렌다.
수도권 클라이머들의 사계절 트레이닝 센터
경기도 용인의 조비산 암장은 국내 유명한 하드프리 암장 중 하나다. 폭넓은 난이도와 다양한 스타일의 등반루트가 있어 수도권 클라이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조비산에는 부엉이, 고라니, 붉은여우 등 동물의 이름이 붙은 루트가 많다. 덕분에 클라이머들 사이에서 "오늘 고라니 잡으러 간다", "부엉이 잡으러 간다"하는 재밌는 대화가 오간다. 이날은 그중 '붉은여우(5.10d)'라는 루트를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여우 잡으러' 몸을 풀고 바위 앞에 선다.
'붉은여우'라는 이름답게 영리한 동작으로 기계적으로 움직여야만 완등할 수 있다. 손을 바위에 올려두고 홀드를 더듬더듬 찾는 순간 설렘이 몰려온다. 보통 첫 시도에서는 홀드를 찾느라 힘을 다 써버리고 허둥대기 일쑤다. 나 역시 두 번째 퀵드로까지 겨우 걸고 헉헉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텐션…"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한숨을 푹 내쉰다.
*텐션Tension
암벽등반에서는 등반 도중 쉬고 싶을 때 빌레이어의 도움을 받아 줄에 매달려 쉴 수 있다. '텐션Tension', 혹은 '테이크Take'라고 외치면 빌레이어가 줄을 당긴 후 장비를 이용해 고정시켜 안정적으로 줄에 의지할 수 있다. 다시 등반을 시작할 때는 '클라이밍Climbing'을 외치고 오르면 된다.
"클라이밍!" 이후로도 몇 번이고 쉬어 갔지만 루트 끝의 톱 앵커에 줄을 걸었다. 비교적 명쾌하게 오른 뒷구간에 자신감이 생긴다. 첫 판은 맛보기다. 만족하고 내려와 다시 루트를 살핀다. 첫 등반 후 가장 우선되는 것은 루트의 어려운 구간인 크럭스Crux를 확인하는 것이다. 세 번째 퀵을 걸고 위로 진행할 때 한 번, 한 손으로 책을 잡듯 집게처럼 잡아야 하는 핀치 홀드 구간에서 한 번, 두 번의 크럭스 동작을 파악했다.
붉은여우, 이렇게 잡으세요
시도를 이어나가는 도중,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다 결국 땅으로 내려온다. 그때 숙련된 조비산의 로컬 클라이머가 다가와 옆에 선다. 인사도 없이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올려다본다. 이건 기회다. '베타 공유'의 시간이다.
"세 번째 퀵을 걸고 오른발을 넓게, 저기 갈라진 홀드까지 뻗어 올려야 돼요. 그래야 밸런스가 나와 위로 진행할 수 있어요. 그 위에 핀치 잡고서는 왼손이 한 번 더 가는 게 좋아요. 키가 작으면 왼쪽 홀드에 작은 틈이 있는데 거길 잡고 클립을 해봐요. 마지막 퀵은 올라가다 떨어지면 추락거리가 기니까 꼭 아래쪽에서 먼저 걸고 가고요!"
친절한 베타를 건네고 유유히 사라진다.
바람이 쌩 분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장비를 정리한다. 암장 뒤편 벤치에서 기다리던 백패커가 주섬주섬 바위 앞으로 다가온다. 낮 동안 클라이머들로 붐비던 바위 동굴 아래 빈자리를 백패커들이 텐트로 채운다. 조비산의 익숙한 일몰 풍경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아쉽게 하네스를 벗는다. 하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우의 모가지 같은 핀치 홀드를 부여잡는 동작이 자꾸 떠오른다. '다음에 꼭 여우 잡아와야지!' 베타가 있으니 든든하다.
모아보자, 베타
붉은여우 첫 판은 아무런 베타 없는 정통 박치기였다. 루트의 시작 지점도 제대로 모른 채 바위 앞에 섰으니 말이다. 마지막 시도 후, 돌아오는 차에서부터 다시 용인으로 떠날 때까지 인터넷에 '붉은여우'를 수십 번 검색했다. 영상을 통해 현장에서 얻은 베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완등자의 영상과 나의 영상을 번갈아 보며 가늠해 본다.
'내 다리가 저 크랙에 닿을까?'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베타는 한정적이다. 180cm가 넘어 보이는 근육질 클라이머의 영상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키는 154cm다. '그냥 뻗으면 닿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키가 작아 보이는 여성 클라이머의 영상을 위주로 관찰했다. 그렇게 하나 둘 구간에 대한 무브를 정립했다. 베타를 확인하기 전 엉뚱한 홀드를 잡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머리 위에 좋은 홀드를 두고 멀리 애매한 위치에 손을 뻗고 있었다. 그걸 잡으면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떨어지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다음 무브로 진행이 불가능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영상 속 사람들은 기계처럼 움직였다. 불필요한 동작은 단 하나도 없었다. 2주간 영상을 반복 재생했다. 머릿속에서 나는 붉은여우를 기계처럼 오르고 있었다. 완등에 대한 꿈에 부푼 채 다시 조비산으로 향했다. '완등 할 수 있을 것 같아!' 호언장담했다.
크럭스2 돌파
햇빛에 바위가 반짝거리는 날씨였다. 머릿속으로 수백 번 그린 동작을 몸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앞의 구간을 무난히 넘기고 마주한 첫 번째 크럭스, 생각지 못한 수준의 압박에 당황하고 말았다. 다리를 오른쪽으로 넓게 벌려 밀고 일어나는 무브다. 다리가 '시옷(ㅅ)'자가 되어야 힘을 주어 일어날 수 있는데, 내 다리는 '으(ㅡ)'자가 되기 직전이었다. 다리가 너무 짧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방향성이 맞지 않아 홀드를 잡고 일어날 수 없었다. '으으' 하는 소리만 내뱉다 좌절하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2주간 쌓은 기대감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두 번째 크럭스는 만져보지도 못한 채 철퍼덕 주저 앉았다. 이후로도 두세 번 똑같은 과정이 반복됐다. '붉은여우를 너무 쉽게 봤나봐.' 낙심했다. 영상 속 기계처럼 오르던 사람들이 얄밉게 느껴졌다. 날카로운 바위가 손을 긁어대 아파왔다. 쉽게 올라가던 앞 구간마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렇게 속으로 '엉엉' 울고 있는 나에게 동료가 한마디 했다.
"이렇게 일희일비할 거야? 위에라도 해봐."
그는 조금 짜증이 나 보였다. 즐겁게 등반하러 와서 울상으로 앉아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시 기운을 차려 윗구간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여우의 모가지를 잡고 다리를 끌어올려 머리 위의 홀드를 잡아내는 동작이다. 먼저 영상에서 본 대로 침착하게 홀드를 찾았다. '오른손 여기, 왼손 여기 잡고, 오른발을 여기까지 끌어 올리고… 몸을 살짝 옆으로 기울여서 오른손 멀리!' 후… 한숨을 푹 쉬고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가볼게…'라고 신호를 보냈다. 걱정, 두려움, 슬프고 실망한 마음을 꾹 누른 채 손과 발을 움직였다. '으앗, 탓, 헛!' 홀드를 잡고 무사히 클립을 해냈다. "됐다!" 속으로 환호성을 쳤다. 윗구간은 전에도 무난히 갔던 동작들이다. 무사히 톱앵커에 줄을 걸고 '완료'를 외쳤다. 무너졌던 마음에 희망의 빛이 다시 들었다.
조비산 붉은여우(5.11b) 베타



(2) 선운산 새내기(5.11b) 베타 수집기
좋은 베타는 때로 근력보다 강력한 무기가 된다. [5.11이 보인다]의 프로젝트 루트인 '새내기'의 베타를 모으기로 했다. 현장에서의 우연을 기대하는 대신 미리 모아 공략집을 손에 넣어보기로 했다. 완등자를 수소문했다. 그들의 베타를 집대성했다. 10인의 완등자와 개척자가 전하는 생생한 증언, '새내기' 완등을 위한 가장 치밀한 베타를 공개한다.
윤병현(27) @yo0n_sight
"체력 분배가 곧 실력, 휴식 포인트를 찾아라"

경력: 8년
신체 스펙: 키 177cm 암리치 180cm
암벽화: 스카르파 인스팅트 VSW
마지막 볼트 오른쪽 트래버스 구간이 승부처입니다. 날개 모양의 사이드 홀드에서 크로스 동작으로 중간 홀드를 잡고 매치 없이 오른쪽 홀드로 넘어가 보세요. 체구가 작은 사람이라면 안정적으로 스태밍할 수 있어 중간 홀드에서 매치했다가 진행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등반 중 스태밍으로 쉴 수 있는 곳이 3~4군데 있으니 전완근 펌핑이 오기 전에 충분히 휴식하세요.
권경진(30) @zz1zz5
"눈앞의 바위에만 집중"

경력: 6년
신체 스펙: 키 175cm 암리치 169cm
암벽화: 라스포르티바 띠어리
오버행 지점의 얕은 손 홀드들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핵심입니다. 저는 언더 홀드를 잡고 아웃사이드와 인사이드를 교차하며 홀드의 방향성에 맞춰 몸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동작에 신경 썼어요. 생각을 비우고 오직 눈앞의 바위에만 몰입했을 때 완등이 허락되었습니다.
최영은(31) @0rr.naerri
"침착함이 생명"

경력: 3년
신체 스펙: 키 168cm 암리치 172cm
암벽화: 라스포르티바 솔루션 콤프
처음엔 3번 퀵을 거는 것조차 무서워 내려왔던 기억이 나요. 한 달 뒤 다시 붙었을 땐 언더 홀드 전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히 무브를 풀어나갔죠. 키가 큰 편이라 발을 낮게 쓰고, 오른손을 깊숙이 집어넣는 전략이 통했습니다. 하드프리에 필요한 무브 풀이와 휴식법을 가르쳐준 고마운 루트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발 자리를 믿고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하세요.
주예림(27) @yel_mming
"선운산 입학 필수코스"

경력: 4년
신체 스펙: 키 162cm 암리치 162cm
암벽화: 매드락 샤크3 HV
첫 프로젝트였던 만큼 5세션 내내 뿌듯하게 등반했습니다. 상단 고정 퀵 너머가 크럭스인데, 방향성 있는 왼손 홀드를 제압한 뒤 오른손을 뻗을 때 발을 오른쪽으로 보내는 게 팁이에요. 하단에서 최대한 힘을 아끼는 게 중요합니다. 머뭇거리지 않도록 손과 발 자리를 완벽히 외우고 붙으세요.
임상호(35) @ho_0730
"한 번 잡은 홀드는 고쳐 잡지 마라"

경력: 5년
신체 스펙: 키 175cm 암리치 181cm
암벽화: 스카르파 VSR
고소공포증 때문에 크럭스에서 무브를 연결하지 못해 포기하려 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마지막으로 도전해 성공했죠. 크럭스의 크로스 무브는 손보다 '찍을 발'을 미리 정해 두는 이미지 트레이닝이 필수입니다. 한 번 잡은 홀드를 절대 고쳐 잡지 말고 과감하게 다음 무브로 이어가세요. 정답은 본인의 멘탈 안에 있습니다.
백현일(25) @hi_.119
"발자리만 잘 찾아도 절반은 성공"

경력: 1년 6개월
신체 스펙: 키 168cm 암리치 170cm
암벽화: 라스포르티바 지니어스
지구력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붙어 보니 '발자리'가 완등의 열쇠였어요. 특히 톱 직전 데드포인트를 치는 크럭스에서 고생했습니다. 키가 작다면 동작을 최대한 크게 가져가는 과감함이 필요해요. 중간에 쉬는 포인트에서 확실히 회복하고, 나에게 맞는 발 자리를 찾는 데 집중해 보세요. 가짜 손 홀드에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지영(30) @bbdl2_
"한 번에 집중해서 끝내는 전략"

경력: 4년
신체 스펙: 키 161cm 암리치 161cm
암벽화: 라스포르티바 솔루션 콤프
전완근의 지구력 못지않게 기초 체력이 중요한 루트예요. 상단 크럭스 직전에 니바를 이용해 회복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휴식 후 드롭니로 반동을 제어하는 전략으로 돌파했습니다. 무브를 다 만들었다면 여러 번 붙어 힘을 빼기보다, 컨디션과 날씨가 좋을 때 집중해서 한 번에 끝내는 전략을 추천합니다.
이현도(26) @ggwa_dang
"플래깅으로 밸런스 잡기"

경력: 4년
신체 스펙: 키 180cm 암리치 178cm
암벽화: 라스포르티바 만달라
'새내기'는 11급의 상징과 같은 루트라 완등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컸습니다. 인기 코스라 대기 줄이 길어 하루에 몇 번 붙지 못한다는 점도 부담이었죠. 크럭스 구간에서는 플래깅으로 밸런스를 잡고 드롭니를 이용해 몸을 일으키며 오른손을 뻗었습니다. 키가 크다면 다리를 찢어 쉴 수 있는 구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세요.
최은지(27) @slooopy.e
"키가 작다면, 동작 쪼개기"

경력: 5년
신체 스펙: 키 158cm 암리치 163cm
암벽화: 라스포르티바 솔루션 콤프
새내기는 톱 직전에 크럭스가 나오는 루트라 지구력을 테스트하는 느낌이 강했어요. 키가 작은 편이라 먼 거리를 한 번에 잡아내야 하는 데드포인트 대신, 왼발 하이스텝과 크로스 무브로 동작을 쪼개서 해결했습니다. 평소 지구력 훈련을 할 때 본 등반 후 한 단계 낮은 루트를 연이어 오르며, 전완근이 소진된 한계 상황을 견뎌내는 훈련을 반복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신창균(27) @statikk.kyun
"다음 도전을 위한 완벽한 발판"

경력: 10년 이상
신체 스펙: 182cm 암리치 189cm
장비: 매드락 샤크3
마지막 고정 퀵에 클립하는 순간이 크럭스입니다. 지구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각이 세지기 때문이죠. 이전 구간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여 체력을 아끼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새내기를 깨고 나면 선운산의 다른 12급 루트들을 공략할 수 있는 강력한 지구력이 생깁니다. 주말 대기열이 길어 힘들다면 추운 비시즌에 미리 무브 연습을 해두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FLASH climblog
18년차 클라이머 백관호(39)씨가 개발한 FLASH climblog는 전국 암장 정보와 등반 영상을 기록, 공유하는 무료 오픈 플랫폼이다. 인터넷 곳곳에 퍼져 있는 암장 정보와 베타를 한 곳에 모아보자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이 서비스의 핵심은 '개인의 포트폴리오'인 동시에 '모두의 가이드북'이라는 점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등반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이 올린 영상과 정보를 참고해 더욱 전략적으로 등반할 수 있다. 플랫폼은 암장별 실시간 날씨와 혼잡도도 제공한다. 직접 가기 전에는 알 수 없던 현장 정보를 쉽게 나눌 수 있어 유용하다.

(3) 선운산 새내기 개척자 인터뷰
완등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길의 시작이 궁금해졌다. 처음 '새내기' 루트를 만든 개척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무엇보다 확실한 베타를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선운산 속살바위 개척의 주역, 김동현씨를 찾았다.
그와 나눈 대화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루트에 대한 구체적인 동작을 설명하는 대신 최근의 '베타 공유 문화'에 대한 묵직한 우려를 표했다.
도전 대신 정답지, 내 등반을 가두는 행위
"베타는 스스로의 등반을 단순하게 만드는 위험한 길입니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기회도,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며 성장할 기회도 박탈하는 셈이죠. 자신만의 동작을 찾아가는 것은 등반의 필수 과정입니다. 정답을 미리 알고 오르는 건 등반이 아니라 복기일 뿐이에요. 막막함을 뚫고 자신만의 길을 오를 때의 성취감은 정답을 보고 따라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확실한 정답을 얻으러 갔다가 반대로 '베타를 거부하는 철학'을 마주하고 돌아왔다. 날카로운 신념이 머릿속에 꽂혔다. 효율에 매몰되어 '모험'이라는 등반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개척자의 경고는 그렇게 나를 찔렀다.
효율의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디지털 시대다. 정보는 곧 '실력'이며 이를 공유하는 것은 '배려'이자 합리성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최대한 '쉽게' 답을 얻고자 한다. 효율을 위해 시작과 끝 사이의 과정을 압축해 버린다. 과정의 압축은 즐거움뿐 아니라 성장마저도 잡아먹는다. 등반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위를 더듬거리며 루트를 읽어나가는 날것의 맛을 우리는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등반의 가장 순수한 전율인 온사이트의 가치 또한 무뎌져 가고 있다.
편리함이 정답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비효율'을 선택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정답지를 덮고 자신의 직관만으로 바위와 마주해 보자. 처음 잡아보는 홀드를 쥐고 다음 동작을 찾아 더듬거리는 불안한 마음에는 답지를 아는 자는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이 있다.
*온사이트Onsight
암벽등반에서 루트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첫 시도에 완등하는 것을 말한다. 온사이트는 뛰어난 실력과 바위를 보는 안목을 필요로 하며 암벽등반에서 가장 순수한 기쁨으로 여겨진다. 사전 정보가 있는 상태에서 첫 시도에 완등한 경우 플래시Flash라고 부른다.

"쉬우면 재미없죠. 어려워서 선물 같은 문제"
1996년 개척된 '새내기'는 속살바위에 만들어진 두 번째 루트다. 김동현 센터장은 개척 당시의 상황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했다.
1995년 그가 속살바위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수풀로 우거져 정글과 같았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비춘 빛이 바위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고 "속살 같다"고 말했고, 이 말이 전해져 '속살바위'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속살바위에서 처음 본 길은 새내기 라인이었다. 하지만 하강 지점이 옆으로 치우치는 바람에 개척 첫날인 1월 3일 '늦깎이(5.11d)'를, 그 다음날인 4일 '새내기(5.11b)'를 차례로 개척했다.
'새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클라이머들에게 그는 농담 섞인 직설을 던진다.
"등반이 어려우면 집에서 뜨개질하세요."
그에게 등반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뚫고 결실을 맛보는 일이다. 마지막 퀵을 거는 순간까지 힘을 쥐어짜야 하지만 그만큼 완등의 열매는 더 달다. 그는 상단 크럭스의 막막함이야말로 새내기가 등반 '새내기'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어렵기에 재밌는 것이니 기꺼이 그 고생을 즐기라는 것이다.
*속살바위 발견의 주체에 대해서는 산악계 내에서도 주장이 엇갈린다. 당사자마다 증언이 상이해 명확한 최초 발견자를 특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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