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안과 밖을 모두 바꾸기 위해 [6·3 지선 N번 후보들 ④]
〈시사IN〉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간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조금 비껴나 있는 후보 네 명을 만났다. 기호 1·2번 바깥 후보들의 선거운동은 어떤 모습일까. 이들은 무슨 이유로 달걀로 바위 치기를 하는 걸까. 익숙한 선거판의 틈새에서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N번’ 후보들을 각 지역 선거운동 현장에서 만났다.

①김찬우(24)/ 정의당/ 파주시의원 예비후보·파주시 가선거구
②신유림(24)/ 개혁신당 / 부산진구의원 예비후보·부산진구 가선거구
③조상지(47)/ 무소속(탈시설장애인당當)/ 서울시의원 예비후보·종로구 제2선거구
④최효(33)/ 노동당/ 인천시의원 비례대표 예비후보
(이름 가나다순)
레스토랑 서빙부터 화장품 판매, 카페 아르바이트, 자동차 부품 조립까지. 생계비를 벌기 위해 최효 후보(33)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다. 사람을 끊임없이 상대하다 지칠 대로 지쳐서 사람이 싫어졌다. ‘쿠팡은 사람들과 부대낄 일 없이 일만 하는 곳’이란 지인의 말을 듣고 2017년 10월 쿠팡물류센터로 향했다. ‘잠깐 있다가 임용고시 공부할 돈을 벌고 떠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일이 재밌었다. 물류센터를 꽉 채운 상품 구경이 흥미로웠고, 빠르게 물품을 찾아 포장 작업대에 가져다주는 피킹 업무도 성취감이 있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마감 시간 특유의 활기 속에서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는 동안 마음도 편했다.
동시에 쿠팡은 이상한 곳이었다. 물류센터는 트럭 상하차가 쉽도록 한쪽 벽면이 뚫려 있었다. 한겨울에는 영하의 기온 속에서 달달 떨며 일을 해야 했다. 반대로 기온이 36℃까지 치솟는 여름에는 물건을 나르다가 기절한 적도 있다. 최 후보는 생각했다. ‘나와 동료는 잠깐이라도 일을 멈추면 전체 공정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우리가 버는 돈은 최저임금에 불과할까?’ 최효 후보는 인천 쿠팡물류센터에서 계속 일하며 미래를 그리고 싶었다.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 2021년 6월 쿠팡물류센터지회에 가입했고, 2021년 12월 냉난방장치 설치와 휴게 시간을 요구하는 피케팅에 참여했다가 이듬해 6월 회사 측으로부터 재계약을 거부당했다. 최효 후보가 제기한 부당해고 소송은 2025년 5월 1심 승소 후, 회사의 항소로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일하다 해고된 바로 그 지역에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대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인천광역시 비례대표 시의원 노동당 후보로 출마한 최 후보는 “쿠팡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쿠팡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서 나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휴게 시간 보장, 냉난방 설비 설치 등 물류센터 노동환경 개선을 공약에 넣었다. “쿠팡은 적어도 근로계약서도 쓰고 월급은 떼먹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 안에서 탈법 행위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산업재해 은폐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최 후보는 쿠팡 외에도 여러 단단한 ‘바위’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의 이번 선거운동 캐치프레이즈는 ‘차별과 정면 승부 그리고 정상성과 정면 승부’다. ‘쿠팡에 가면 된다’는 말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정치는 필요하다. “‘돈 없으면 쿠팡이나 뛰어라’고 쉽게 말하지만, 쿠팡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나 장애인, 미등록 이주민, 자기 명의의 계좌와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는 신용불량자가 접근 불가능한 배타적인 곳이기도 하다.”
최효 후보는 출마 선언과 함께 자신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했다. 쿠팡에서도 수많은 성소수자를 만났다. “쿠팡과 같은 비정규 임시 일자리는 노동자에게 정체성을 자세히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소수자들도 일단 진입이 가능한 일터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오래 머물 수 있는 안전한 일터라는 뜻은 아니다. 관리자가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를 숱하게 봤다.” 최 후보는 당선되면 인천시에 성평등국을 설치하고 일터 내 차별금지 조례와 생활동반자 조례를 제정하겠다는 공약도 냈다.
커밍아웃이 선거에 불리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지방선거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관한 공약을 제시하려는데, 스스로 커밍아웃을 하지 않으면서 뭔가를 같이 해보자고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쿠팡을 비롯한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들, 성소수자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4월24일 오후 5시, 인천시 서구 오류동에 위치한 쿠팡 인천4물류센터 앞에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최 후보가 마이크를 들었다. “고 장덕준씨가 얼마나 힘든 노동을 했는지, 이 노동이 얼마나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는지는 지금 출근하시는 사원님들께서 더욱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죽음은 온전히 쿠팡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이 만든 산업재해 과로사입니다.”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숨진 장덕준씨의 아버지 장광씨와 어머니 박미숙씨가 최 후보의 곁에서 ‘조직적인 산재 은폐! 쿠팡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사죄하라!’고 적힌 유인물을 나눠주었다. 사람이 싫고 무서웠던 최 후보는 이제 직장 동료들 앞에 서서 발언하고,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유인물을 나눠준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 결국엔 인정하게 됐다. 사람이 싫다기보다 두려웠던 것뿐, 나는 사실 사람을 좋아한다고.”
인천·권은혜 기자 kiki@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