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돌아오자 매출도 껑충…극장가, 쇼박스發 훈풍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5. 14. 06:05
쇼박스가 '만약에 우리', '왕과 사는 남자', '살목지'까지 흥행작을 연속 배출하며 국내 배급 시장 정상에 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침체됐던 극장가가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시장 반등의 중심에는 쇼박스 작품들이 있었다. 다만 특정 흥행작에 매출과 스크린이 집중되는 현상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업계는 이번 반등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규모와 장르의 영화들이 함께 살아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2026년 1분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체 극장 매출액은 318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7% 증가했다. 관객 수는 3190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2%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시기(2017~2019년) 1분기 평균 전체 매출액과 비교해도 올해 매출은 73.2% 수준까지 회복됐다. 완전한 정상화 단계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장이 바닥을 지나 회복 국면으로 들어선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번 회복세를 이끈 일등 공신은 쇼박스다. 쇼박스는 1분기 배급 매출액 1763억원, 점유율 55.4%를 기록하며 전체 배급사 가운데 1위에 올랐다. 앞서 2024년 1분기에도 천만 영화 '파묘'를 배급하며 배급사 순위 1위를 기록한 바 있는데, 올해 다시 왕좌로 복귀한 것. 특히 배급사 순위 2위인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가 매출액 431억원, 점유율 13.6%라는 점을 고려하면 격차는 압도적이다.
흥행을 이끈 핵심 작품은 1분기 기준 매출액 1518억원, 누적 관객수 1573만명을 동원한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다. 5월12일 기준 누적 매출액은 1625억원을 넘겼고, 관객수는 1684만명까지 도달하며 1700만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영진위는 작품이 전 연령대의 고른 지지를 얻었고, 개봉작이 줄어들며 경쟁작이 없던 것이 메가 히트의 배경이라고 꼽았다.
전체 극장 매출의 절반 가까이가 '왕과 사는 남자'에서 나온 셈인데, OTT 중심으로 이동했던 관객들을 다시 오프라인 상영 시장으로 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설 연휴 기간 극장가 전체 관객 수와 매출이 동반 상승하며, 멀티플렉스 업계가 오랜만에 명절 대목을 맞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한 편이 단순 티켓 매출을 넘어 극장 내 식음료 소비는 물론, 촬영 배경지인 강원도 영월의 관광객까지 유치하는 등 경제적 파급효과도 컸다.

쇼박스의 강점은 흥행이 단일 작품에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3연속 흥행희 스타트를 끊은 건 지난해 12월31일 개봉한 김도영 감독의 '만약에 우리'로, 매출액 244억원(관객수 247만명)을 모으며 전체 흥행 3위에 올랐고, '왕과 사는 남자' 열풍이 뜨겁게 이어지던 4월 선보인 공포영화 '살목지' 역시 개봉 7일 만에 손익분기점(80만명)을 넘기고, 현재는 누적 관객수 3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장기 흥행 중이다. 특히 이번 1분기 결산에는 일부 사전 시사 관객수를 제외하고 '살목지'의 흥행 성적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쇼박스의 상승세는 2분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쇼박스가 멜로·코미디·공포 등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연속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특정 프랜차이즈 중심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 영화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는 점에서다. 온라인 플랫폼과 차별화된 콘텐츠 경쟁력만 확보된다면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도 읽힌다. 팬데믹 이후 영화 소비의 중심축이 OTT로 이동하면서 극장은 '굳이 가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인식도 퍼졌지만, 최근에는 극장에서 함께 웃고 놀라는 경험 자체를 소비하려는 수요가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다만 이번 흥행 흐름을 둘러싼 우려도 적지 않다. 1분기 전체 매출 상당 부분이 '왕과 사는 남자'에 집중됐고, 상영관 역시 흥행작 중심으로 편성되면서 중소 규모 영화들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는 지적이다. 일부 영화는 충분한 상영 기회를 확보하지 못한 채 빠르게 극장에서 내려갔고, 관객 선택권 역시 제한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흥행작 한 편이 시장 전체를 끌어올리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체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 같은 스크린 쏠림 현상은 한국 영화산업이 오랫동안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 중 하나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에 스크린과 마케팅 자원이 집중되면서 새로운 감독이나 중소 제작사의 작품들은 관객과 만날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업계는 단일 초대형 흥행작만으로는 시장 전체 체력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실제 팬데믹 이후 투자 시장이 위축되며 제작 편수 자체가 감소했고, 영화 현장의 인력 이탈도 심화됐다. 촬영·조명·미술 등 스태프들이 OTT 시리즈나 광고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이어져 왔다.

정부 역시 영화 산업 지원 확대에 나서는 상황.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얼마 전 영화인들과 함께 한 '한국 영화산업 회복을 위한 소통 간담회'에서 "영화계가 무너지면 K컬처도 무너진다"고 말하며 영화 산업 육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인식 하에 편성된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에는 영화 분야 재정 656억원이 포함됐다.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에 260억원이 추가 편성됐고, 독립·예술영화 제작 지원도 45억원 확대됐다. 특히 기존보다 지원 범위를 넓혀 순제작비 100억~150억원 구간의 영화도 새롭게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연간 40편 안팎의 중예산 영화 제작이 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불어 홀드백 제도와 스크린 상한제 등 상영 환경 개선 논의 역시 함께 추진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한국 영화시장이 초대형 블록버스터와 저예산 독립영화 양극단으로 재편되면서, 시장 허리를 담당했던 중예산 상업영화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번 정책 드라이브 역시 단순한 제작비 보전을 넘어 산업 시스템 복원 성격이 강하다.
시장은 이번 반등 신호가 단순한 일시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쇼박스발 흥행이 극장 관객 회복의 신호탄이 된 가운데, 정부의 제작 지원 확대와 상영 환경 개선 논의가 실제 산업 체력 회복까지 뻗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MTN 머니투데이방송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